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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의 채권포커스] 이탈리아발 금융 혼란

마켓포커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5.30 11:23

수정 2018.05.30 13:25

자료=코스콤, 30일 오전 글로벌 주가지수 상황
자료=코스콤, 30일 오전 글로벌 주가지수 상황

이탈리아의 정치 위기가 고조되면서 안전한 미국채, 독일 국채 등 안전한 채권가격이 급등하고 글로벌 주식시장은 맥을 추지 못했다.

이탈리아는 지난 3월 선거 이후 연정 구성을 놓고 갈등하고 있다. 마타렐라 대통령이 내각에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코타렐리 총리 후보자가 사임하고 정치적 갈등이 고조됐다. 9월 조기 총선 가능성과 이탈리아의 유로존 탈퇴 가능성까지 언급되고 있다. 2010년대 초반 남유럽 위기를 떠올리면서 이를 연상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 글로벌 안전자산선호..이탈리아가 초래한 변동성

이탈리아발 안전자산선호로 미국채 금리는 2016년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 이후 가장 큰 폭으로 폭락했다.


이탈리아의 유로존 이탈 가능성이 부각되면서 미국채 가격이 폭등한 것이다. 금리 낙폭은 2016년 6월 최대다.

코스콤 CHECK단말기(3931)를 보면 미국채10년물 수익률은 15.21bp 폭락한 2.7756%를 기록했다. 국채30년물은 11.91bp 내린 2.9703%, 국채5년물은 17.43bp 급락한 2.5892%를 나타냈다. 국채2년물은 15.65bp 빠진 2.3234%에 자리했다.

유로존 내 최고 안전자산인 분트채 금리도 급락했다. 독일 10년 국채금리는 9.79bp 급락한 0.2509%까지 급락했다.

위기 당시자인 이탈리아 금리는 폭등했다. 이탈리아 10년 국채금리는 무려 43.11bp 폭등한 3.0952%를 기록해 3%를 넘어섰다. 이탈리아 금리는 지난 4월말만 하더라도 1.7773% 수준이었다. 하지만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132bp나 폭등했다.

단기금리 폭등세도 무섭게 진행되고 있다.

이탈리아 2년 국채금리는 하루 사이에 147.65bp 폭등한 2.4096%를 나타냈다. 5월 15일만 하더라도 유로존 시스템이란 구조적 특성을 감안해 -0.2611%였지만, 이탈리아의 유로존 이탈 가능성이 부각되자 금리가 거침없이 폭등한 것이다.

이탈리아 만큼은 아니지만 이탈리아 채권시장이 흔들리자 남유럽권 국가들도 영향을 받고 있다. 2012년 남유럽 사태의 기억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분위기가 반영되고 있다. 스페인 10년 국채금리는 7.71bp 상승한 1.5985%를 나타냈다.

이에 따라 과거에 이른바 'PIGGS'(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등)라는 모욕적인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던 남유럽권에 대한 불안에 주목하는 모습들도 많아졌다.

안전자산선호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글로벌 주가는 급락을 면치 못했다.

뉴욕 주식시장의 다우지수는 391.64p(1.58%) 하락한 24361.45를 기록했다. S&P 500지수는 31.47p(1.16%) 떨어진 2689.86, 나스닥은 37.26p(0.50%) 내린 7396.59에 자리했다.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의 변동성지수(VIX)가 3.76p 오른 16.98로 상승하는 등 금융시장은 변동성에 대한 경계감을 높였다.

유로화 가치는 하락했다. 이탈리아 정치 위기로 투자자들이 이탈리아물, 유로화물을 꺼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달러지수는 0.69% 오른 94.84를 기록했다. 장중엔 95를 넘어서면서 6개월래 최고치로 올라서기도 했다. 유로/달러는 0.74% 떨어진 1.1536달러를 나타냈다. 달러가 전반적인 강세를 보인 가운데 최강의 안전통화 중 하나인 엔화는 여지 없이 저력을 나타냈다. 달러/엔은 0.91% 하락한 108.41엔을 기록하면서 강해졌다.

■ 이탈리아 위기, 미국 통화정책 거쳐 한국 금리정상화 방해할 가능성

이탈리아, 더 넓게는 남유럽 불안 가능성은 미국의 금리인상 기조에 생채기를 낼 것이란 인식도 강화되고 있다.

올해 4번의 금리인상까지 가능하다는 분위기에서 이탈리아 사태로 인해 3차례, 즉 미국이 향후 두 차례 정도 금리를 더 올리는 것 아니냐는 인식이 강화됐다. 글로벌 경제가 엮여서 돌아가는 상황에 미국 역시 대외 불안요인을 감안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점이 세진 것이다.

