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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의 채권포커스] 한국의 외환시장 개입 공개

마켓포커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5.17 14:19

수정 2018.05.17 16:20

자료=한국은행
자료=한국은행


한국의 외환당국이 예고한 것처럼 '외환정책 투명성 제고 방안'을 통해 외환시장 개입내역 공개 방식을 밝혔다.

한국은 외환 순거래(매수에서 매도를 차감한 거래) 내역에 대해서 반기별로 공개하기로 했다. 1년 후부터는 분기별로 공개하면서 공개 주기를 당긴다.

그간 외환개입에 대해 한국이 공개하지 않았던 만큼 시장안정조치(외환개입) 내역 공개에 따른 외환시장 적응기간이 필요한 점을 감안해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다. 한국은행 홈페이지를 통해 대상기간 종료 후 3개월 이내에 공개한다.

따라서 올해 하반기 외환 순거래 내역은 내년 3월말에 공개하고 내년 상반기 내역은 내년 9월말 공개한다.
이후 내년 3분기 순거래는 그해 12월말에 공개하고 그 해 4분기 거래는 2020년 3월말에 공개하게 되는 것이다.

■ 마냥 비공개로 버티기 어려웠던 한국..예상대로 보수적 공개로 접근

지난달 중순 발표됐던 미국의 '환율보고서'는 "한국이 외환시장 개입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선물환 시장을 포함해 한국은 2017년 외환을 90억달러 순매수했다"면서 외환시장 개입 공개를 요구했다.

보고서는 특히 "한국 당국의 개입은 원화가 달러에 대해 7.2% 절상되고 실질실효환율 기준으로 1.8% 강해졌을 때 이뤄졌다"면서 한국의 환시장 개입을 의심하는 듯한 표현을 사용했다. 즉 한국이 수출을 위해 원화 약세를 선호한다는 의구심을 표하는 듯했다.

미국은 보고서에 한국이 투명하고 적절한 방식으로 외환시장 개입에 대해 즉시 보고하기를 촉구한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그러면서 '단지 진짜 예외적인 경우'(only truly exceptional circumstances)에만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외환개입 공개 관련 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그리고 그 방식은 예상대로 '보수적인' 쪽이었다. 일단 6개월간의 '순' 거래에 대해 3개월 후에 공개하고 이후엔 분기별 거래에 대해 3개월 후 공개하는 방식을 거론한 것이다.

올해 초 정부는 외환시장 개입내역에 대한 공개 방침을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으며, 미국의 환율보고서 압박 등과 관련해 원화가 강해지기도 했다. 이에 따라 재료로서는 이미 시장의 가격변수에 녹아 있는 측면이 크다.

정부와 한은은 "주요국 사례를 참조해 외환정책의 투명성을 국제적 수준에 부합하게 제고하되, 시장 영향을 감안해 단계적으로 추진키로 했다"면서 "환율은 시장에서 결정되도록 하되 급격한 쏠림 등 급변동시에는 시장안정조치를 실시한다는 외환정책 기조는 일관되게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국이 보여왔던 기존 스탠스와 별로 달라진 것은 없어 보인다.

외환당국은 또 "외환정책 투명성 제고는 우리 외환정책 운영에 대한 불필요한 오해를 해소하고 정책 신뢰도를 높이는 데 기여할 것"이라며 "우리 외환정책에 대한 대내외 신뢰도 제고는 중장기적으로 외환시장의 안정성을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다만 시장 일각에서 당국의 스무딩 오퍼레이션 자료 등을 활용해 투기적 매매를 할 가능성 등에 대해선 면밀히 관찰할 것임을 밝혔다.

외환당국은 "외환당국의 시장안정조치 내역을 이용한 투기거래 가능성 등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우므로 시장 모니터링을 더욱 강화하는 한편 투기에 의한 과도한 쏠림 현상 발생시 시장안정조치를 적극 시행할 것"이라고 했다.

■ 외환개입 공개,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면

사실 대부분의 선진국이 외환당국의 시장안정조치 내역, 즉 외환개입에 대해 공개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국 가운데 34개국이 시장안정조치에 대해 공개하고 있다. 공개하지 않는 단 한 나라가 한국이었다.

OECD엔 미국이나 유로화 사용국, 일본 등 선진국 뿐만 아니라 체코, 폴란드, 헝가리, 터키, 멕시코, 칠레 등 개도국들도 가입돼 있다.

글로벌 경제의 주도세력인 G20에선 13개국이 공개하고 있다. 공개하지 않는 나라는 중국, 사우디, 남아공, 러시아, 인도네시아, 그리고 한국이다.

한국으로서는 공개하지 않는 명분을 찾기가 사실 어려웠다. 수출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지대한 특성이 있지만, 선진국이나 웬만한 개도국까지 공개하는 상황에서 계속 버티기는 어려웠다.

