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로]

봄이 그냥 올까마는…

햇살은 따스하고 하늘은 푸르다. 산야에는 온갖 꽃들이 다투듯이 피어난다. 정신 없이 하루를 보내다가 한숨을 돌리려 망연히 앉아 있어도 찾아오는 행복감이 기꺼운 계절이다. 더러는 이상화가 부른 것처럼 빼앗긴 들에도 오는 봄 탓일까, 훌쩍 떠나고 싶은 날이 많아지는 충동의 계절이기도 하다.

우리네 일상 곳곳에 들이닥친 봄은 이처럼 그저 안온감을 주다가 먹고살기 위해 치열하게 부대끼느라 잊고 있었던 새로운 꿈을 꾸게 한다. 그 꿈은 이뤄지지 않아도, 설사 용기를 내 내닫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족할 그런 것이다.

지난달 27일 남북 정상이 사상 최초로 판문점에서 만나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와 평화, 번영, 통일을 지향하는 선언문을 발표하고 두손을 맞잡았을 때 가슴에 뭉클한 무엇이 있었다. 핵 위협과 전쟁의 위기를 안고 수십년을 살아야 했던 우리에게 '새로운 길'이 열릴 수도 있겠다는 기대감은 당연했다.

그러나 대결과 적개심의 역사가 켜켜이 쌓인 한반도에서 어찌 봄이라고 쉽게 올 수 있을까. 남북 두 정상의 합의가 곧바로 앞으로의 성공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 세기의 담판 역시 결과를 장담할 수 없다.

"디테일의 악마를 넘어서는 게 가장 큰 과제"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말처럼 완전한 비핵화에 도달하는 데는 난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사실쯤은 상식에 속한다. 갈 길은 멀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걸음마다 살얼음판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김정은과 우리 측 주사파들의 숨은 합의'라느니 '인권탄압의 장본인과 호화로운 만찬을 나누고 대통령이 앞장서 김정은 일가 미화에 공을 들인다'느니 내부를 향해 총질을 해댈 건 뭔가. 여기에 대응한답시고 '외계인'이니 '덜 떨어진 소리'라느니 '반대만 하는 못된 심보'라느니 말싸움을 확대하는 건 또 뭔지.

국민들은 안다. 한반도에 부는 훈풍을 6월 지방선거까지 연결시키고 싶은 쪽과 어떻게 하든 차단하고 싶은 쪽의 정치적 속셈 때문이라는 것을.

안도현은 소망했다. '이 봄날이 다 가기 전에' 남의 허물을 함부로 가리키던 손가락과 남의 멱살을 무턱대고 잡던 손바닥을 부끄럽게 하소서. 인간에 대한 모든 무례와 무지와 무관심을 부끄럽게 하소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시 찾아오기 힘든 이 기회를 소중하게 다루고 가꿔서 평화의 결실을 맺도록 하는 것이다.
어렵게 틔운 싹이 수포로 돌아갔을 때 어떤 위험이 예비돼 있는지를 생각한다면 말이다.

그러자면 역사의 전환기에 적극 참여하거나 생산적인 논의의 장을 마련하지는 못할망정 적어도 어깃장으로 비치는 행위는 중단해야 한다. 한쪽에서는 한반도의 봄을 독점한 양 다른 견해를 짓누르는 따위가 얼마나 볼썽사나운 일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이 봄이 가기 전에.

doo@fnnews.com 이두영 사회부장·부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