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논단]

'통일' 없는 '통일'의 시작

남북 정상들의 세 번째 만남이 이제 코앞이다. 만남의 모습은 지난 두 번의 것과 같겠지만 회담 장소가 판문점이라는 것과 사전에 진행되는 과정을 보면서 이번 회담은 내용과 성과 면에서 크게 다를 것이란 기대를 갖게 된다. 신비주의적 방식으로 남측에는 일정마저도 숨겼던 두 차례의 평양회담과 달리 이번에는 사전에 직통전화로 남측 정상과 인사를 나누자 하고, 자신의 구상을 어렴풋이나마 공개했을 뿐 아니라 미국, 중국과도 정상회담을 예약하면서 한반도 역사상 제일 큰 판을 벌여놓았기 때문이다. 주변 4개국 정상까지 출연시키는 이런 극적인 상황 전개는 정말 오랫동안 준비해 온 연출가의 시나리오가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 것이라 생각된다. 오가는 얘기들이 워낙 상상을 넘는 반전이라 북측의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온갖 기대와 의심의 추측이 난무하게 만들어 놓고 정작 회담장에서, 또 회담이 끝난 후 어떤 반전을 유도하려하는지 그 결론의 대강을 보려면 인내가 필요할 것 같다.

그 연출가가 누구든, 시나리오가 어찌되었든 이번 정상회담에서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를 얻어내야 하는 절박함이 있다. 양측이 '체제보장과 경제지원' 그리고 '핵폐기'를 조건으로 줄다리기를 하겠지만 실제로는 남과 북 모두 '각자 체제의 안전보장'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남과 북은 두 차례의 정상회담까지 하면서도 서로 국가로 인정하고 있지 않는 모순적 특수 관계를 유지했지만 이제는 서로를 정상국가로 인정하는 것만이 평화의 시작이라고 커밍아웃해야 한다.

종전 이후 지난 70년 동안 남과 북은 '한 민족 한 국가'라는 당위성을 앞세워 통일을 위한 만남과 논의를 계속하면서도 실제로는 서로 상대방을 굴복시킬 수 있는 무기를 준비해왔다. 어쩔 수 없는 이런 이율배반적 의심과 힘의 논리가 지배했던 이 기간의 통일 논의와 실천방안은 실현될 리 만무했다. 오히려 '통일'이란 말은 각자가 원하는 방식을 전제로 한 것이었기에 통일이란 말을 쓸수록 적대감은 커지고 서로 멀어져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인해 왔을 뿐이다.

우리 정부가 '평화'를 위해 '북의 체제보장'을 담보해주는 것은 지금까지 명분론에 눌려서 얘기하지 못했던 북의 실존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중대한 전환이라 생각한다. 많은 어려움이 있겠지만, 남과 북이 정상적 관계로 '새로운 시작'을 출발하고 남쪽이 북쪽을 '지원'하는 대상이 아닌 정당한 교역과 협력의 대상으로 상호 정당하게 거래하는 관계로 발전시켜야 한다. 북쪽은 체제가 안정되고 경제를 개방하면 중국이란 벽을 넘어 세계를 상대로 교역하면서 1970년대의 남쪽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발전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남측도 북의 인적·물적 자원을 정당한 대가로 상당기간 활용할 수 있고, 이를 통해 남측이 당면한 상당히 많은 문제를 해결하면서 새로운 성장을 추동할 수 있다.

'통일' 없는 '통일', 통일은 평화를 보장하지 못하지만 평화의 추구는 통일로 가는 길이 된다. 두 체제를 가지더라도 평화를 지키며 공동으로 번영하는 것이 통일을 내세우며 다투는 것보다는 훨씬 바른 통일의 길임을 보았기에, 이번 정상회담의 연출가가 생각하는 작품의 결론이 이와 같기를 바란다.

한헌수 숭실대 전자정보공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