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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떨어져야 하나”...장애인들 '리프트' 불안

최용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6.04 15:59

수정 2018.06.04 15:59

-장애인 단체 “리프트는 살인기계, 승강기 설치해 달라” 
-지난해 10월 리프트 호출버튼 누르다 계단에서 추락사 
-1999년 이래 추락사고 13건. 5명 사망
-유동인구 활발한 건대입구역, 광화문역, 고속터미널역에도 승강기 없어
지난 1일 오전 광화문역에서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전날부터 열린 ‘신길역 장애인 리프트 추락참사 故 한경덕 추모제’를 진행했다./사진=최용준 기자
지난 1일 오전 광화문역에서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전날부터 열린 ‘신길역 장애인 리프트 추락참사 故 한경덕 추모제’를 진행했다./사진=최용준 기자

#.늘 오르내리던 계단이 휠체어를 탄 장애인에겐 벼랑 끝이었다. 지체장애인 김명학씨(61)는 리프트에 붙은 역무원 호출버튼을 굽은 손등으로 눌렀다. 그는 “광화문역에는 지상으로 통하는 승강기가 없어 할 수 없다”고 한숨 쉬었다. 김씨가 불편한 오른손으로 전동휠체어 조종간을 만졌다.
휠체어를 리프트 정 가운데 두기 위해 여러 번 손을 놀렸다. 그는 “혹여나 한쪽으로 무게가 쏠리면 (리프트가) 휘청 일까봐 그렇다”고 걱정했다.

김씨는 지하철에서 내린 뒤 2번에 걸쳐 작은 계단과 큰 계단을 리프트로 올랐다. 천천히 올라가는 리프트 곁으로 시민들이 성큼성큼 계단을 올랐다. 김씨는 “리프트 경사가 가파른 역은 정신이 아찔하다”고 고개를 가로지었다.

■추락...생명 위협 '리프트'
지난 1일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지하철 광화문역에서 전날부터 열린 ‘신길역 장애인 리프트 추락참사 고(故) 한경덕 추모제’를 진행했다. 이날 장애인 단체는 “살인기계리프트 철거하라!”고 적힌 피켓을 목에 건 채 신길역 사고에 대한 서울시 사과를 요구했다. 모든 지하철역 승강장에서 승강기만 이용해도 지상으로 이동할 수 있는 1동선 승강기를 오는 2022년까지 설치해 줄 것을 촉구했다.

지난해 10월 신길역에서 전동휠체어를 탄 한경덕씨가 계단 아래로 추락했다. 운동기능이 상실한 왼팔 대신 오른팔로 리프트 호출버튼을 누르려다 벌어진 일이다. 의식을 잃은 한씨는 지난 1월 숨졌다. 서울교통공사는 “추락 사고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하고 유족 분들께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법적인 책임은 유가족이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이 진행 중이므로 법원의 판단에 따르겠다”는 입장이다.

장애인들은 지하철 리프트가 불안하다. 장애인 홍지민씨(24·여)는 “리프트를 탈 때 한쪽으로 기우는 느낌을 받은 적 있다”며 “안전하고 빠른 승강기를 설치해달라고 민원을 넣지만 그저 하소연 정도로 여겨지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4일 연대에 따르면 지난 1999년 이래 장애인 리프트 추락 사고는 모두 13건. 이중 5명이 목숨을 잃었다. 나머지도 두부손상 등 중상을 얻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는 게 이들 증언이다.

장애인들이 리프트를 비판하는 이유는 위험하기 때문만이 아니다. 주체성과 권리의 문제다. 승강기는 장애인 스스로 이용할 수 있으나 리프트는 역무원 도움을 받기 때문이다.

김광이 연대 공동대표는 “리프트 호출 버튼을 누르고 직원이 열쇠를 가지고 와야 휠체어리프트에 탈 수 있다. 열쇠를 가지고 오지 않으면 우리는 움직일 수 없다. 이 열쇠에 우리의 삶과 이동이 걸려 있다"고 지적했다.

리프트 속도가 느려 이동권이 침해된다는 목소리도 있다. 승강기보다 시간이 3배 이상 걸리기 때문이다. 일례로 광화문역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 5명이 리프트를 이용해 계단을 오르는 데 모두 30분 이상 걸렸다. 문애린 연대 활동가(39·여)는 “올해 초 승강기가 없는 불광역 환승구간에서 리프트가 고장 난 적 있다”며 “1시간동안 수리를 기다렸지만 결국 역무원에게 들려 나갈 수밖에 없어 수치스러웠다”고 전했다.

지난 5월 31일 신길역에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리프트에 피켓을 부탁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신길역에서 전동휠체어를 탄 한경덕씨가 계단 아래로 추락했다. 의식을 잃은 한씨는 지난 1월 숨졌다. /사진=구자윤 기자
지난 5월 31일 신길역에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리프트에 피켓을 부탁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신길역에서 전동휠체어를 탄 한경덕씨가 계단 아래로 추락했다. 의식을 잃은 한씨는 지난 1월 숨졌다. /사진=구자윤 기자

■"장애인 이동권 고민해야"
장애인 단체 승강기 설치 주장에 대해 서울교통공사는 동의하면서도 구조적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공사 관계자는 “현재 1동선이 확보되지 않은 27개 역 중 승강기 공사는 11개역이 예정됐다”며 “이를 제외한 16개역은 환기실 저촉, 지상 보도폭 부족 등으로 승강기 설치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해 환기실 재배치 등 방안을 검토한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는 2015년 12월 정책 발표를 통해 오는 2022년까지 승강기를 모두 설치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리프트 호출장치가 지체장애인 손에 닿기 어려운 데 있다는 지적에 공사는 “휠체어리프트 호출 장치를 추가설치 중에 있으며 88% 공정률로 6월 초에 완료예정"이라고 전했다.

현재 장애인들은 유동인구가 많은 광화문역, 고속터미널역에도 1동선 승강기가 없어 리프트를 이용해야 하는 실정이다. 공사에 따르면 서울 지하철 1~8호선 277개역 중 1역 1동선이 확보된 역은 250개역(확보율 90.2%)이다.


이와 관련, 김남숙 동명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노약자 등 교통약자가 늘며 승강기 설치는 모두의 문제다”며 “누구든지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다는 이동권 측면에서 장애인 권익보호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junjun@fnnews.com 최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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