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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의 채권포커스] 역사적 남북정상회담, 그리고 금융시장 

마켓포커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4.27 14:03

수정 2018.04.27 15:24

사진=파이낸셜뉴스, 남북 정상의 역사적 만남
사진=파이낸셜뉴스, 남북 정상의 역사적 만남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맞아 금융시장에 어떤 변화가 올지도 큰 관심이다.

지난 1953년 7월 27일 한국이 빠진 채 북한과 미국, 그리고 중국 대표의 서명으로 체결된 정전협정이 중대한 분기점을 맞았다.

정전협정 이후 남한의 5000만, 북한의 2500만 주민들은 서로를 만날 일이 없었다. 65년 전 강대국이 그어 놓은 38선을 경계로 원래 하나였던 민족은 둘로 갈라져 대립을 지속해 왔다. 이번 회담이 변화의 단초가 될 수 있다.

지난 2000년, 2007년 두 차례의 회담과 달리 이번엔 북한의 ‘비핵화 문제’가 걸려 있어 더욱 중요하다.
비핵화와 평화 선언을 담은 ‘판문점 선언’이 나온 뒤 향후 한반도에 적지 않은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이번 회담은 이전과 달리 정권 초에 이뤄진다. 문재인 정부가 이 역사적 이벤트를 계기로 한반도와 세계에 평화의 기운을 불어 넣을 수 있을지 모두가 주목하고 있다.

불과 몇 달 전까지 북한과 미국이 으르렁거렸고 한반도 위기가 고조되곤 했지만, 연초 평창동계올림픽의 북한 참가를 계기로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금융가에선 이 회담이 가져올 국가의 위상, 산업의 이해 득실 등을 따져보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 진전과 남북 정상의 정례 만남, 그리고 남북 교류와 협력 진척 상황에 따라 금융시장은 지속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 남북 갈등과 화해시 금융시장이 움직이는 방식

남북 관계가 금융시장에 미칠 영향과 관련해 우선 과거의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간 북한과 관련해선 긍정적인 뉴스보다 부정적인 뉴스가 금융시장에 더 익숙했다.

북한과 관련한 지정학적 위험 발생시 국내 금융시장은 단기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위기 고조시 주가가 하락하고 원/달러 환율이 뜨고(원화가 약세로 가고) 채권가격이 빠지는(금리가 오르는) ‘트리플 약세’가 일어나곤 했지만 영향이 지속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북한의 예상치 못한 도발에 대해 '한국물'이 일시적으로 타격을 받는 일은 종종 일어났다. 하지만 곧장 저가매수 등이 들어오면서 그 여파는 오래 가지 않았다. 북한과의 갈등이 심화되더라도 길게 잡아 1주일 정도면 시장이 별다른 신경을 안 쓰게 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위기가 고조되더라도 결국은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란 믿음 때문에 금융시장의 가격변수가 되돌림 되는 것은 당연했다. 부정적인 뉴스에 비해 긍정적인 뉴스는 제한적인 편이었다.

지난 2006년 6월과 2007년 10월 회담 당시 주식시장 반응은 크지 않았다. 당시의 주가지수 그래프를 펼쳐 보면 남북 회담에 그리 큰 무게를 두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2000년 회담 시엔 IT 버블이 꺼지면서 주가지수가 하락하는 상황이었으며, 2007년 회담시엔 중국 투자가 화두였다.

딱히 회담 자체가 금융시장의 큰 흐름을 바꾼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이번 회담의 경우 이전보다 좀더 구체적이다. 이전 회담이 ‘만남’ 자체에 좀더 목적을 두고 있었다면 이번 회담엔 한반도 비핵화 이슈가 걸려 있는데다 회담이 잘 마무리될 경우 남북 경협이나 북한 개방에 관한 얘기들이 많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주식시장에서 남북경협주가 테마를 형성하면서 급등한 뒤 회담을 앞둔 시점엔 차익실현 등으로 고꾸라지기도 했다. 테마주 투자는 말 그대로 특정 상황의 분위기에 편승한 리스크가 큰 투자다. 테마 형성 초기에 일찍 뛰어들어 뒤늦게 덤벼드는 둔감한 투자자에게 주식을 넘겨주고 나와야 한다. 모두가 이 종목이 좋다고 인식할 때 던져버려야 하는 게 단기투자 방식이다.

