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공간에, 당신을 맞추고 사는 게 행복한가요?

박지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5.28 17:18

수정 2018.05.28 17:18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개막, ‘자유공간’의 본질을 묻다
어른·어린아이·동물 등 각각의 눈높이서 본 공간 만든 스위스 ‘황금사자상’ 영예
한국은 1960~70년대에 주목, 독재정권 속 건축가 활약 담아
공간에, 당신을 맞추고 사는 게 행복한가요?


【 베니스(이탈리아)=박지현 기자】 1년 전 '예술 만세(Viva Arte Viva)' 외침으로 가득했던 이탈리아 베니스는 올해 '자유공간(Freespace)'의 본질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 위한 전세계 건축가들의 상상력 넘치는 답변들로 가득찼다. 현지시각으로 지난 26일 개막한 제16회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얘기다.

아일랜드 여성건축가 이본 파렐과 셸리 맥나마라가 총감독을 맡아 열리는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은 본전시 71개팀, 스페셜 섹션 29개팀, 국가관 전시에 65개국이 참여한 가운데 오는 11월 25일까지 6개월간 진행된다. 한국 작가로는 서도호 작가가 영국 빅토리아 알버트 뮤지엄과 함께 아르세날레의 본전시장 내 '어플라이드 아트 파빌리온'에 영상 작업물 및 설치 작품을 출품했다.

■올해 주제 '자유공간' 황금사자상은 스위스가 차지

이번 건축전의 총감독 파렐과 맥나마라에 따르면 '자유공간'은 건축의 핵심 아젠다인 '관용과 인간애를 구현하는 공간'을 의미하지만, 각 국가관들은 '프리'라는 단어가 주는 다양한 해석의 여지에 근거해 전시를 통해 각각의 답을 내놨다.

올해 건축전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스위스는 '스비체라 240:하우스 투어'(사진)라는 주제로 전시를 진행했다.
어른과 어린이, 동물 등 제각각 다른 눈높이에서 바라본 공간은 각자에게 다른 크기로 느껴지게 마련이다. 이런 점에 착안해 스위스는 국가관 내부를 여러 크기의 방으로 나눠 그 안에 문과 주방 가구, 콘센트 모형 등을 설치하고 방문객들이 각각의 문을 통과하며 지나가는 동안 다양한 시선의 변화를 느낄 수 있도록 전시를 구성했다. 마치 미로 게임을 하는 듯 공간과 공간 사이를 드나들면서 관람객은 아이가 되거나 거인이 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섬'이라는 주제를 내세운 영국관은 전시를 국가관 내부가 아닌 옥상에 비계를 설치해 구성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임시로 만들어진 난간을 따라 옥상 위로 올라가면 비계 가운데 작은 섬처럼 뾰족하게 솟아있는 지붕 꼭대기를 볼 수 있다. 이는 지구 온난화로 인해 전세계의 해수면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언젠가 베니스도 물에 잠길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다.

'수선(Repair)'라는 주제를 제시한 호주관은 전시장 내부를 초원과 숲으로 만들었다. 전시관 일부 바닥에 흙을 깔고 여러 종류의 식물을 심었다. 건축물이 독자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과 사회, 경제, 문화적인 맥락 속에서 유기적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인공적인 환경 속에서 변화하는 식물의 모습을 보는 것도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올해 처음 건축전에 참가한 교황청은 본 전시장에서 좀 떨어진 산 조르지오 마조레 섬 남쪽에 '홀리 씨(Holy See)'를 주제로 전세계 11명의 건축가를 초청해 11개의 '바티칸 성당'을 지었다. 교황청관은 이번 건축전의 주제를 가장 잘 구현한 관으로 평가를 받았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인 노먼 포스터, 에두아르두 소투 드 모라 등이 참여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묵상을 할 수 있는 성당 공간을 각각 구현했다.

한국관 ‘스테이트 아방가르드의 유령’
한국관 ‘스테이트 아방가르드의 유령’


■한국관 '스테이트 아방가르드의 유령' 주제로 전시

한국관은 올해 국내 건축사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1960년대 말과 1970년대 초의 시기에 주목해 당시 한국 최고 건축가들이 모여있던 '한국종합기술개발공사(기공)'의 주요 활약상 4가지를 현대 건축가의 시선으로 재해석한 '스테이트 아방가르드의 유령(Spectres of the State Avant-garde)' 주제전을 선보였다. 군사독재정권 하에서 서울의 도시개발 역시 중앙정부의 지시 하에 이뤄지던 시절, 통제와 규제 속에서도 아방가르드적 상상력을 발현했던 당대의 한국 건축가들의 활약상을 담아냈다.

시민사회의 힘이 미약하고 시민 공간이라는 개념이 부재하던 시절에 만들어진 당시 건축가 김석철이 이끌었던 기공의 도시계획부와 건축부는 당시의 미래적 건물인 '세운상가'를 비롯해 '구로 무역박람회'를 기획하고 한국전쟁 당시 비행장이었던 여의도를 지금의 형태와 같은 도시공간으로 만든 '여의도 마스터플랜',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엑스포70 한국관' 등을 디자인하고 건설했다. 이번 건축전에서 한국관은 지금은 오래전 낡은 시대의 유적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당대에는 파격적인 형태의 도시 디자인과 건축물을 선보였던 기공의 활동을 찬찬히 돌아볼 수 있게 구성했다.

공간 디자이너 김용주와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fnt가 전시 디자인을 맡은 한국관은 기공의 건축가이자 한국관의 설계자인 김석철이 1995년 설립한 한국관 건축물의 초기 설계 의도를 되살린다. 또 반사, 증폭, 확장 등의 상황적 연출을 통해 윤승중, 김원 등이 참여한 기공의 마지막 작업이었던 '엑스포 70 한국관'을 오마주한다.

'부재하는 아카이브'와 '도래하는 아카이브'로 이름붙인 아카이브는 전시의 배경과 참여 작가들의 작품을 읽기 위한 맥락을 제공한다.
엔이이디건축사사무소의 김성우 소장은 1967년 세워진 세운상가를 대상으로 '급진적 변화의 도시'를 선보이고, 전진홍과 최윤희는 1968년 기공이 진행한 구로 산업박람회를 모티브로 '꿈 세포(Dream Cell)'를, 강현석과 김건호는 1970년 일본 오사카에서 열렸던 '엑스포70'의 한국관을 대상으로 '빌딩 스테이츠'를, 최춘웅은 1969년 여의도 마스터플랜을 모티브로 '미래의 부검'을 선보인다. 또 미디어 아티스트 서현석의 '환상도시', 사진가 김경태의 '참조점' 등의 작품도 한국관에 전시됐다.


박성태 예술감독은 "한국의 독재 개발 체제 하에서도 기공의 프로젝트를 통해 아름다움과 미래 청사진을 그렸던 당대 건축가들의 모습을 돌아보는 전시를 기획했다"며 "사료가 부족해 온전한 역사 서술이 어려운 시기의 작업을 돌아보고 빈틈을 메우는 작업을 통해 기존의 것을 지키면서 새로운 것을 더하는 당시와 현대의 건축가의 역할을 생각하게 되는 전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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