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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의 채권포커스] 한은 목표에 ‘고용안정’을 넣는 문제

마켓포커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4.23 15:21

수정 2018.04.23 16:23


/물가안정을 최우선으로 하는 한국은행, 고용안정을 목적조항에 넣는 문제에 대해 연구 중이다.
/물가안정을 최우선으로 하는 한국은행, 고용안정을 목적조항에 넣는 문제에 대해 연구 중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한은 목표(목적조항)에 '고용안정'을 명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한국은행법이 다시 수정될지 관심이 커졌다.

이 총재는 주말 미국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회의 참석 과정에서 한국 언론들을 만난 뒤 이같이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한은은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을 목표로 정책을 편다. 물가안정이 한은의 지상과제인 가운데 김중수 총재 시절 ‘금융안정’이 한은 통화정책의 또 다른 목표가 됐다.
이번엔 고용안정이 한은의 목표로 거론되는 것이다.

사실 한은이 고용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얘기는 수년 전부터 심심찮게 제기되곤 했다. 국회 등에선 고용 부진이 나타날 때마다 한은도 고용에 신경 써 달라는 식의 얘기를 하곤 했다.

■ 한은 목표에 ‘고용안정’ 넣는 문제

한국은행의 설명에 따르면 한은 목표에 고용안정을 명시하는 문제에 대해 이주열 총재는 “검토하고 있다”고 답을 했다가 이후 “연구 중”이라고 발언 수정을 요청했다.

이주열 총재는 “현재까지 우리가 가진 스탠스에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에 고용안정까지 집어넣으면 목표가 너무 많아진다"면서 "사실상 한은의 수단 중 주된 것은 금리인데, 금리정책을 가지고 여러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게 어렵다”고 밝혔다.

한은 목표를 확충하는 문제는 이전에도 논란이 된 바 있다. 한은의 수단(금리조정 등)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목표가 많으면 목표끼리 상충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또 어느 한 쪽 분야를 타겟으로 정책 일관성을 가져가기도 어려울 수 있다.

한은은 이 문제에 대해 그 동안 상당히 조심스러웠다.

지난 3월 이주열 총재 연임 청문회 당시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한국은행법 목적규정에 물가안정 외에 고용 안정과 적정 인구수 유지를 명시하는 것이 어떤가’라고 묻자 이 총재는 “한은법의 목적조항에 고용안정과 적정 인구수 유지를 추가하자는 논의는 고용과 저출산·고령화가 우리 경제가 해결해야 할 당면 과제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은의 보다 적극적인 역할에 대한 국민적 기대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했다.

총재는 그러나 “고용부진과 저출산·고령화는 주로 구조적 요인에 따른 것이므로 소비, 투자 등 수요측면에 영향을 미쳐 거시경제 안정을 도모하는 통화신용정책으로 고용안정과 적정 인구수 유지를 도모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라고 했다.

총재는 따라서 이를 중앙은행의 책무로 부과할 경우 정책수행 과정에서 중앙은행의 신뢰성이 훼손될 수도 있다고 했다.

현실적으로 저출산 문제나 고용부진, 인구수 유지 등과 관련해 금리정책으로 뭔가를 하기는 만만치 않다. 이러다 보니 한은 목적조항에 ‘고용안정’을 추가하는 문제 등에 대해선 한은이 해결할 수 없는 과제를 던져주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많았다.

증권사의 한 이코노미스트는 “한은에게 많은 책무를 부여하는 게 좋은 게 아니다”면서 “금리만 가지고 이런 저런 목표 달성을 다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고용안정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이지, 한은에 그 짐을 나눠봐야 한은의 금리정책 스탠스만 더 어지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 국가별로 다른 통화정책 목표..한은의 다소 달라진 ‘고용안정’ 입장

각 국가별로 통화정책의 목표는 다르다. 고용안정은 미국과 호주 등 일부 국가의 중앙은행에서만 명시하고 있다. 아울러 통화정책으로 고용안정을 달성하기가 원천적으로 쉽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한은은 총재 청문회 당시 국회 답변자료에서 "최대고용이 법정 책무로 규정된 미국 연준도 고용문제가 통화정책보다는 주로 노동시장 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요인들에 의해 결정된다는 의견을 표명한 바 있다”고 했을 정도다.

한국은행은 현행법 하에서도 물가와 금융안정뿐 아니라 성장과 고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통화신용정책을 수행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은행이 고용을 목표에 담는 데 있어서 과거보다 좀더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정권 교체 이후 문재인 정부가 청년실업 문제 등 고용에 경제정책의 방점을 찍고 있기 때문에 한은 역시 태도가 좀 바뀌었다는 것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이달 9일 "이주열 총재가 임명장을 받는 자리에서 경제정책의 최종목표는 고용이라고 밝혔다"고 전하기도 했다.