■ 금융시장 공통 관심사, 지정학적 리스크 해소

외국인 입장에서 볼 때 남북 관계 개선은 주식, 채권, 원화를 모두 강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오면 외국인이 한국물에 투자할 때 요구하는 리스크 프리미엄은 낮아진다. 한국 주식과 채권을 깎아서 사야 할 요인이 줄어드는 것이다.

다만 최근 외국인은 주식을 대규모로 팔기도 했다. 특히 지난 25일 코스피시장에서 외국인은 7657억원을 대거 순매도하기도 했다. 이 규모는 근 5년만에 가장 큰 대규모 매도였다.

한국의 신용등급은 무디스 기준 Aa2로 세 번째로 높지만 남북 대치 때문에 투자자들에게 좀더 낮은 가격을 제시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많이 해소된 상태라는 평가들도 많다.

다만 앞으로 남북관계 전개 양상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남북 화해 무드가 금융시장에 나쁠 것은 없다.

A 금융사의 한 관계자는 “일단 기본적으로 남북 화해 무드가 지속된다면 이는 금융시장의 트리플 강세 요인”이라며 “어찌됐든 외국인이 한국물을 좀더 편하게 살 수 있게 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투자자가 한국 증권시장에 관심을 가질 것이란 얘기도 있다.

B 증권사의 한 채권투자자는 “한국 채권에 투자하고 싶어하던 보수적인 외국인 투자자 중엔 남북간의 갈등 때문에 쉽게 사지 못했던 경우도 있다”면서 “지금 같은 남북 화해 무드가 이어진다면 외국인 투자자 풀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외환시장이 먼저 반응하고 이에 따라 주식, 채권 등이 반응할 수 있다는 관측도 많다. 남북 화해에 따른 원화 강세 무드가 자금의 물꼬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이미 남북정상회담 재료나 화해의 분위기는 시장의 가격변수에 녹아 있는 측면도 크다.

C 은행의 한 외환딜러는 “지정학적 리스크 해소로 원화가 더 강해질 것이란 기대감이 있긴 하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알려졌던 재료”라며 “원화가 얼마나 더 추가로 강해질지 불확실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 북한 비핵화 프로세스 등 감안해서 실제 남북 경협 속도 살펴야

이번 회담 이후 남북 경제협력이 다시 재개될지, 북한의 개방이 빨라질지 등도 큰 관심사다.

이날 회담의 주제는 ‘비핵화’이며 경제 협력 문제는 추후 별도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남북이 이산가족 상봉, 북한에 대한 인도적 물자 지원 등의 과정을 거친 뒤 경제협력 논의가 본격화될 가능성이 있다.

북한은 지난 21일 ‘핵과 경제의 병진노선’을 ‘경제총력 노선’으로 변경한다고 밝힌 바 있다. 향후 경제협력에 대한 논의들은 시간이 걸리는 사안이다.

D 증권사의 한 딜러는 “북한이 비핵화 프로세스를 진행한 뒤 경제제재 해제 등이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런 과정을 생각한다면 성급히 뭔가가 바뀔 가능성은 낮다. 한국과 북한의 의도만으로 되지 않고 미국으로 대표되는 세계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정상회담을 앞두고 남북 경협주가 테마를 형성하며 급등한 뒤 급락하는 양상을 보였는데, 앞으로는 실질적인 남북관계 개선과 관련된 진행 상황이 중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의 경우 현재 일인당 국민소득이 900달러가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당 국민소득이 2300달러를 넘어선 베트남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라오스나 미얀마 보다도 낮은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의 일인당 국민소득이 3만불 수준임을 감안할 때 남과 북의 차이는 상당히 크다. 시간이 걸리는 문제지만 한국이 북한의 인프라 투자 등을 도와준다면 남과 북이 모두 윈윈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다.