일주일 남짓 전만 하더라도 미국이 금리를 올해 4차례 인상할 것이란 기대감은 선물시장에서 50% 이상 반영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최근 이 기대감은 낮아졌으며, 이탈리아 정치 위기가 더욱 부상하자 연내 미국의 4차례 금리인상 가능성은 10%대 정도로 축소됐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오는 9월 그간 시사했던 대로 2.55조 유로에 달하는 채권 매입 프로그램을 종료하지 못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유로존이 이 프로그램을 종료하지 못한다면 미국 연준도 금리인상 속도조절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들이 나오는 것이다.

당장 6월 미국의 금리인상에 대해선 이견이 없는 분위기지만, 유럽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서 연준의 발걸음은 늦춰질 가능성이 있다.

최근 고용지표 등 경제지표 부진에 금리인상 의욕을 떨어뜨린 한국은행의 금리 정상화도 늦춰질 가능성이 있다.

A 증권사의 한 채권딜러는 "이탈리아 사태가 더 악화된다면 연준도 금리인상 속도를 늦추게 될 것"이라며 "이 경우 한국은행의 금리인상은 더 더뎌질 수 있다. 유로존 불안과 이탈리아 조기총선이 가시화되면 한은이 금리인상 타이밍을 잡지 못해 올해 금리가 계속 동결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향후 이탈리아 포퓰리즘 정부가 유로존 프로그램을 거부하고 재정확대 등 경기부양에 나선다면 거시건전성이 더욱 악화돼 신용등급이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독일과 프랑스의 의지대로 굴러가는 유로존 시스템에서 3위 경제대국인 이탈리아의 주도적 정치 세력이 반발하면서 불확실성이 커진 것이다.

B 증권사 관계자는 "이탈리아 포퓰리즘 정부가 재정확대 정책을 밀어붙이면 신용등급 하향 가능성까지 제기될 수 있다"면서 "이달 연준의 금리인상을 앞두고 유럽 이슈가 터져 상황을 주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 대외 금융시장과 보조 맞춘 국내 시장

국내 금융시장은 일단 해외 쪽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코스피지수는 30p 이상 떨어져 2420대로 추락했다. 글로벌 안전자산선호 때문에 주요국 주식시장은 맥을 못 추고 있는 셈이다.

다만 일각에선 지금 주식시장이 지나치게 악재에 무게를 두고 있으며 현재의 레벨 정도라면 저가매수에 나서도 괜찮다는 주장도 보인다.

신한금융투자 노동길 연구원은 "평균 PER을 하회하는 구간에서 코스피지수가 추가 하락할 여지는 작아 보인다. 코스피 2450 아래에선 매수하는 전략이 유효하다"면서 "코스피가 2450을 일시적으로 하회할 가능성이 있으나 이 수준은 12개월 선행 이익 기준 PER(주가수익비율)의 9.2배"라고 지적했다.

노 연구원은 "이는 2013년 이후 코스피 PER 평균(9.9배)을 하회한다"면서 "이탈리아 정치 불확실성이 9월 총선 전까지 추가로 악화될 가능성은 작고 유로존 펀더멘탈은 최근 들어 개선세를 보였다. 유로화도 추가 하락보다 반등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그는 "6월 FOMC가 2주 앞으로 다가온 사실도 달러 약세 전환 가능성을 높인다. 연준이 6월 FOMC에서 점도표를 상향할 가능성은 낮다. 현재 달러화 레벨은 연준이 부담을 느낄 만한 수준"이라고 풀이했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C 운용사의 한 매니저는 "만만치 않다. 가격 메리트는 커졌지만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이 커질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이탈리아 쪽에서 말썽이 나면서 저가매수에 적극 나서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D 운용사의 한 매니저는 "일단 오후장을 봐야 할 것 같다. 내일 MSCI 중국 A주 리밸런싱도 있어서 상황을 봐야 한다"면서 "다만 내일이 주가의 단기 저점이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국내 채권시장은 강세를 구가했다. 글로벌 안전자산선호와 미국채 금리 폭락 영향으로 장 초반 중장기물 금리가 5bp 넘게 하락했다. 이후 강세폭이 줄어들었으나 대외 상황을 우호적으로 인식하는 모습들이 적지 않다.

