국제 국제일반

[fn 해외 대기획을 마치며] "베네수엘라 노숙자엄마의 페디큐어 잊지못해… 그게 국민성"

김문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4.22 17:52

수정 2018.04.22 21:10

포스트차이나 동남아로, 복지포퓰리즘 중남미로… 해외취재 뒷이야기
해외 진출하는 기업들, 그 나라 국민성부터 알고가야
긍적적이지만 나태한 중남미..자존심 건드리면 끝장인 베트남
복지포퓰리즘으로 망한 중남미..국민들의 정부 신뢰도 ‘빵점’
동남아는 기술이전에 목매고 중남미는 내수보호에 목매
한국기업 이미지 나쁘지 않아..동남아.중남미 가능성 무궁무진
권승현 산업부 기자 (베트남), 김문희 금융부 기자 (베네수엘라), 오은선 생활경제부 기자 (베트남), 김유아 사회부 기자 (베네수엘라), 박소연 산업2부 기자 (인도네시아), 이태희 정치부 기자 (아르헨티나), 박지애 증권부 기자 (인도네시아), 남건우 증권부 기자 (브라질) ※기자이름 왼쪽부터 . 사진=김범석 기자
권승현 산업부 기자 (베트남), 김문희 금융부 기자 (베네수엘라), 오은선 생활경제부 기자 (베트남), 김유아 사회부 기자 (베네수엘라), 박소연 산업2부 기자 (인도네시아), 이태희 정치부 기자 (아르헨티나), 박지애 증권부 기자 (인도네시아), 남건우 증권부 기자 (브라질) ※기자이름 왼쪽부터 . 사진=김범석 기자

중국을 대체할 '포스트 차이나' 시장을 탐색하기 위한 각국의 움직임은 이미 수십년 전부터 시작됐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관심을 받는 지역은 동남아시아. 풍부한 자원과 내수시장 그리고 미개발 지역이 많아 투자 대비 높은 수익률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주된 이유다. 지난 2월부터 파이낸셜뉴스는 현 상황에 가장 적합한 '포스트 차이나'를 찾기 위해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주요 동남아시아 국가를 찾아 국가별 한국기업 진출 현황, 향후 성장 가능성 등을 보고 왔다.


또 지난 3월 파이낸셜뉴스는 대표적 자원강국으로 꼽히던 남미 국가들이 무분별한 무상복지로 어떻게 몰락했는지 반면교사로 삼기 위해 베네수엘라,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대표적 남미 국가를 다녀오기도 했다. 2018 해외 대기획을 통해 성장 가능성이 높은 동남아시아지만 나라별로 어떤 특색이 있고 어떤 점을 알고 진출해야 성공 가능성이 높은지, 또 기울어가는 남미 지역이지만 어떤 점에서 희망을 발견했으며 한국은 이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지 등을 해외 대기획 취재기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토론했다.
<편집자주>

▲박지애=나라별로 국민성은 어땠어?

▲이태희=아르헨티나와 브라질 국민들은 국민성 자체가 여유롭고 다급하지 않다는 인상이야. 아르헨티나에는 '소브레 메사'라는 문화가 있는데, 식사를 마치고 테이블에 그대로 앉아 담소를 나누는 시간을 가리키는 말이야. 이런 시간을 칭하는 용어를 만들었을 정도로 식사 후 여유롭게 이야기를 나누는 문화가 생활화돼 있다는 거지. 늘 여유가 넘치고 한편으로는 치열하지 못하다고 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 입장에서 봤을 때 '나태해지지 말고 경쟁력을 가져야 해'라고 지적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 의문이 들었어. 심지어 국민행복지수도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모두 20위권이고, 반면 치열하게 경쟁하는 우리는 50위권에 머물러 있어. 그들의 국민성을 지적하기 이전에 어느 정도 이해해줘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

▲김문희=베네수엘라는 사회 전반적으로 정상적인 삶을 이어갈 수 없을 정도로 문제가 심각해. 그런데 현지에서 만난 베네수엘라 국민들 가운데 열에 여덟은 문제를 해결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문제가 생겼네. 그럼 이 문제에 적응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더라고. 베네수엘라도 아르헨티나와 비슷하게 느긋한 국민성을 두고 '마냐나 마냐나'라는 말이 있는데, '내일 아침'이라는 뜻이야. 우리나라의 '빨리빨리'의 반대 격인데, 현지 교민이 베네수엘라 직원에게 오늘 할 일을 '빨리빨리' 하라고 하면 돌아오는 대답이 '마냐나 마냐나'래.

