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영 칼럼]

소확행을 권하는 사회

작지만 확실한 행복 추구 청년들로선 현실적 선택..정부가 영합하면 무책임


방탄소년단의 진격이 거침없다. 미국 음악잡지 빌보드의 메인 앨범차트 정상에 오른 게 며칠 전이었는데 최근 싱글차트 '핫100' 10위에 랭크됐다. 그래서 화제의 정규 3집 '러브 유어셀프 전 티어(LOVE YOURSELF 轉 Tear)'의 타이틀곡 '페이크 러브(FAKE LOVE)'를 들어봤다. 애초 랩이나 힙합엔 문외한인 필자도 칼군무와 중독성 있는 리듬의 마력에 서서히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방탄소년단이 미국을 정복했다'는 롤링스톤닷컴의 평가가 터무니없는 과장이 아님을 알게 됐다.

흔히 기성세대는 '꿈은 이뤄진다'며 청년들에게 '노~력'을 독려한다. 그러나 방탄소년단처럼 부와 명성을 다 얻는 일이 어디 쉬운가. 요즘 청년들이 처한 현실은 큰 꿈을 꾸기엔 너무 척박하다. 세계 정상으로 우뚝 서는 건 고사하고, 일자리를 구하고 결혼해 아이를 낳는 평범한 삶마저 쉽지 않다면…. 그야말로 "이뤄지지 않는 꿈속에서 피울 수 없는 꽃을 키웠어"(페이크 러브의 가사)라고 되뇌어야 할 판이다.

'소년(청년)들이여, 야망을 가져라' 일본의 개항기 삿포로농학교(현 홋카이도대)에서 가르치던 윌리엄 클라크 교수가 청년들에게 건네 유명해진 말이다. 하지만 옛말이 됐다. 작금의 일본 청년들에게는 이른바 '소확행(小確幸)'이 대세라고 한다. 소확행은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수필 '랑겔한스섬의 오후'에 나오는 조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본뜻이다. '막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일' '서랍 안에 반듯이 접어넣은 속옷이 쌓여 있는 것' 등 그가 묘사한 사례처럼.

지난달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나 혼자 산다'가 2개월 연속 한국인이 좋아하는 TV프로그램 1위였다. 다른 조사에선 20대 중 60% 가까이가 화려한 성공 스토리보다 잔잔한 일상을 담은 콘텐츠를 선호한다고 했다. 이처럼 소소한 생활의 기쁨을 담은 프로그램들이 인기를 끄는 배경이 뭘까. 우리네 청년들에게도 소확행이 트렌드가 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일까. 올 들어 각종 마케팅에서 소확행이란 키워드가 대유행이다. 6·13 지방선거에서 소확행 공약을 내건 후보도 여럿이다. 수도권에서 시작해 세종시 찍고, 제주까지 "OO광장에서 물놀이"라는 등 청년들을 즐겁게 해주겠다는 약속들로 넘쳐난다.

소확행을 추구하는 태도를 나무랄 순 없다. 청년 개개인의 처지에선 허황된 욕망을 좇기보다 제한된 여건에서나마 삶의 질을 높이려는 자세가 합리적이다. 다만 걱정스러운 대목은 있다. 땀 흘려 도전에 나서는 이 없이 죄다 젊은 시절부터 안주하려 한다면 우리 사회의 발전동력은 대체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하는….

한때 '욜로'를 입에 올리던 청년들에게 소확행이 화두라면? 한 번뿐인 인생 즐기며 살자며 해외여행을 계획하던 이들이 길모퉁이 작은 카페에서 좋아하는 향의 커피를 마시며 자족하려 한다면? 고단한 현실에 짓눌려 미래에 대한 낙관을 잃고 있다는 얘기다. 기성세대, 특히 정치권은 이를 직시해야 한다.

그렇다면 청년들이 너도나도 고시학원가로 달려가게 하는 문재인정부의 고용정책은 잘못 끼운 첫 단추다.
우리네 공공부문이 워낙 방만하다면 4차 산업혁명기 일자리의 보고가 아니라 외려 구조개혁의 대상일 듯싶다. 이에 지속적으로 예산을 쏟아붓느라 민간부문의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 기회비용을 날리면 더 큰 문제다. 젊은 그들이 소확행에 매달리도록 부추기기보다 이를 넘어설 여건을 만들어주는 게 급선무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