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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의 채권포커스] 비둘기파 금통위원의 물가 강의

마켓포커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5.10 14:24

수정 2018.05.10 15:45

사진=조동철 금통위원
사진=조동철 금통위원

한국은행 금통위원 가운데 비둘기파로 알려져 있는 조동철 금융통화위원이 물가를 중시하는 통화정책을 강조했다.

조 위원은 9일 한국은행 출입기자를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통화당국 입장에선 물가안정목표제의 성실한 수행이 법에 의해 주어져 있는 책무인 동시에 시장 혹은 국민과의 약속"이라고 말했다.

조 위원은 그러면서 "기대 인플레이션이 목표에서 크게 이탈하지 않도록 하는 게 통화정책의 핵심"이라며 "(그간의) 긴축 정책이 기조적 인플레이션 하락에 영향을 줬다"고 했다.

예컨대 2010년대 초중반 금리 인하기에 빠르게 움직였으면 물가 상승률이 올라와 '저물가' 고심이 한결 줄었을 수 있다는 진단이다.

■ 금리 인하기에 더 빨리 내렸어야 했다는 주장

조 위원은 2012년 하반기∼2015년 사이에는 통화정책이 긴축적이었다고 주장했다.

코스콤 CEHCK단말기(3943)를 보면 한국은행은 2012년 7월 정책금리를 3.00%로 25bp 내린 것을 포함해 2016년 6월까지 8차례의 인하를 단행했다.
이 사이에 정책금리인 한국은행 기준금리는 사상 최저치인 1.25%로 낮아졌다.

금리가 사상 최저치로 낮아졌지만 이 과정이 늦었다고 본 것이다. 기조적 인플레이션(근원물가 상승률)이 물가안정목표 수준을 계속해서 밑돌았지만 2012년 하반기 이후 기준금리는 근원물가 상승률을 상당폭 상회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물가가 별로 오르지 못해 실질 기준금리(기준금리-근원물가 상승률)가 높아지면서 결과적으로 '긴축적'인 통화정책이 됐다는 주장이다. 실질금리는 명목금리에서 인플레이션을 뺀 값이다. 국내10년 국채 금리는 2000년대 초반 7% 내외에서 지금은 2%대로 내려와 있다. 물가상승세가 그 만큼 둔화됐기 때문이다.

조 위원은 특히 "2013년 이후 인플레이션을 기조적으로 하락시킨 데엔 긴축적인 통화정책이 자리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통화정책을 펼칠 때 물가목표제를 사용하는 국가는 일반적으로 기대 인플레이션이 상승하면 금리인상, 하락하면 금리인하로 대응한다. 2016년 6월까지 진행된 금리인하에 좀더 적극적인 금리인하가 필요했다는 시각이다.

조 위원은 "기준금리 인하 폭이 기대 인플레이션 하락 폭보다 작을 때는 명목 기준금리가 하락하더라도 실질 기준금리가 오히려 상승해 긴축적인 정책 기조가 형성된다"고 말했다.

실질 기준금리가 높으면 경기는 부담을 가지게 되고 이 경우 기대 인플레이션은 추가로 더 떨어지는 악순환이 초래될 수 있다는 게 그의 관점이었다.

사실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최근 수년간 지금의 중기물가목표인 2%를 넘지 못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11년만 해도 3.7% 수준이었으나 2012년 2.1% 정도로 낮아진 뒤 2013~2014년엔 1.3% 수준으로 낮아졌다. 이후 2015년과 2016년엔 각각 0.70%, 0.97% 수준으로 더 떨어졌다.

2013년 소비자물가가 1% 초반으로 떨어진 뒤 2014년에도 이 수준 정도밖에 오르지 못하자 디플레이션을 우려하는 경제학자 등의 목소리가 강해졌다. 이후 지난해엔 1.90%대로 물가상승률이 올라오면서 2%에 근접했다. 올해 한국은행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6%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 일반인과 채권시장이 물가를 보는 시각의 차이
자료=조동철 금통위원
자료=조동철 금통위원

일반인들은 지금도 '물가가 많이 오른다, 물가 수준이 높다'는 얘기들을 많이 한다. 하지만 통계청이 발표하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해 초반만 해도 1%를 겨우 넘는 수준이었다.