▲김유아=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 시몬볼리바르 광장을 거닐다 길을 지나던 베네수엘라 시민들이 하나둘 모여 얼떨결에 단체사진을 찍게 된 적이 있어. 그때는 속으로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이런 경제문제를 겪으면서도 밝고 웃음을 잃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했는데, 동행하던 현지 대학생이 얘기하기를 "나라 경제가 안 좋은데 저렇게 긍정적이다"라면서 안타까워하더라고. 이걸 다시 생각해보면 긍정적인 게 좋을 수도 있지만 낙관적이라서 문제 제기를 할 생각을 하지 않는 거지. 위기의식이 없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어. 낙천적인 것과 위기의식이 없는 것 사이의 경계가 모호하다고 생각해서 고민을 많이 했어.

▲김문희=그래서 나는 이런 악화된 상황을 고치기보다는 적응하려는 느긋한 베네수엘라 국민성도 현지 상황을 그렇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생각이 들어. 카라카스 시내에 가보면 쓰레기통을 뒤지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 거기서 만난 노숙자 가족이 있는데, 두살, 다섯살짜리 딸 둘하고 작년 12월부터 노숙을 했다고 하더라고. 아이들은 학교도 가지 못하고 쓰레기에서 찾은 음식으로 연명을 하는데, 엄마의 발톱은 마치 어제 받은 듯한 새 페디큐어가 돼있었어. 엄청 충격적인거야. 생각을 해봐. 쓰레기로 자기 자식이 연명하는 상황에 어떻게 페디큐어할 정신이 있느냐는 거야. 정말 이해하기 어려웠어.

▲박지애=인도네시아의 국민성 같은 경우는 300년 가까이 네덜란드 식민지로 살면서 당시 모른다고 말하면 죽임을 당하던 역사가 있어서 몰라도 안다고 하는 게 국민성으로 자리잡았대. 우리는 통역사가 정말 친절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무조건 다 알아듣는다는 듯이 말해서 철썩같이 믿었는데 그렇지 않아서 당황한 일들이 수차례 있었거든. 실제 현지 법인을 운영하는 법인장님의 말도 "인도네시아 시장 진출할 때 이들의 국민성을 먼저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하더라고. 왜냐하면 큰 프로젝트를 믿고 진행시켰는데 예상과 달리 안돼서 완전히 무너질 수 있으니까. 그래서 시장진출에 앞서 이런 국민성을 미리 알고 리더십을 발휘하지 않으면 현지에서는 어렵다고 들었어.

▲권승현=베트남의 국민성은 '자부심'으로 축약돼. 현지진출한 한국 기업 관계자들이 늘 얘기하는 게 "국민적 자부심이 강해서 그걸 건드리면 발 못 붙일 정도로 틀어질 것"이라는 거야. 베트남전쟁처럼 당시 세계 최고의 국력을 지녔던 미국을 상대로 이겼다는 자부심도 있어서, 일단 국민적 자부심이 되게 높아. 우리나라와 달리 예외적인 부분을 꼽자면 위안부 문제에 대한 시각이 달랐어. 베트남에서는 위안부 문제에 대해 '잊지는 않되 묻어두자'는 의식이 강해. 우리는 소녀상도 세우잖아. 베트남은 그러진 않아. 이런 문제에 제일 적극적이어야 할 대학생들도 별로 관심이 없다고 들었어. "문제의식은 갖고 있지만 문제 제기를 하진 않을 테니 우리(베트남)에게 경제적인 투자를 많이 해라"는 느낌이 강했어.

▲오은선=맞아. 역사를 잊지는 않지만, 먼저 경제성장을 우선으로 두고 경제적인 부분과 맞바꾸는 느낌이었어.