E 증권사의 한 채권딜러는 "최근 한은의 금리인상 예상 시점은 8월 이후로 늦췄는데, 이제 빨라야 11월이 될 것 같다"면서 "9월 이탈리아 선거 가능성이 높아졌고 그 전에 한은이 액션(금리인상)을 취하기가 더 까다로워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요즘은 중간중간 채권에 우호적인 재료가 터지면서 수익을 내기는 만만치 않아 보인다. 채권 딜러들은 피로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이 딜러는 "지금 추격매수를 하느냐도 애매한 문제다. 계속 이런 식의 롱장(매수가 유리한 장)이어서 다들 돈 벌기가 만만치 않다"면서 "금리 뷰에 대한 컨센서스가 형성된 뒤 추세를 따라가면 수익이 나는데, 갑작스럽게 재료가 터지면서 뒷수습을 하면서 따라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달러/원 환율은 1080원대 초반으로 상승했다. 이탈리아 재료나 글로벌 위험자산 회피 무드를 감안할 때 상승폭이 제한적이란 평가도 보인다.

F 은행의 한 외환딜러는 "달러/원 환율이 1080원대로 올라왔지만 생각보다 못 올라서 어리둥절하게 하는 면이 있다"면서 "기세를 감안할 때 이 지점에서 달러 숏으로 나서는 게 낫다"고 진단했다.

종가 기준 달러/원 환율의 최근 고점은 21일에 기록한 1085.4원이었다.

■ 주목 받는 이탈리아 정치권과 유럽중앙은행

두 당을 합쳐 의회 과반을 확보하고 있는 오성운동과 동맹당이 연합해 선거를 치른다면 주식시장은 긴장감을 늦추기 어렵다.

두 당의 성격을 감안할 때 향후 총선이 이탈리아의 EU 탈퇴에 대한 국민투표 성격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금융시장은 계속해서 정치권 눈치를 봐야 할 수 있다.

하지만 실제 선거 연합이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는 분석들도 나온다.

노동길 신금투 연구원은 "선거 연합을 위해 유권자들에게 공통의 가치를 내세울 수 있어야 하는데, 오성운동과 동맹은 선거 타겟이 다르다"면서 "지난 총선에서 원내 1위를 차지했던 오성운동은 EU 탈퇴를 공약에서 배제하면서 지지율이 상승했다. 오성운동이 재총선에서 EU 탈퇴를 주요 공약으로 설정해 선거를 치를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번 연정 구성 계획에서 제외됐던 중도우파나 중도좌파 역할이 커질 듯하다. 정부 구성을 위해서는 재총선 이후에도 연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중도 정당 역할이 커질 경우 극단적 정책 제외로 정치 불확실성이 다소 완화될 것이고 EU 탈퇴 구호는 재총선 돌입 이후 잦아들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지난 2013년 이탈리아의 EU 탈퇴 공약을 앞세운 오성운동이 원내 3위 정당으로 약진하며 정치 불확실성을 키울 당시 이탈리아 주식시장은 총선 전후 15% 내외로 조정을 받았고 전체 유럽 주식시장 조정폭은 제한적이었다면서 이번 정치 불확실성을 과도하게 평가할 필요는 없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금융시장이 계속 흔들리고 있어서 유로존 차원에서 뭔가 조치가 나올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다.

지금도 유럽중앙은행(ECB)이 양적완화(QE) 프로그램 하에서 이탈리아 채권을 매입하고 있는 가운데 새로운 조치가 추가돼야 한다는 분석들도 보인다.

ECB가 QE를 주구장창 끌고 가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탈리아는 매년 2000억 유로 정도의 빚을 차환해야 하는 상태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2012년 도입됐던 무제한 국채 매입 프로그램(OMT), 유로존 구제금융기금인 유럽재정안정화기구(ESM)의 역할론 등을 거론하고 있다. 특히 OMT는 이탈리아를 직접적인 타깃으로 삼아 채권을 사면서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방법도 만만치는 않다. 오성운동과 동맹이 가지고 있는 유로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나 유로존 맹주 독일의 OMT에 대한 부정적 시각 등을 감안해야 한다.
유로존은 또 OMT나 ESM 활용 시 이탈리아에 재정 긴축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아 두 정당과 부딪힐 수 있다.

이처럼 갈등요인이 큰 가운데 이탈리아가 실제 유럽연합을 떠나는 극약처방을 쓰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진단들도 적지 않다.
이탈리아 국채의 2/3를 자국 국민들이 보유한 가운데 유로존 이탈 시의 극심한 고통을 감안할 때 어떤 식이든 해법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기대감도 엿보인다.

taeminchang@fnnews.com 장태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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