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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성공 스페인 '親유로'…구조조정 거부감 伊 '反유로'

송경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6.04 16:58

수정 2018.06.04 16:58

유로존 3·4위 경제국 '엇갈린 정치행보'
2012년 채무위기때 운명갈려 스페인 과감한 긴축 추진·성공
伊 당시 유로존 구제금융 거부 개혁 대신 포퓰리즘 정권 출범
개혁성공 스페인 '親유로'…구조조정 거부감 伊 '反유로'


유로존(유로 사용 19개국) 3, 4위 경제국 이탈리아와 스페인이 유로에 대해 서로 다른 생각을 갖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지난주 이탈리아에선 연정이 출범했고, 스페인에선 정권이 교체됐지만 시장의 반응은 사뭇 달랐다.

이탈리아 헌정위기는 전세계 금융시장에 대풍을 몰고 온 반면 스페인의 라호이 마리아노 총리 실각과 사회당 정부로의 정권교체는 시장에 산들바람 정도의 영향만을 줬을 뿐이다. 이탈리아는 반유로 성향, 스페인은 친유로 성향이라는 점이 대조적인 시장 반응을 이끌어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3일(이하 현지시간) 이탈리아와 스페인 모두 유로 출범 뒤 출발은 같았지만 2012년 유로존 채무위기를 겪으면서 방향이 엇갈렸다고 분석했다. 스페인에는 모진 위기가 약이 된 반면 이탈리아는 당시 경제난이 심각하지 않아 필요한 개혁을 과감히 추진하지 못한게 인접한 두 나라의 성향을 가른 배경으로 지목됐다.

■ 개혁·성장으로 反유로 싹을 자른 스페인

유로존 채무위기가 한창이던 6년전만 해도 스페인과 이탈리아는 처지가 지금과 사뭇 달랐다.
스페인은 이탈리아보다 훨씬 심각한 위기를 겪었고, 라호이의 보수당 정부가 들어서 그야말로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덕분에 6년이 지난 지금은 이전보다 훨씬 더 탄탄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이탈리아는 충격이 훨씬 덜 했고, 이때문에 과감한 개혁에 대한 국민적 합의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이는 유로존 가입 이전부터 지속됐던 이탈리아의 문제들을 심화시켰고, 상황이 계속 악화하자 국민들은 유로탈퇴와 같은 극단적인 경제처방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양국 모두 유로 가입 이전 높은 인플레이션, 수출 경쟁력을 위한 통화 평가절하, 또 이에따른 높은 대외 채무부담이라는 공통점을 안고 있었다. 그러나 유로 가입으로 채권 수익률이 안전자산인 독일 국채 수익률 수준으로 떨어졌고, 채무부담은 완화됐다. 스페인에서는 이같은 낮은 금리가 아일랜드에서와 마찬가지로 부동산 거품을 만들어냈고, 막대한 외국인 자금 유입에 따른 채무부담 급증으로 이어졌다. 또 경상수지 적자도 급증했다.

채무위기가 시작되고 외국인 자금 유입이 끊기자 문제가 한꺼번에 터졌다. 채권 수익률은 폭등했고, 경제는 깊은 침체에 빠졌다. 라호이 정부가 들어서면서 스페인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추진한다. 해고와 노동조건 변경을 쉽게하는 노동시장 자유화가 추진됐고, 은행들에는 부실대출 상각, 합병, 재자본화 등이 강제됐다. 정부는 재정지출을 대폭 줄여 재정적자가 늘어나지 않도록 고삐를 �다. 덕분에 마이너스 9%까지 떨어졌던 성장률이 이듬해인 2013년 회복세로 돌아섰다.

실업률이 아직도 고공행진중이고, 회복 전환의 발판이 라호이 정부의 개혁 덕이냐 경쟁력 강화로 이어진 임금과 물가 하락 덕이냐를 놓고 격론이 벌어지고는 있지만 경제 성장 덕에 스페인 정치권에서 유로 회의론은 자취를 감췄다. 라호이 총리가 1일 실각했지만 정권을 이어받은 사회당의 페드로 산체스 총리는 라호이 정권의 긴축 기조를 이어가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 伊,고질병 못고치고 유로탈퇴 만지작

반면 이탈리아는 상대적으로 덜한 경기둔화세가 유로 가입 이전부터의 고질병을 심화시키는 역효과를 내며 반유로 포퓰리스트 정당들이 3월 총선에서 정권을 잡도록 만들었다. 낮은 생산성, 저출산, 경직된 노동시장 등 유로 가입 이전부터 문제였던 이탈리아 경제의 고질병들이 지속됐다. 게다가 은행 부실대출 규모도 스페인에 비해 적었던터라 당시 이탈리아는 은행 구조조정을 위한 유로존 구제금융을 거부했고, 이때문에 은행 부실도 만성이 돼버렸다. 유럽정책연구소(CEPS)의 대니얼 그로스 소장은 여기에 유로존 평균에 미달하는 법치와 정부 비효율성, 높은 부패까지 겹쳐있는 반면 유로존 평균을 크게 웃도는 높은 재정적자 문제까지 떠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재정개혁 최대 과제인 연금 지급 기준 상향, 은퇴연령 상향 같은 연금 개혁은 이를 없던 일로 되돌리겠다는 공약을 내건 포퓰리스트 연정 출범으로 무산위기에 빠졌다. 미성숙한 정치환경도 배경으로 지목된다. 정당난립과 부유한 북부, 가난한 남부의 뿌리 깊은 반목 등으로 경제 불확실성을 높이는 정정불안도 상수가 됐다. 이는 유로탈퇴를 경제난 처방전으로 내건 5성운동, 동맹 등 포퓰리스트 연정 출범의 싹이 됐다.

세르지오 마타렐라 대통령의 퇴짜로 친유로 성향 장관으로 바뀌었지만 당초 연정이 짠 내각 명단에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반유로 이코노미스트인 파올로 사보나가 재무장관으로 이름을 올렸었다.

EU장관으로 갈아탄 사보나는 유로탈퇴라는 '플랜B'를 주장해왔다.
그는 통화가치 하락과 재정적자를 통해 성장을 되살리는 이전 정책으로의 복귀가 이탈리아 경제 회생의 길이라는 것이다. 워싱턴 코너스턴매크로의 정책담당 애널리스트 로베르토 페를리는 이탈리아 연정이 이민 봉쇄와 기본소득, 단순한 세율을 약속하고 있다면서 이같은 정책 제안들은 재정적자를 크게 불리게 돼 유럽연합(EU)으로부터 원천봉쇄될 것이어서 결국 탈유로, 탈EU 논의가 재발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페를리는 이탈리아에서 유로탈퇴 논쟁은 "폐기된 것이 아니라 그저 연기됐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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