▲이태희=난 사실 아르헨티나 가기 전에 복지로 망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갔거든. 복지로 망한 게 아니라 복지를 제대로 제때 활용하지 못한 게 잘못이라는 생각이 들어. 한창 잘나갈 때는 복지를 잘 퍼줘도 잘 굴러갔지만 경쟁력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복지를 유지시켰기 때문에 경제위기가 심각해진 건데. 복지정책 펼치는 거에 대해서는 전문적으로 잘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 교육도 마찬가지고 좀 더 효율적이게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보여주기식이라고 생각했어. 지하철역에 갔는데 공기도 탁하고 먼지 날리고 시설이 무척 더러웠어. 그런데 거기서 노인들을 대상으로 무료 건강검진을 하고 있더라고. 되게 모순적이지 않나? 거기 앉아있는 거 자체가 건강에 해로울 거 같은데, 현지인들은 또 무료로 건강검진해주는 걸 좋아하더라고.

▲박지애=교육은?

▲이태희=교육도 마찬가지로 조금 더 돈을 내더라도 선생님들을 교육시키면 좋을텐데 그렇지 않더라고. 아르헨티나는 무상교육을 진행하고 있는데, 학교가 대략 낮 12시, 1시면 끝나. 현지 학생들한테 물어보니까 선생님이 가르치지 않고 가만 앉아서 자습하고 그냥 가고. 아르헨티나는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교사를 할 수 있더라고. 아르헨티나의 교육열 자체가 너무 낮아서 고민하던 현지 학부모는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까 교육열에 대해서 관심있게 물어봤었어. 한국이 부럽다고 하더라고.

▲김문희=베네수엘라도 대학 교육은 무상이지만, 현지 사정 때문에 교수들도 해외로 대부분 떠나서 수업 진행이 안된다고 하더라고. 학생들이 학교를 가는 게 의미가 없다고 그랬어. 이번에 내가 본 베네수엘라 거리의 아이들은 먹고남은 음식이나 다 녹아내린 맥도날드 아이스크림이라도 달라고 구걸하는 아이들이 기억에 너무 강하게 남았어. 사실 아이들이 나라의 미래라고 하는데, 아이들이 기본적으로 받을 수 있는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거리에서 구걸하는 아이들을 보니 안타까웠어.

▲이태희=아르헨티나에서 병원에 가봤을 때 시설이 좋지 않아서 진료받는 사람한테 "조금 더 돈을 지불하더라도 좀 더 나은 서비스를 받는 게 어떠냐"고 했더니 물론 자기도 그러고 싶지만 정부를 믿지 않는다고 말했어. 비용을 지불해도 정부의 비자금으로 갈 거고 서비스는 그대로일 것이라고 하더라고.

▲김문희=정부에 대한 불신은 베네수엘라도 마찬가지야. 정부에서 만든 사회복지카드 형태의 ID가 있는데, 우리 주민등록증처럼 개인정보를 정부에 등록하면 정부가 배급도 해주고 현금보너스도 나눠주는 복지카드야. 그런데 현지인들은 자신의 개인정보를 정부에 주는 걸 두려워 하더라고. 믿지 못하겠다는 거지. 차베스를 지지하는 차비스타 같은 사람들은 등록하기도 하는데 극히 일부라고 들었어. 또 빈민들에게 '클랩(CLAP)'이라는 아주 기본적인 식료품, 생활용품을 무상제공해주는 박스가 있는데, 사실 그것도 중간에서 착취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제대로 배급이 안되고 있다고 들었어.

▲김유아=베네수엘라는 입국할 때 충격적이었던게 공항 공무원들이 세금 명목으로 외국인의 돈을 빼았아. 한 사람당 40달러어치를 현지 화폐인 볼리바르로 내야 했는데, 현지 화폐가 없다고 하니 카드결제 단말기를 꺼내더라고. 기가 막히지. 더 황당했던 건 아시아 사람들만 골라서 세관에서 돈을 뺏더라고. 세어보니 우리 뒤로 중국인들 열다섯명 정도 서있었어. 베네수엘라에서 사업한다는 한 중국인 말로는 입국할 때마다 그런다는 거야. 공항 공무원이 외국인을 상대로 돈을 뜯어내는 것 자체가 정부의 부패를 보여주는 거야. 세금이라고 하지만 이유가 없었거든. 우린 다행히 출국할 때는 잡히지 않았지만 출국할 때도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해.

▲박소연=베트남 국민들은 착하고 부지런해서 진출 기업들이 선호한다고 하는데.

