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영 칼럼]

핵 있는 평화는 허구다

北 개방 안하면 분단 장기화.. 북·미 어설픈 타협 경계해야
평화협정보다 비핵화 먼저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으로 평화의 봄이 오는 듯했다. 하지만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중매를 잘못 서면 뺨이 석 대라더니, 북한이 미·북 정상회담에 앞서 몽니를 부리면서다. 한·미 연합훈련을 빌미로 고위급회담을 일방 중단하더니 탈북종업원 송환을 요구했다. 핵실험장 폐기를 취재하려는 국내 언론의 애간장을 태우기도 했다.

어찌 보면 예견된 사태다. 북한은 그간 핵개발에 세습체제의 명운을 걸었다. 체제안전을 확실히 보장받지 못하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 게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선 영리한 선택이다. 미국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도 모자라 '영구적 비핵화'(PVID)를 요구하자 남한을 압박하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월 정상회담 준비위에서 "남북이 '함께 살든, 따로 살든' 함께 번영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굳이 '따로 살든'이라는 말을 덧붙인 건 문재인정부의 일차적 지향점이 남한 주도 통일이 아니라 평화 공존에 있다는 뜻이다. 현 정부는 역대 정부와 달리 북한 붕괴 불원, 흡수통일 및 인위적 통일 불(不)추진 등 '3-NO' 입장을 강조해 왔다.

평화공존론이 북 세습체제 포기를 전제로 한 박근혜정부의 '통일대박론'에 비해 현실적이긴 하다. 남북에 두 주권국이 존재하더라도 양쪽 주민과 자본이 경계를 넘어 자유로이 오간다면? 이른바 '사실상(de facto) 통일'이다.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책일 순 있다. 다만 이는 북한 주민에게 자유와 시장화를 허용하는 개혁·개방이 선행돼야 가능하다. 확률이 높아 보이지 않은 전제다.

실제로 북한 내부 사정에 정통한 이들일수록 김정은이 핵을 내려놓고 개방을 선택할 가능성에 회의적이다.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는 최근 북한이 '비핵국가로 포장된 핵보유국'으로 남으려 할 것으로 봤다. 중국·베트남식 개방 대신 '주민통제가 가능한 개성공단 모델' 확대를 추구할 것이라면서. 김일성대에서 수학한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국민대)도 '개방 없는 시장화'를 점쳤다. "북한 주민이 잘사는 쌍둥이인 남한의 진면목을 알면 북 체제가 무능한 증거로 인식할 것"이라는 게 근거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더 많은 지참금(체제보장)을 바라는 북한과 보다 확실한 혼수(비핵화)를 기대하는 미국 간 밀고 당기기가 한창이다. 우리로선 트럼프·김정은 대좌가 성사돼도 마음을 놓아선 안 된다. 혹여 트럼프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에 필이 꽂혀 있음을 김정은 위원장이 눈치채고 있다면? 뉴욕타임스의 관측처럼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수준의 비핵화 약속'을 할 공산이 크다. 북 대륙간탄도미사일(ICBM)만 없애고 기존 핵무기 폐기를 '단계적 감축'이라는 식의 외교적 수사로 미봉한 채….

핵을 완전히 버리지도, 반쯤의 개방도 않으려는 북한과의 공존이 평화로울 리는 만무하다. 크리스토퍼 힐 전 미 국무부 차관보는 '김정힐(김정일+힐)'이라는 말을 들었던 대화파였다. 그런 그도 "평화협정은 북한 비핵화가 실제 이뤄진 뒤 마지막 단계에서 이행돼야 한다"고 했다. 흘려들어선 안 될 충고다.


문재인정부는 미·북 간 어정쩡한 타협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 보수층 일각의 걱정처럼 북한에 의한 적화는 기우라 치자. 하지만 평화협정 체결 이후에도 북한과 동거할 상대는 미국이 아니라 우리다. 북핵의 인질이 된 상태에서 분단체제가 장기화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무슨 수로든 막아야 할 것이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