채권시장에서 거래되는 물가채에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기대치가 녹아 있다. 사실 수급적인 문제 등으로 물가채 가격 왜곡이 문제지만, 물가채엔 어느 정도 물가 상승률에 대한 기대값이 들어 있다. 명목 국고채 금리와 물가채 금리의 차이, 즉 손익분기 인플레이션(BEI)이 기대 인플레이션을 대변한다.

이 값은 2012년 당시의 물가안정목표였던 3%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으나 2015년 이후엔 1%를 밑돌면서 채권시장의 기대인플레이션이 일반인과 큰 차이가 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현재 일반인의 기대인플레이션은 2%대 중반 정도다. 전문가 기대 인플레는 2% 정도다.

조 위원은 "경제주체들의 기대 인플레이션 편차가 확대돼 있는 최근의 현상을 주목해야 한다"고 했다.

사실 일반인들의 기대 인플레이션과 채권시장의 기대 인플레이션 차이가 지금처럼 벌어지고 장기화된 적도 없다.

수출 위주의 한국경제는 세계 경제 흐름과 연관돼 움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물가채 등을 통해 보는 한국의 기대인플레이션은 미국보다 더 낮다.

조 위원은 "2% 내외에서 안정돼 있는 미국의 기대인플레이션에 비해 국내 기대인플레이션은 2013~2014년을 전후에 급락하면서 미국과의 명목금리 격차를 사라지게 만든 핵심 요인이 됐다"면서 "2013년 이후 채권금리에 반영된 기대인플레이션 하락의 원인을 세계적 저인플레이션에 돌리긴 어렵다"고 했다.

결국 구조적 원인이 한국 물가상승률이 제한되는 원인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다만 실물경제의 구조적 요인이 10~20년간 지속됐다는 점에서 고령화, 생산성 정체 같은 구조적 요인이 2013~2014년에만 크게 작용했다고 보긴 어렵다는 게 조 위원의 분석이었다. 조 위원은 이 당시 '특이 현상'을 금리를 제 때 안 내려서 나타난 현상으로 봤다.

길게보면 저출산 고령화, 생산성 정체 등은 한국경제 성장률을 떨어뜨리고 실질 중립금리도 낮추는 요인이다.

아무튼 조 위원은 잠재성장률과 자연 실질금리가 낮아졌음에도 통화정책을 과거의 명목금리 수준을 감안해 수행함으로써 '의도치 않은 긴축정책'을 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결국 이런 의구심은 2013년 이후 인플레이션 하락이 '통화정책의 결과'라는 추론으로 이어졌다.

조 위원은 단기적 인플레이션 등락이 비통화적 요인에 의해 촉발될 수 있지만, 중장기적 인플레이션 기조는 결국 통화정책에 부합한다는 경제이론을 감안할 때 이런 추론이 맞을 수 있다고 했다.

한국은행은 2015년 말 2016~2018년 물가안정목표를 이전의 3%에서 2%로 하향 조정했다. 즉 한국경제에 적합한 물가상승률은 더 이상 3% 정도가 아니라 2% 수준이라고 한은이 스탠스를 '크게' 전환한 것이다.

2013년엔 미국의 테이퍼 탠트럼(양적완화 축소에 따른 시장발작)에 따른 자본유출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컸다. 조 위원은 2013년 5월 이후 기준금리가 2.5% 수준에서 동결돼 1년 이상 유지한 것을 실기로 봤다. 2014년 중반 이후의 기준금리 인하가 늦었다는 주장이다.

조 위원은 사람들의 물가에 대한 전망, 즉 기대 인플레이션이 확고히 안정돼 있어야(필립스 곡선 위치가 이동하지 않아야) 통화정책이 제대로 먹힐 수 있다고 강조했다. 디플레이션 기대가 강해 20년간 침체를 보인 일본 경제, 1970년대의 높은 인플레이션 기대를 바꾸기 위한 금리인상과 1980년대 초반 미국 경기침체 등이 이 문제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한국은 '물가안정목표제'에 대한 한국은행의 약속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물가안정목표제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확보할 때 경제주체의 기대 인플레이션이 안정되고 통화정책의 효과도 커진다는 것이다.

자료=조동철 금통위원
자료=조동철 금통위원


■ 금리인상기 비둘기파 위원의 스탠스..금리에 대해 말 못하지만 '물가 낮다'
조동철 위원은 현재의 통화정책 기조에 대해 "긴축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얼마나 완화적이라고 보는지에 대해선 "이 자리에서 말할 사안이 아니다"는 입장을 보였다.

