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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EU ‘분쟁 2라운드’… 청산결제소 규제 충돌

송경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6.03 17:32

수정 2018.06.03 17:32

EU, 관할지역 이전 강제 폐지.. 감독기구 권한강화 규정 발표
미국 "EU 금융감독기구가 뉴욕·시카고도 감독" 반발
美-EU ‘분쟁 2라운드’… 청산결제소 규제 충돌

철강·알루미늄 관세로 몸살을 앓고 있는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분쟁 2라운드는 청산결제소 규제가 될 것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철강 관세는 미국이 공격하고 EU가 방어하고 있지만 청산결제소 규제는 공수가 뒤바뀐 모양새다. 물밑 아래 잠겨있던 양측의 갈등은 지난 3월 미국에서 열린 청산결제 업계 콘퍼런스에서 수면 위로 떠오르며 미국과 EU간 분쟁 2라운드를 예고하고 있다.

특히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를 계기로 미국과 EU간 갈등의 골이 깊어진 터라 청산결제소 규제에 대한 양측의 충돌은 EU 규정이 회원국들의 승인을 받아 정식 규정이 되면 본 궤도에 오를 전망이다.

EU가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협상 전략 가운데 하나였던 런던에서의 청산결제소 EU 이전을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되돌린 것이 말썽을 일으켰다. EU는 당초 유럽 금융상품의 청산결제소들이 런던에 몰려있어 브렉시트 이후 EU의 규제 사각지대에 놓이게 될 것을 우려해 이를 EU 관할지역 내로 옮기도록 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런던의 관련 일자리 8만3000개가 없어진다(2016년 런던증권거래소(LSE) 보고서)는 예측은 영국을 압박하는 카드로 활용할 수 있음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는 곧바로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닥쳤다. 세계 3대 금융허브인 런던에서 유럽으로 청산결제소를 옮기면 런던 같은 '규모의 경제'를 기대하기 어려워 비용이 상승하고 이는 고스란히 유럽 기업들에 부담이 된다는 점이었다.

금융거래 중간자로 매도자와 매수자 역할 모두를 하는 금융거래의 핵심 가운데 하나인 청산결제소는 주로 런던, 뉴욕 등에 몰려 있다.

2016년 국제결제은행(BIS) 추산에 따르면 유로표시 파생상품 거래량의 4분의3이 런던 청산결제소들을 통해 거래됐다. LSE 산하의 청산결제소 LCH클리어넷 한 곳이 지난해 담당한 규모만 900조달러에 육박한다.

이를 감안하면 유럽으로 청산결제소가 이동해 비용이 상승할 때 유럽 기업들의 부담은 폭증한다. 금리스와프 청산결제 비용이 0.01%포인트만 올라도 EU 기업들의 부담은 연간 220억유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됐다.

결국 집행위는 지난해 6월 해외 청산결제소 이전 강제를 폐기하고 대신 파리에 있는 유럽증권시장감독청(ESMA)이 해외 규제당국, 유럽중앙은행(ECB)과 함게 현지 감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규정을 발표했다. EU 관계자는 "면밀한 감독을 통해 런던 청산결제소를 관리할 수 있다면 만족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반발하고 나섰다. 새 규정에 따르면 EU 금융감독기구가 유럽과 거의 관련 없이 움직이는 뉴욕, 시카고 등의 청산결제소에 대해서도 감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무부처인 미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는 2016년 EU와 맺은 협정이 휴지조각이 됐다며 수용불가를 주장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지안카를로 CFTC 위원장은 지난달 베를린에서 "우리는 합의를 위해 3년을 공들였고, 이를 지킬 생각"이라면서 "재협상은 없다"고 밝혔다. 앞서 3월 보카레이턴에서 열린 한 콘퍼런스에서는 브라이언 퀸텐즈 CFTC 위원이 해외청산결제소 규제를 강행하면 보복에 나서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유럽의 반발에도 아랑곳없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철강관세를 밀어붙이고 있는 것처럼 유럽도 미국의 반발을 무시하고 규정을 되레 강화하고 있다. 유럽의회는 지난달 EU 감독기구의 권한행사를 보장하는 내용으로 집행위 초안을 보완하고 강화하는 내용의 규정을 통과시켰다.


규정 지지자들은 새 규정이 시행되면 현재 미국에 유리하게 돼 있는 런던 청산결제소에 대한 규제에서 유럽이 균형을 되찾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은 영국 규제당국과 함께 런던 청산결제소들을 공동으로 규제하고 있다.
브뤼셀 싱크탱크인 브뤼겔과 워싱턴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 연구위원인 니콜라스 베론은 "미국은 영국 금융 인프라에 권한을 행사하고 있지만 EU나 영국은 미 금융 인프라에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지금의 상황은 매우 비대칭적"이라고 지적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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