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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판문점 선언’ 국회 동의를 위하여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5.01 17:00

수정 2018.05.01 17:00

[여의나루] ‘판문점 선언’ 국회 동의를 위하여

조약이란 '명칭을 불문하고 국가 간에 법률상 일정한 권리·의무를 부담하는 합의'를 말한다. 우리 헌법은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한다. 상호원조 또는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 등 일정한 조약은 국회 동의를 얻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북한 간의 합의를 이런 조약으로 보아 국회의 동의가 필요한지는 논란과 의문이 있었다.

그동안 남북은 총 245건의 합의서를 채택했다고 한다. 법적 효력 논란이 불거진 것은 1991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부터였다.
남북 관계를 법적으로 규율할 것을 합의한 최초의 공식 문서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북한은 1991년 12월 24일 연형묵 총리의 당중앙위원회 제6기 19차 전원회의 보고, 같은 달 26일 중앙인민위원회와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 연합회 승인을 거쳐 김일성 주석이 비준했다. 우리가 유사한 절차를 밟지 못한 것은 북한에 대한 법적 평가가 엇갈리는 게 가장 큰 이유이다. 국회 비준동의 등 남북 합의를 조약으로 볼 경우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게 된다.

정부와 헌재, 대법원 등의 공식 의견은 한결 같다. '남북기본합의서는 국가 간의 조약 또는 이에 준하는 것으로 볼 수 없고,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이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조약은 '국가 간 합의'라는 원론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4·27 판문점 선언'의 구속력을 갖추기 위해 국회 동의를 얻도록 요구하고 있다. 남북 사이에 합의와 파기, 협력과 대결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확실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문제는 조약 관련 절차를 밟을 수 없다는 점이다. 문 대통령이 남북관계발전법(이하 '법')에 따라 국회 동의를 받도록 천명한 것은 그 때문이다.

2005년 제정된 위 법에 의하면 남북합의서는 '우리 정부와 북한 당국 간에 문서의 형식으로 체결된 모든 합의'를 말한다. '국회는 국가나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남북합의서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남북합의서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가진다'고 한다. '남한과 북한의 관계는 국가 간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조항도 있다. 헌법적 논란을 우회하기 위한 규정임을 알 수 있다. 이런 법이 있지만 문제는 또 있다. 법에 따르면 남북합의서는 헌법이 아니라 법 자체에 의해 체결.비준 및 공포된다. 남북 합의의 내용이 조약의 성격을 갖더라도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이 아니라 위 법에 의해 체결.공포된 조약이 되는 셈이다. 남북 합의에 대해 국내법적 효력을 부여하는 법적 근거가 무엇인지 문제 될 수 있다. 헌법에 의해 체결.공포된 조약은 헌법에 의해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 반면 법에 의하면 남북 합의서가 조약인지, 법률인지, 명령인지 정확한 규정이 없다. 언제든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꼼꼼히 따지자면 판문점 선언 등 남북 합의의 국회 동의는 숱한 난제를 안고 있다. 단순히 자유한국당의 반대를 비난할 수준을 훨씬 넘는 것이다. 남북 관계는 향후 급물살을 탈 게 분명하다. 군사·경제·문화·체육 등 여러 분야에서 각종 합의가 봇물을 이룰 것이다.

남북 간 합의를 뒷받침할 제도화 노력이 정치권에서 활발하게 전개돼야 하는 이유다. 자유한국당 역시 당장 판문점 선언에 대한 동의 여부만이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위장 쇼'라고 일축할 수만도 없다. 긴 호흡으로 볼 때 자유한국당이 집권할 경우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침 헌법 개정도 논의되고 있는 시점이다.
헌법부터 각종 법률까지 남북 관계관련 전반적 제도정비에 나서야 한다. 여당 역시 어떻게든 야당을 국회로 끌어들여 남북 관계를 이끌어갈 논의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여야의 대승적 결단이 긴요한 시점이다.

노동일 경희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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