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취업

블라인드 채용? 나이 많아서 탈락했어요

한영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6.10 16:44

수정 2018.06.10 16:44

블라인드 채용 대세지만 나이 제한 현상은 여전해
위계 문화 강한 특수직이나 보수적 조직일수록 많이 봐
#. 중견항공사에서 근무하던 A씨(34)는 대기업 항공사인 B항공에서 최근 시행한 승무원 경력직 서류전형에서 탈락했다. 서류 발표 이후, 승무원 커뮤니티는 '나이 제한'에 대한 성토장이 됐다. B항공사는 최근 승무원 선발 시 키와 나이 제한을 폐지한다고 발표했음에도, 여자 승무원 지원자 중 1985년생 이상은 서류 합격자가 거의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민번호 갈아엎어야겠다' '너무 나이로 잘랐다, 인권침해 아니냐' 등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A씨는 "20대보다 체력도 외모도 더 좋을 수 있는데 나이가 하나의 스펙이 되고 있다"며 "특수직군이긴 하지만 나이 때문에 면접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현실이 속상하다. 나이가 아니라 그 사람의 능력과 자질로 평가받았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블라인드 채용? 나이 많아서 탈락했어요

"지금이 어느 시댄데…." 기업들이 구직자들의 스펙도 보지 않고 뽑는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여전히 채용할 때 구직자의 '나이'를 제한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잡코리아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기업 인사담당자 중 93.1%가 "신입사원 채용 시 지원자의 나이를 확인한다"고 대답했다. 이들 중 3분의 2가량인 65.9%가 "나이가 합격 여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기업 대부분이 합격자 정보를 공개하지 않아 정부 당국에서 따로 조사하지 않으면 '나이 제한' 여부를 알 수 없다. 그러나 지난달 금융감독원의 조사에서 신한금융그룹은 연령에 배점 차등을 두거나 채용공고문에 연령제한이 없다고 해놓고 일정 나이 이상을 탈락 처리한 사실이 적발됐다. 기업에서 채용을 담당하는 인사담당자들은 대부분 '채용을 할 때 나이에 제한을 둬선 안된다'는 원칙에는 공감하지만 "현실적으로 나이를 볼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는다.

■특수직군.보수적인 조직일수록 나이 많이 봐

채용 시 나이 제한은 위계 문화가 강한 특수직군일수록, 보수적인 조직일수록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한 대학병원은 간호직을 뽑을 때와 일반행정직을 뽑을 때 '나이 제한'을 다르게 둔다. 일반행정직은 나이를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데 비해 간호직은 서류전형에서 '커트라인'을 둔다.

최근 실시한 간호직 신입사원 공개채용에서의 기준은 '1990년생부터 탈락'이었다. 병원 관계자는 "대학을 어디 나오건, 성적이 어떻건, 부모가 어떻건, 경력이 어떻건, 주민번호 앞자리가 '90' 이하면 무조건 탈락"이라고 귀띔했다.

이 관계자는 "간호사는 생명을 다루는 직군이라 조직문화가 군대 같은데, 나이가 어릴수록 위계질서에 잘 따르고 명령하기도 편할 것 같아서 이런 커트라인이 생긴 것 같다"며 "현업에서 실무적인 애로사항 때문에 요청이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블라인드 채용해도 '나이 커트라인' 유지될 것"

문재인정부 들어 '블라인드 채용' 등 탈(脫)스펙 채용이 강조되지만 기업에서는 '나이 제한' 규정이 바로 사라지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본다.
앞선 잡코리아 조사에서 "블라인드 채용이 도입되면 신입사원 연령제한이 사라질까요"라는 질문에 기업 인사담당자의 62.7%가 아니라고 답했다. 또한 블라인드 채용 도입 후에도 확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지원자의 정보로 '나이'가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기업의 한 인사담당자는 "개인적으로는 채용할 때 나이 제한을 둬선 안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아직 우리 사회가 위계질서를 강조하다 보니 '막내는 나이가 어려야 한다'는 편견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fair@fnnews.com 한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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