각국이 공개하는 주기, 그리고 순매입 규모 여부 등은 아주 다양하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중앙은행(ECB) 체제에 있는 나라들이나 홍콩, 터키, 멕시코는 일별로 개입 내역을 공개한다.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는 주별로, 영국, 일본, 호주, 인도는 월별로 공개한다. 이 나라들은 순매입 규모만 공개하는 게 아니라 매입, 매도 규모를 구분해서 공개한다.

캐나다, 뉴질랜드, 과테말라, 브라질도 월별로 공개하지만 순매입 규모만 공개한다.

미국은 분기별로 매수와 매도를 모두 공개한다. 가장 공개 텀이 긴 스위스는 연별로 공개하며, 그것도 순매입만 공개하는 식이다.

그간 국제통화기금과 미국 등이 한국의 외환개입 공개를 거듭 요구해 온 가운데 한국도 이제 '공개 국가'의 대열에 들어서게 됐다. 그 방식은 6개월, 순매입 규모 공개다. 이후 공개주기가 짧아지는 형태를 취했다.

■ 미국 등의 요구 들어주고 불필요한 오해 없앤다

한국이 환시장 개입 공개에 나선 것은 미국 등의 '요구'가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외환시장 규모 확대,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 등 대외건전성 향상 등도 감안됐다.

한국이 1997년 12월 자유변동환율제로 이행한 뒤 1998년 일평균 외환거래량은 11억달러였다. 이후 지난해엔 228.5억불로 20배 이상 거래량이 늘어났다. 신흥국 통화 가운데 거래량이 가장 많은 편에 속한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39억달러까지 감소했던 외환보유액은 현재 4000억달러 수준으로 100배 이상 늘어났다. 단기외채가 총외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7.7%로 안정적이다. 즉 대외건전성과 대외충격시 대응능력 향상도 외환시장 개입 공개에 대한 부담을 줄인 요인이다.

정부와 한은은 외환시장 개입 내역 공개가 외환시장, 그리고 우리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으로 봤다. 동시에 오해를 풀 필요성도 있었다.

정부와 한은은 "시장안정조치 내역을 비공개하면서 한국이 특정 정책목표를 위해 인위적으로 원화가치 저평가를 유도하고 있다는 불필요한 오해 및 투명성 부족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면서 "시장안정조치 내역 공개를 점진적으로 시행할 경우 시장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다수였다"고 설명했다.

■ 이번 공개 주기와 범위 결정.. IMF, 미국 등과 소통한 결과물

외환당국의 환 시장 개입 정보 공개 범위와 주기에 대한 결정은 IMF나 미국 쪽과 협의를 거쳐 이뤄졌다. 이에 따라 당장 공개범위 등이 크게 바뀔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기획재정부의 이형렬 외화자금과장은 이번 조치에 대해 "투명성 등에 대해 적절히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한 결과물"이라고 밝혔다.

이 과장은 향후 공개 범위나 주기가 변할 가능성에 대해선 "미래의 일을 말하긴 어렵다"면서도 "IMF나 미국 쪽과도 수시로 협의를 했기 때문에 서로의 생각들을 안다"고 설명했다.

외환 시장 개입 공개가 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해선 "가능한 영향을 안 미치는 방향으로 노력했다. 오늘 시장을 봐도 영향이 별로 없다"고 했다.

한국은행 쪽에서도 이번 공개 결정이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봤다.

한국은행의 권민수 외환시장팀장은 " 시장안정조치(외환개입) 내역 공개를 함으로써 금융·외환시장에 문제가 되면 안 된다. 이번 조치는 그렇지 않은 범위에서 투명한 정책수행 결과를 공개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향후 미국 등에서 더 잦은 공개를 원할 가능성에 대해선 "현재로서는 그러지 않을 것으로 본다. 이번 결정은 국내 외환시장 성숙도와 주변 상황을 고려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사실 각국이 처한 입장들은 모두 다르다. 내수 위주의 경제도 있고 수출 위주의 경제도 있다. 환율 정책과 제도가 달라서 환 시장 개입 내역 공개 주기와 범위는 제각각이다.

예컨대 선진국 스위스의 경우 공개 주기가 연간으로 돼 있다. 이는 스위스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스위스는 중앙은행이 직접 시장에 참가해 플레이하는 성격이 강하다. 각국 특성에 따라 공개 주기나 범위 등이 다른 것이다. 환율이 민감한 경제구조를 가진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들도 따로 있다. 이런 상황이 감안되는 것이다.


금융시장은 이번 결정을 예상해 왔다. 다만 여전히 환시장 개입이 원화 강세 쪽에 좀더 힘을 실어주지 않을까 하는 인식도 일부 남아 있긴 하다.


시중은행의 한 외환딜러는 "환 개입에 대해 공개를 안 하다가 공개를 하게 되는 것인 만큼 원화 강세 재료로 보는 게 여전히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taeminchang@fnnews.com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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