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학교 체험학습서 사고나면 교사 책임?..술렁이는 여론

신지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6.02 09:38

수정 2018.06.02 09:38

체험학습 활동을 하면서 말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어린이들. 사진=연합뉴스
체험학습 활동을 하면서 말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어린이들. 사진=연합뉴스

체험학습을 가던 도중 용변이 마렵다는 초등학생을 휴게소에 두고 내린 교사에게 '벌금형'이 선고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학부모의 요청으로 상황에 대처한 것인데 형량이 너무 무겁다는 지적도 나온다. 급기야 초·중·고 체험학습 및 수련회를 폐지해야 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등장했다. 1일 8시 기준 4만 9천명이 동의한 상태다.

대구지법 형사10단독 김부한 부장판사는 지난 18일 아동복지법 위반(아동유기·방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초등학교 A교사(54)에게 벌금 800만원을 선고했다고 밝혔다.

A교사는 지난해 5월 10일 현장 체험학습을 하러 가는 도중 버스 안에서 B양이 복통을 호소하자 비닐봉지를 건네 용변을 해결하게 했다.
B양이 상처를 입을까봐 학생들을 한쪽으로 모았다. 이어 B양의 학부모에게 연락했고, 학부모는 자신이 데리러가겠다며 자녀를 휴게소에 내려줄 것을 요청했다. 1시간 뒤에 학부모가 B양을 데리러왔고, 학부모는 아이를 방치했다고 학교 측에 항의했다. 이에 학교 측은 아동학대 관련 기관에 신고했다.

A교사는 경찰 수사를 거쳐 약식기소 됐지만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형이 확정되면 A교사는 아동복지법에 따라 10년간 학교에서 일할 수 없게 된다.

■사고 책임은 교사에 있다? 부담만 한가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는 이번 판결로 인해 교육활동을 진행하는 교사들의 사기가 떨어졌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드러냈다.

교총 측은 "당시 상황을 확인한 결과, A교사는 교육자로서 상황별 조치를 취하기 앞서 해당 학생에게 수차 물으며 확인했다"며 "휴게소에 학생을 내려놓을 때에도 비교적 안전하게끔 학부모가 찾기 쉽도록 커피숍을 활용했다"고 말했다. 이번 판결의 초점이 된 '휴게소에 학생을 내려놓은 부분'에 대해서도 학부모의 강력한 요청에 의한 것이라고 밝혔다.

체험학습 인솔교사가 800만원 벌금형을 선고받았다는 판결에 초·중·고 체험학습 및 수련회 폐지를 요구하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지난 18일 청와대 게시판에는 '초·중·고 체험학습 및 수련회를 폐지해야 한다'는 청원글이 올라왔다.

청원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부모가 아이들을 데리고 외출하는 경우에도 예상가능한 사고는 끝이 없는데, 하물며 학급당 30명 내외의 인원을 한꺼번에 인솔하는 교사는 사고 발생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 안전사고 발생의 위험을 무릅쓰고 단체 외부 체험학습을 진행해야 하는 명확한 이유가 부족하다는 이유다. 특히, 교사는 교육활동에서 최선을 다했음에도 사고가 발생하면 해임의 위협이 높아 부담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전직 중학교 교사 전수영(가명·38)씨는 "교육활동에서 문제 발생시 무조건 교사에게 책임을 떠 넘기는 것은 부담감을 떠넘기는 처사"라며 "학부모와 교사, 학교 모두가 문제에 대한 정확한 원인과 결과를 분석해 책임소재를 가려야 한다"고 말했다.

청원글 게시자는 "학교 단위의 단체여행 및 체험학습이 아니더라도 학생들이 체험할 수 있는 활동이 주변에 많다"고 언급했다. 이어 "개개인을 위한 맞춤형 교육이 강조되고 있는 지금, 학생 각자의 취향과 희망이 거의 반영되지 못하고 일률적으로 단체 외부 인솔 활동이 진행되고 있다"고 체험학습 폐지를 요구했다.

■체험학습도 교육과정의 일부..개인 선택의 문제
한편 체험학습 및 수련회 폐지에 반대하는 입장도 있다. 체험학습도 교육과정의 일부로 인식해야 하며, 학생들의 의사를 존중해 결정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학생의 의사를 파악해 체험학습에 대한 찬반 입장을 조사하는 방법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또한, 가족단위 여행이 보편적이지만 맞벌이 부부·저소득층 자녀는 학교 단위의 체험학습 아니면 외부활동을 할 기회가 적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종로구 한 중학교 교사 조희령(가명·33)씨는 "학교에서 단체로 체험학습을 가지 않으면, 야외활동을 아예 할 수 없는 환경에 처한 아이들도 있다"며 "출석으로 인정되는 가정 체험학습 확대는 학생 간 위화감을 조성하기 십상이다"라고 말했다.

체험학습이나 수련회 폐지 시 학생들끼리 돈독하게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다는 지적도 나왔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 정인혜(가명·42)씨는 "어렸을 적, 친구들과 함께 떠나는 여행은 성인이 돼서도 소중한 추억으로 자리잡는데 이마저도 폐지된다니 아쉬운 것이 사실"이라며 "사건사고 발생에 초점을 두기보다 체험학습으로 얻을 수 있는 가치에 대해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sjh321@fnnews.com 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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