▲오은선=베트남 사람들이 부지런하다고 하는데 지역마다 분위기가 다른 것 같아. 어쨌거나 베트남 사람들은 전체적으로 저축을 안한다고 해. '굶어죽는다'는 개념이 없어서라고 하는데, 국내총생산(GDP)이나 발전 정도와 상관 없이 돈이 생기면 다 쓰는 분위기야. 2월 중순에 설날이 있는데 1년치 번 돈 다 쓰는 날이라고 들었어.

▲박지애=베트남은 어떤 업종이 주로 진출해?

▲권승현=나라마다 다른데, 일본은 간접자본시설(SOC)이 많고 싱가포르는 부동산사업을 다 잡고 있어. 우리나라는 제조업이 전체 분야의 70% 이상이라고 들었고. 최근엔 베트남 정부에서 유치하고 싶어하는 업종이 확실히 달라지고 있다는 말도 나와. 고용효과보다 기술이전을 원해서 고도화된 기술을 발전시키고 싶어하는 의지가 강해. 고부가가치 기업에 혜택도 많이 주는데, 베트남에 들어온 반도체 공장이 하나 있는데 바로 인텔이야. 베트남 국민들이 인텔을 굉장히 좋아하더라고.

▲남건우=중남미국가와 동남아국가들이 왜 차이가 나는가를 비교하고 싶어. 조건은 남미가 자원도 많고 인구도 많아서 좋아.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은 내수만 잘하면 된다는 게 기본이고, 해외기업 유치에 관심이 없어. 우리나라처럼 수출 늘려 경제발전시켜야 한다는 생각은 크게 없는 것 같아.

▲이태희=자국산업 보호 성향이 강해. 최근까지 아르헨티나로 수입되는 물품은 완제품을 들여올 수 없어서 수입 후 자국 내에서 조립하게 했어. 자국 제조업 성장 목적이자 자국시장 보호를 위해서였어.

▲오은선=베트남은 박항서 열풍으로 한국바람이 불었어. 하노이 진로포차 갔는데 사람이 엄청 많고 한국 술이라고 하면 좋아하고 일부러 찾아와. 그런데 그게 문화산업으로 연결되지는 않아. 드라마나 K팝이 지나갔는데 이를 이어갈 다음 산업, 먹거리가 없다고 해. 한국 문화에 대한 다음 수요는 어떻게 될지가 관건이야.

▲남건우=남미에서는 한국 기업 이미지가 나쁘지 않았어. 완제품 수입이 안되니까 현지에 공장이 있다.
그래서 익숙한 편이야.

▲김문희=베네수엘라는 반대로 진출했던 기업들이 다 떠나는 중이야. 삼성, LG 현지법인이 있긴 한데 한국 인력은 다 빠져 나갔어.

▲권승현=현지에서 어떤 사업이 유망할 것 같아?

▲김문희=베네수엘라는 치안이 안 좋아서 보안사업이 각광받는다고 들었어.

▲권승현=베트남은 인구가 젊고 인터넷도 굉장히 빨라. 시골 사람들도 웬만하면 휴대폰이 다 있거든. IT나 애플리케이션(앱) 사업이 유망하다고 해. 콘텐츠 사업도 각광받아서 유튜브도 인기라고 하더라.

▲박소연=현장취재 전과 직접 다녀온 이후 어떤 생각들이 바뀌었어?

▲김문희=베네수엘라는 정말 위험할 것이라 생각했어. 위험에 대한 주의를 아주 많이 받았거든. 그런데 광장에서 청년들이 춤추고 노래 부르고 그런 모습에 놀랐어.

▲김유아=뉴스로 접했을 때는 경제가 무너지고 사람들은 길거리에 나앉았다고 해서 그렇게 생각했는데 가서 보니 도로나 인프라가 되게 잘돼 있었어. 인터넷도 빠르고. 과거 한창 잘살 때 설치를 잘 해놓은 것 같았어.

▲권승현=베트남에 가기 전에는 포스트 차이나라는 얘기가 너무 오래 전부터 나와서 포화된 시장인 줄 알았어. 근데 아직 잠재력이 있더라. 이제 부동산 시장도 열리고 전선 시장도 꽃필 걸로 예측돼.

정리= gloriakim@fnnews.com gloriakim@fnnews.com 김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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