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직장인 10명 중 6명 직장내 괴롭힘 경험..."그래도 참고 견딥니다"

이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5.01 10:06

수정 2018.05.01 10:06

직장내 괴롭힘, 남성(68.2%)이 여성(64.3%)보다 많아
수직적 권력 구조로 인한 현상, 직장 내 상담소 설치 비율 낮고 탈출구 찾기 어려워
독일·일본, 괴롭힘 형태에 따라 법적 대응.. 정신적 피해 보상도
# 평일에 모처럼 정시에 퇴근한 직장인 A(34)씨는 친구들과 술 한 잔 마실 생각에 기분이 들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상사의 문자 메시지가 왔다. A씨는 “상사가 급한 일이라 어쩔 수 없다고 변명을 했지만 기분이 불쾌했다”라며 “다음 날 출근해보니 바로 해야 되는 일도 아니었다”라고 하소연했다.

A씨의 사례처럼 사업주 또는 상급자들이 직장 내의 지위를 이용해 신체적·언어적 등 공격을 가해 상대방을 괴롭히는 일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2013년 포스코 에너지 상무의 라면 사건, 지난해 호식이 두 마리 치킨 회장의 성희롱 사건, 최근 ‘물벼락 갑질’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 사건 등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큰 사건들도 여전하다.

하지만 직장인들은 괴롭힘을 당해도 상담이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창구를 찾기 힘들고, 대응하지 못하고 참는 경우가 많았다.
직장 내 괴롭힘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괴롭힘을 당하는 직장인들이 많다. 남성이 여성보다 직접적인 피해 경험이 더 많았으며, 공공재 산업 분야의 피해 경험률이 가장 높았다. / 사진=프리큐레이션
괴롭힘을 당하는 직장인들이 많다. 남성이 여성보다 직접적인 피해 경험이 더 많았으며, 공공재 산업 분야의 피해 경험률이 가장 높았다. / 사진=프리큐레이션

■ 직장인 10명 중 6명 “직장 내 괴롭힘 당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직장 내 괴롭힘 실태와 제도적 규율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과거 5년간 직장 내 괴롭힘을 경험한 직장인은 66.3%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지난해 8월 30인 이상 사업체에 종사하는 만 20세~50세 미만 근로자 2,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보고서에서 직장 내 괴롭힘은 사업주, 상급자가 지위나 다수의 우월성을 이용하여 특정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집단 따돌림, 방치, 유기, 괴롭힘, 학대, 성희롱 등의 방법으로 신체적·심리적 고통을 가하는 일체의 행위를 의미한다.

직접 피해를 경험한 유형은 ‘퇴근 후 또는 휴일에 연락을 했다’라는 답변이 46.1%로 가장 많았다. 이어 ‘명확한 업무지시를 하지 않아 업무 수행을 어렵게 했다(43.3%)’, ‘개인 의사와 상관없이 회식이나 친목모임 참여를 강요했다(37.5%)’, ‘업무 수행이나 업무 분담을 할 때 불평등한 취급을 했다(36.1%)’ 등이 이어졌다.

성별로는 남성(68.2%)이 여성(64.3%) 보다 직접적 피해를 경험했다는 답변 비율이 더 높았다. 다만 반복적인 괴롭힘을 당했다는 답변은 여성(7.2%)이 남성(6.8%)보다 많았다. 업종별로는 전기, 가스, 증기 및 수도 사업 등 공공재 산업 분야의 피해 경험률이 80.5%로 가장 높았으며 소득이 낮을수록 피해를 더 당했다.

■ 상담소 부족하고 괴롭힘 당해도 참는 직장인들 많아
직장인 10명 중 6명이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지만 상담소는 턱없이 부족했다. 뿐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한 직장인들은 대응하지 못하고 그냥 참는 경우가 많았다.

