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찬 칼럼]

시장의 아우성을 들어라

금융당국 압박에 끄덕도 안해
노동정책은 현장서 죄다 퇴짜
정부 일방통행 더이상 안 통해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와 금융감독원 다툼에서 내가 진짜 놀란 건 '분식회계'보다 삼바의 당당한 태도다. 한 고위간부는 지난주 금융위원회 감리위원회에 나가면서 기자들에게 "최종 결론이 나기 전에 사기, 분식회계 등을 언론에 공개한 금감원에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그는 40년 삼성맨이다. 삼성맨은 신중한 태도로 정평이 나 있다. 그런 사람이 '금융검찰' 금감원을 상대로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금감원으로선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이미 금감원은 금융사와 다투다 낭패를 본 적이 있다. 전임 최흥식 원장은 금융사 수장 선출에 끼어들다 되레 본인이 부정채용 의혹에 휘말려 물러났다. 그 후임이 김기식 원장이고 다시 그 후임이 현 윤석헌 원장이다. 금감원장이 세번 바뀌었지만 3연임한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건재하다. 이런 마당에 이번엔 삼바를 만났다. 감리위가 끝나면 이어 증권선물위원회가 열린다. 증선위가 금감원 손을 들어준다고 끝이 아니다. 이미 삼바는 행정소송 카드까지 내비쳤다.

한마디로 금감원 말발이 안 선다. 달리 말하면 시장의 힘이 그만큼 세졌다. 윤석헌 아니라 누굴 금감원장으로 앉혀도 예전처럼 기업을 쥐락펴락하기 힘들다. 시장은 더 이상 고분고분하지 않다.

노동시장은 '문재인 패러독스'에 빠졌다. 일자리정책이 되레 일자리를 줄인다. 시장을 경시한 후유증이다. 문 대통령은 꼭 1년 전 청와대에 일자리 상황판을 세웠다. 그 위에 취업자 수, 청년실업률 등을 적었다. 성적표는 민망하다. 학생이라면 엄마한테 야단 맞을까 감추고 싶은 수준이다. 특히 취업자 수가 그렇다. 문 대통령은 5년간 일자리 131만개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공공부문 81만개, 민간부문 50만개다. 현실은 어떤가. 취업자 수 증가폭은 올 들어 10만명대 초반으로 뚝 떨어졌다. 한 해 평균 26만명은 늘어야 5년 동안 131만개를 채운다. 지금 같아선 꿈같은 숫자다.

문재인표 노동정책은 일자리의 양과 질을 뒤섞었다. 최저임금은 일자리의 질을 높이는 정책이다. 임금이 오르면 소득이 늘고, 소득이 늘면 소비가 늘고, 소비가 늘면 공장이 돌고, 공장이 돌면 다시 임금이 오르는 선순환을 그렸다. 이게 소득주도 성장이다. 하지만 시장은 콧방귀를 뀌었다. 인건비가 오르니 대뜸 사람부터 줄였다. 사람이 하던 일을 기계가 대신 한다. 이게 세상 돌아가는 이치다.

근로시간을 강제로 줄이면 과연 일자리가 늘까. 3명이 하던 일을 4명이 나눠서 하게 될까. 그런 순해 빠진 사장이 있다면 경영자로선 빵점이다. 회사 말아먹기 십상이다. 인건비가 싼 해외로 공장을 옮길 궁리부터 하는 게 정상이다. 근로시간 단축은 오는 7월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된다. 이 정책 역시 문재인 패러독스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잽을 날리고 있다. 3년 전 삼성물산 합병을 다시 들고 나왔다. 그때 정부가 국민연금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바람에 손해를 입었으니 배상하라는 거다. 참 얄밉다. 재벌 지배구조의 빈틈, 최순실 사태의 빈틈을 여지없이 파고든다. 박수를 칠 생각은 없지만 눈여겨볼 점은 있다.
엘리엇은 시장이 작동하는 원리를 한 치 에누리 없이 보여준다.

기업의 힘, 시장의 힘이 부쩍 커졌다. 위에서 뭐라 하든 제 갈 길을 간다. 정부가 이 사실을 빨리 깨달으면 좋으련만.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