당시 이 총재는 “성장도 결국은 고용을 창출하는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정책방향은 맞다고 본다”고 얘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올해 2월과 3월 취업자 수 증가폭은 각각 10만4000명과 11만2000명에 그쳤다. 그간 30만명대 정도를 견조한 수준이라고 여겼지만, 연초 취업자 증가세가 뚝 떨어진 것이다. 한국은행은 12일 금통위날의 경제전망에서 올해 취업자수 증가폭을 26만명으로 1월 전망치(30만명)에서 하향 수정했다.

취업자수 감소엔 내수부진 등이 영향을 미치지만, 향후 한국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도 작용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부터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했으며, 앞으로 취업자가 크게 늘어나기 어려운 구조가 고착화될 가능성을 배제하기도 어렵다.

아무튼 일자리 확대를 최고의 경제정책으로 삼는 정부가 출현했지만 고용부진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국은행에 고용을 더 신경을 써 달라는 목소리도 커진 셈이다.

한국은행의 한 베테랑 직원은 “한은이 고용안정이란 목표도 한은법에 명시화하는 게 어떤지 연구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는데, (한은 총재의) 뉘앙스는 좀 긍정적으로 변한 것같다”고 말했다.

그는 “한은 역할에 대한 정치권이나 국민의 기대가 있는 데다 일자리 문제가 중요하니 일단 검토든 연구든 할 수밖에 없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 목표 충돌시 물가가 우선되긴 할 것인데…

중앙은행의 금리결정은 전 분야에 영향을 미친다. 국가별로 중앙은행의 목표 역시 조금씩 다르다. 통상 물가안정이 중앙은행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지만, 통화가치 안정이나 지급결제 안정 등을 목표에 명시화하기도 한다. 연준은 물가안정과 완전고용이라는 이중의 맨데이트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물론 중앙은행은 금리 결정시 경제 상황을 종합적으로 감안한다. 하지만 중앙은행법에 뭔가를 명시한다는 것은 정책을 펼 때 우선 순위를 두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대부분 중앙은행들의 1차적인 목표는 물가안정이다. 결국 금리를 움직여 통화량을 조절해 물가를 안정되게 하는 게 중앙은행이 할 일이다.

통화정책의 실제 운영에서 여러 목표가 충돌될 때는 인플레이션 문제가 우선시된다. 향후 한국은행이 물가안정과 금융안정 외에 고용안정을 목표로 삼을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물가가 안정이 돼 있는 상태에서 실업률이 급등한다거나 고용이 불안해지면 통화정책상에서 완화기조를 더 끌고 간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고용이 불안할 경우엔 목표간 충돌이 생긴다. 이 때 한은은 인플레이션을 더 중시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은행의 한 직원은 “여러 목표가 상충되면 물가에 우선 순위를 맞춰 정책을 펴면 될 것”이라며 “사실 변화된 경제, 금융 환경하에서 목표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는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시대적으로 고용의 중요성이 커지긴 했다”면서 “원칙을 고수하되 상황이 바뀌면 그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유연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한은 목표에 고용안정 들어가면 통화긴축 더 어려워질 것

다만 한은의 목표에 고용안정을 집어 넣어 현실적으로 얻을 수 있는 실익이 없다는 비판들도 많다.

증권사의 한 채권딜러는 “한은 목적조항에 고용안정을 집어 넣는 것은 좀 뜬금없다”면서 “금융중개지원대출로 고용 창출 기업을 지원할 수는 있으나, 향후 금리 조절 문제에 있어서 고용상황에 대한 비중을 높이는 것은 통화정책 자체를 왜곡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고용안정을 맨데이트에 넣으면 앞으로 금리를 올리기가 더 어려워질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향후 고용 상황이 만만치 않아 보이는 가운데 통화정책적으로 고용을 더 중시한다면 결국 금리인상이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른 증권사 채권딜러도 “한은 목적조항에 고용안정이 들어간다는 것은 금리 인하에 용이한 포석”이라며 “결국 그렇게 되면 저금리 현상 유지에 무게가 더 실리게 된다”고 말했다.

현실적으로 한국은행법 1조 1항과 2항에 있는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에 덧붙여 3항에 ‘고용안정’이 들어가기 만만치 않을 것이란 진단도 나온다. 물론 고용안정이 한은의 목적에 삽입되면 통화긴축은 더 만만치 않아질 것이란 예상이 다수다.


신얼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한은법 상에 1조 3항을 신설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면서 “그렇게 되면 듀얼 맨데이트가 아니라 트리플 맨데이어트가 되니 한은 총재가 우려하는 목적간의 상호 충돌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용안정이 목적조항에 들어간다면 1조 1항을 예컨대 ‘물가안정 도모, 고용안정을 바탕으로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정도로 수정하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이어 “이 같은 변경은 입법화를 해야 하는 문제여서 공감대 형성이 먼저”라면서 “목적이 추가되면 금리인상의 조건이 강화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taeminchang@fnnews.com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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