근원 물가 1.4%에 대해선 "아직은 낮은 것"이라고 했다. 이 물가지표를 보면서 많은 분들이 완화적 통화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한은은 최근 금리 인상과 관련해 '완화 정도의 축소'라고 표현하고 있다. 금리를 조금 더 올려도 정책 자체는 완화적인 기조 속에 있다는 것이다. 조 위원도 표면적으로 이 부분에 대해선 동의한다는 입장이었다. 다만 지난 11월 금통위에서 보여준 금리인상 반대 의견 등을 감안할 때 금통위 내에서 금리인상에 가장 부정적인 인물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한국은행은 "규제가격을 제외한 물가가 2.0%에 가깝다"는 내용을 발표하기도 했다.

한은 실무진 쪽에선 규제가격이나 일시적 요인들을 제외한 '기조적' 물가 흐름이 2%에 가깝다고 본다. 규제가격은 정부의 직간접적인 통제를 받기 때문에 시장 수급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따라서 설득력 있는 물가 흐름을 말하기 위해선 규제가격을 제외한 물가를 볼 필요도 있다.

예컨대 과거 담배 가격 인상이 물가에 큰 변동을 초래한 바 있다. 전기나 수도 요금, 보육비 등도 규제와 얽힌 항목이다.

조 위원은 규제가격 문제에 대해 "단기적으로 규제가격 때문에 물가지수가 크게 왔다갔다 하는 것에 대해 일희일비 하기는 어렵다는 정도만 말하겠다"고 했다.

조 위원 입장에 대한 가장 직설적인 질문이라고 할 수 있는 '물가 목표 2% 달성을 위해 정책을 더 써야 하나(금리를 내려야 하나)'는 지적에 대해 그는 "현재 물가수준이 낮은 것은 사실이다는 정도만 말하겠다"고 했다.

자료=조동철 금통위원
자료=조동철 금통위원

■ 조동철 vs 이일형
조동철 금통위원은 2016년 4월 금통위원 취임 당시 "친정부 비둘기로 알려진 조동철입니다. 지금은 나이가 들고 체중도 불어 잘 날지 못합니다"는 인사말을 건넨 뒤 업무를 시작했다.

시장에서 이미 그를 '비둘기파'로 지목했던 이유는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이코노미스트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KDI는 낮은 물가를 근거로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거론하기도 했고, 금리인하를 주장하기도 했다. KDI와 한은은 디플레이션 가능성을 놓고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조 위원은 당시 '날지 못하는 비둘기'라는 농담을 사용해 일각의 삐딱한(?) 시선에 맞섰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계속 금통위 내에서 가장 유화적인 인물 중 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작년 11월 6년 5개월만의 금리 인상 때도 반대했다.

시장에선 이런 조 위원의 성향을 알고 있기 때문에 전일 조 위원의 발언에 대해 그러려니 했다는 지적도 보였다.

증권사의 한 채권딜러는 "전날 조동철 금통위원은 기존의 스탠스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속내를 다 드러내지는 않았다"면서 "다만 그는 계속 금통위 내 대표 비둘기임을 알려 왔다"고 말했다.

다른 딜러는 "조 위원은 현재도 강성 비둘기파로 보인다. 다만 지금 시장이 주목하는 사람은 (금리인상) 소수의견을 낼 만한 다른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 딜러는 이일형 위원이 이달 금리결정회의에서 소수의견을 낼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2016년 봄 여러 명의 금통위원이 바뀔 때 조동철 위원이 비둘기, 이일형 위원이 매로 평가 받았다. 지금까지 이들은 그런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이일형 위원은 올해 3월말 연세대 강의에서 선진국의 정책 정상화 과정에서 경기회복세가 뒷받침되면 우리나라에도 수출 호조, 내수진작을 통한 중립금리 상향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의 강의를 한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특히 이 위원은 지난해 10월 금통위에서 '금리인상 소수의견'을 내면서 11월 금리인상을 예고하기도 했다.

한편 12일에 임기가 만료되는 함준호 위원은 매파나 비둘기파 색채가 크게 강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비둘기파가 득세하던 시절엔 매파적으로 비치기도 했다. 그의 후임이 되는 JP모간 서울지점의 임지원 이코노미스트는 애널리스트 입장에서 7월 금리인상을 예상하던 사람이었다.
금융시장 다수의 예상과 비슷했다.

taeminchang@fnnews.com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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