E 운용사의 한 채권매니저는 “좀 먼 얘기긴 하지만 향후 북한의 싼 노동력을 이용하고 싶어 하는 기업들이 늘어날 것”이라며 “궁극적으로 통일은 한국이 직면한 인구문제를 돌파하는 데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의 경제력이 낮기 때문에 그 만큼 북한의 성장도 빨라질 수 있다. 전교 10등이 9등으로 올라가는 것은 어렵지만, 전교 450등이 400등으로 올라가는 것은 쉽다”면서 남북 경제협력이 향후 남북 모두 이득을 얻을 수 있는 길이라고 풀이했다.

주식투자자가 남북 관계 진전 상황을 지금부터 냉정하게 살핀다면 투자의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란 조언도 보인다.

F 운용사의 한 주식매니저는 “우선 경협 관련 건설주, 전기나 가스 관련 유틸리티주, 철도 건설 관련주, 중소기업 등의 지원과 관련된 은행주를 향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접경 지역 경제특구와 관련해 중국, 일본 등도 숟가락을 얹으려고 할 수 있다. 북한의 개방은 확대될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북한과의 관계 개선은 단기가 아니라 중장기 과제이며 주가가 미래에 대한 기대치를 바로 반영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북핵 실험 등으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져도 조만간 주가가 되돌려진 것처럼 남북 관계 개선과 관련된 종목도 기대감이 선반영돼 급등한 종목이면 위험하다”고 조언했다.

■ 남북정상회담, 일단 금융시장 영향 제한적일 것이란 인식 강해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27일 주식, 채권, 원화 모두 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다만 이미 알려진 남북 회담 그 자체가 가격변수에 지대한 영향을 줬다고 보기는 어렵다.

남북 화해 기대감이 작용하는 측면이 있지만, 미국 금리의 하락과 뉴욕 주가 급등 등이 이날의 증권시장에 영향을 미쳤다.

G 운용사의 채권매니저는 “일단 환율 경로를 통해 금융시장이 흘러가는 방향을 살펴야 한다”면서 “향후 남북 관계가 진전되면 북한 쪽 인프라 개선과 관련해 재정지출이 일어날 수 있다. 이 경우 국채발행이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그러나 “남북 화해에 반대하는 거대 야당인 자유한국당의 저항이 있을 것이고 쉽지 않은 문제”라며 “파주와 같은 남북 경계선 인근 지역의 땅값이 급등했는데, 더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H 운용사의 주식매니저는 “뉴욕 주가 상승으로 국내 주가도 오르고 있다. 남북 정상회담이 실질적으로 주가를 끌어올릴지 여부는 가시적인 회담 성과가 나와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낙관만 할 수는 없는 국제적 역학관계

이런 가운데 일각에선 사람들이 남북 화해의 무드에 젖어 모든 게 잘 풀릴 것이란 쪽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목소리도 내고 있다. 특히 남북 관계는 한반도 주변 열강의 이익이 걸려 있으며 이를 잘 조율하기가 쉽지 않다.

과연 미국이나 중국, 일본 등 주변 강대국들이 진정한 남북 화해를 원할지 등을 따져 봐야한다는 지적들도 보인다.

사실 주변 열강들의 경우 남과 북이 대치하면서 적절하게 긴장을 조성해주는 게 서로 편한 측면이 있다. 강대국들의 이익균형을 살피면서 가야 하는 것이다. 아울러 특정 강대국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도 좋지 않다.


E 운용사 매니저는 “미국은 북한 때문에 한국과 일본에 많은 무기를 팔아먹고 있다. 미국 정부는 자국 군수산업과 이해관계가 있다”면서 “미국 군수산업이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한국, 일본 등 주요고객을 놓치고 싶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정가에서도 남과 북의 문제를 두고 각자 주판을 두드리고 있을 것”이라며 “미국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남북한을 이용하려 할 것이고 중국은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한반도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려 할 수 있어 남북 관계가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taeminchang@fnnews.com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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