직장 내 상담소 설치 현황을 살펴보면 ‘사내에는 있고 사외에는 없다’라는 답변은 19.3%, ‘사내에는 없고 사외에는 있다’라는 답변은 6.3%에 불과했다. ‘사내 및 사외에 있다’라는 답변도 9.3%에 그쳤다. 상담을 하고 싶어도 대상을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상담을 하더라도 ‘문제 해결을 위해 지원을 해줬다’라는 답변이 46.4%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상담을 하거나 해결을 위해 지원하지 않았다’는 답변은 23.9%, ‘상담을 하거나 해결을 위해 지원하는지 모르겠다’라는 답변도 29.7%를 차지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직장인들은 괴롭힘을 당해도 문제 해결을 위해 대응하지 않았다. 무대응 하는 이유는 ‘무엇을 해도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직장 내 상담소가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담소에서 상담을 해도 문제 해결이 잘 되지 않아 참는 직장인들도 많았다. /사진=연합뉴스
직장 내 상담소가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담소에서 상담을 해도 문제 해결이 잘 되지 않아 참는 직장인들도 많았다. /사진=연합뉴스

■ 독일, 4가지 법으로 피해자 구제.. 일본은 정신적 피해까지 보상

독일은 직장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형태의 괴롭힘에 대하여 ‘Mobbing’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법률상 정의 규정이 마련되어 있지 않지만 판례를 통해 해당 개념을 구체화 화면서 ‘직장 내 괴롭힘’을 지칭하는 노동법적 용어로 사용한다.

독일은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 민법, 일반 균등 대우법, 경영조직법, 산업안전보건법으로 대응하고 있다. 민법은 배려의무, 신의성실의무, 일반 균등 대우법은 기본권과 관련된 차별에 해당하는 괴롭힘에 대하여 예방하고 제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경영조직법에서는 근로자의 고충처리 청구 방법 및 불이익 조치의 금지를 규정했으며, 산업안전보건법에서는 사용자에 대한 직장 내 괴롭힘 행위의 제거에 대한 이행청구권 등을 규정했다.

일본은 직장 내 괴롭힘을 행위에 따라 ‘섹슈얼 하라스먼트(성희롱)’, ‘파워 하라스먼트(직장 내 괴롭힘)’, ‘스멜 하라스먼트(냄새 괴롭힘)’ 등으로 나눠 대응하고 있다.

실정법상 직장 내 괴롭힘에 관한 규정이 별도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민법상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에 대한 불법 행위 책임, 안전배려의무 위반,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업무상 질병 인정 등 기존 법률들을 통하여 피해 근로자의 구제에 활용하고 있다.

직장 내에서의 정신적 피해에 따른 산업재해 보상을 위한 지침도 있다. 1999년 ‘심리적 부하에 의한 정신 장애 등에 관한 업무상 외의 판단지침’을 만들어 업무상 심리적 부하에 의한 정신질환의 판단 기준을 마련했다. 직장 내 괴롭힘이나 근로자에게 심리적인 스트레스를 주는 사안을 추가적으로 개정하면서 업무상 재해 인정의 범위를 넓혔다.

괴롭힘을 당하는 직장인들을 위해 외부 상담 시스템, 법 개정 등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 사진=fn DB.
괴롭힘을 당하는 직장인들을 위해 외부 상담 시스템, 법 개정 등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 사진=fn DB.

■ 수직적 권력 구조가 문제.. 외부 상담 시스템 갖춰야

전문가들은 직장 내 수직적인 권력 구조 때문에 괴롭힘 현상이 계속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특히 우리나라는 잦은 야근, 적은 인력으로 많은 업무를 수행하는 환경과 권력을 악용하는 사례가 빈번해 직장 내 다양한 형태의 스트레스가 존재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성신여대 심리학과 서수연 교수(임상심리전문가)는 직장 내 괴롭힘 중에서도 따돌림 현상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은따, 왕따를 당했을 경우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특정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라며 “어떤 경우에는 피해자의 성격 등 개인적인 요인에 비중을 두고 따돌림 당하는 것을 합리화하는 경우도 있다”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직장인들의 비밀 보장을 위해 외부에 심리 상담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서 교수는 “직장 내에서 상담을 하면 인사팀에 보고되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라며 “기업 심리 상담을 전문적으로 하는 EAP(Employment Assistance Program) 시스템이 확산되는 추세”라고 전했다. 이어 “상담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고, 자존감 향상 및 대처 기술 습득 등 도움을 받을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최근에는 감정 노동자들의 정신적 피해를 보호할 수 있는 산업 안전 보건법 내 조항이 신설되며 스트레스를 해소해 줄 의무가 있다는 인식도 생기고 있다”라며 “직장에서 직장인들을 위해 스트레스 해소에 대한 복지를 의무적으로 제공해주면 좋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hyuk7179@fnnews.com 이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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