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출판

책으로부터의 해방

조윤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5.16 17:09

수정 2018.05.16 17:09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엔 쉽게 몰입하지만 책 한권 읽는 것은 왠지 버거운 시대…
책과 화해하고 마주하고 사귀고 헤어지며 그 안의 것들을 오롯이 내것으로 만드는 법
책혐시대의 책읽기 김욱/개마고원
올해는 책의 해다. 정부가 '책의 해'를 지정한 것은 1993년 이후 25년만이다. '나도 북튜버' '위드북' '북캠핑'는 정부와 출판계가 손잡고 펼치는 행사도 다양하다. 이러한 행사의 목표는 단 하나다. 전 국민이 한 권의 책이라도 더 읽는 것, 그것이다. 소설가 한강이 세계적 권위의 문학상인 영국 맨부커 인터내셔널을 수상하는 등 국내 문학의 위상은 한 단계 높아졌지만 우리나라는 '책 안 읽는 나라'다.
우리나라 성인 10명 중 4명은 일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 지난해 독서율은 1994년 조사가 시작된 이후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김욱/개마고원
김욱/개마고원


일상에서 느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의 '소확행'이 올해의 키워드가 될 정도로 각박한 세상이다. 학생들은 공부와 취업에, 성인은 돈벌기와 살아남기에도 벅찬 이 시대에 독서는 쉽지 않은 소일거리가 됐다. 물론 TV나 스마트폰 등을 이용하는 시간을 보면 '시간이 없어서 책을 못 읽는다'는 하소연에는 의구심이 든다. 그런데 현실을 생각해보자. 현실에 지쳐 잠시 쉬는 시간, 가볍게 읽히는 시나 소설 또는 필요에 의한 실용서적은 그럭저럭 읽혀지지만 어려운 기초과학, 인문사회 관련 책은 읽을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책의 제목 '책혐시대'는 '너무 갔다' 싶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이른바 '책혐' 대상을 '지금 당장 필요한 실용서적이 아니고, 어렵지만 장기적으로 도움을 줄' 책이라고 한정한다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최소한 그런 종류의 책이 기피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니 말이다. 저자는 "세상의 진실을 이해하도록 도와 독자를 창의적으로 각성시켜주는 책이 바로 눈앞에 있어도 못 알아보거나, 읽었지만 안 읽으니만 못한 책읽기를 하고 있는 세태에 대한 우려의 표현"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사실 좀 심각하다. 책은 생각을 성장시키는 가장 유력한 도구다. 책읽기를 멀리한 대가는 인지 능력의 지속적인 퇴화다. 2013년 OECD가 발표한 국제성인역량비교를 보면, 한국인 전체의 언어능력 점수는 24개 조사국 평균 정도지만 세대별로는 큰 차이가 난다. 젊은층(16~24세)은 전체 4위인 반면 중장년층(55~65세)은 최하위권이다. 이 격차는 조사대상국들 중 가장 컸다.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학창시절에만 열심히 공부하고, 그 후에는 지적 능력을 연마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본래 나이가 들수록 인지능력이 떨어지긴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급격한 하락을 보이는 나라는 없다. 인구 노령화 문제가 심각하다지만, 뇌는 그보다도 더 빨리 늙어가고 있는 것이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책의 해' 출범식에서 "스마트폰에 쏟는 시간이 2시간20분인데 책을 읽는 시간은 20분도 안 된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삶의 수준이 높아지고 국민소득도 3만 달러 시대를 앞두고 있지만 내면은 황폐해지고 있는 게 아닌가 우려스럽다"고 했다.

'단순한 기계는 지능을 가진 인간처럼 진화하고 있는 세상인데 지능을 가진 인간은 단순한 기계처럼 퇴화한다면'이라는 질문을 맞닥뜨리면 그 심각성이 더욱 실감된다. '책혐'이 계속된다면, 한국은 조만간 '늙은 두뇌'들로 가득 찬 나라가 되고 말테니 말이다.

다양한 좋은 책들을 소개하며, 독서를 권하는 책들은 많다. 이 책이 그들과 다른 것은 무조건 독서 예찬을 하지 않는데 있다. 책이 중요한 건 그것이 우리의 생각이 커가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아무리 대단한 사상가와 현자들의 책을 읽더라도 자기 것으로 만들지 못한다면 의미없다.

이 책은 그래서 책과 화해하고, 마주하고, 사귀고, 헤어지는 책읽기 세계로의 여행 4단계로 구성돼 있다. '화해하고 마주하고 사귀고'까지는 잘 이해되는데 헤어지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책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 되라는 의미다.
그저 추종할 것이 아니라 비판적 책읽기를 통해 한 단계 앞서 나아가라고 말이다. "'책을 만나면 책을 죽이고 넘어서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책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조언이다.

yjjoe@fnnews.com 조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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