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영 칼럼]

트럼프-金 회담이 드리울 긴 여운

완전한 북한 비핵화가 최선, 핵보유 분단 장기화가 최악..어정쩡한 합의에 대비해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간 미·북 정상회담의 날이 밝아왔다. 말레이어로 '평화와 고요함'을 뜻하는, 싱가포르 센토사섬에서 12일 열리는 '세기의 담판'이다. 국제사회가 30년 씨름해온 북핵 협상의 성패가 드러나는 '진실의 순간'이기도 하다. 전 세계인이 이번 회담을 숨죽여 지켜보는 이유다.

물론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인 우리가 회담의 성공을 가장 간절히 바란다. 김정은이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CVID)를 결단한다면? 우리는 북핵의 인질에서 벗어나 진짜 평화를 얻는다. 미국은 그 반대급부로 대북 체제보장과 (한국을 통해) 경제지원 용의를 밝혔다. 북녘 주민들도 인간다운 삶을 누릴 기회를 갖게 된다.

반대로 혹여 트럼프가 회담장을 박차고 나오는 상황이 연출된다면? 그는 최근 김정은이 회담에서 비핵화에 불응 시 최대의 압박 재개를 공언했다. "북한에 부과할 300개 이상의 제재목록을 갖고 있다"면서. 그러면 북핵이라는 악성종양은 북한 정권뿐만 아니라 한반도에 사는 남북 주민 모두의 평화로운 삶을 수시로 위협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양 극단의 전망이 현실성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 경우 트럼프도, 김정은도 잃을 게 너무 많아서다. 거칠지만 이번 정상회담을 도박판에 비유해 보자. 러시아 스캔들에 휘말려 탄핵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트럼프 대통령에겐 회담을 성공적으로 포장만 해도 남는 장사다. 실제로 북핵을 포기시킨다면 그야말로 역사적 업적으로, 확고한 재선의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김정은 정권으로서도 미국의 확고한 체제보장 속에 경제난 해소를 위한 "단 한 번의 기회"(트럼프 대통령의 말)일 수 있다. '단계적 비핵화' 카드로 제재 해제 등 일정한 보상을 얻어내도 밑지는 거래는 아니다. '비핵화 대 체제보장' 일괄타결을 노리는 제스처를 쓰면서 핵능력의 일부를 감춰둘 수만 있다면 더 바랄 나위도 없을 게다.

만일 미·북 간 완전한 비핵화로 포장하되 그 실제 내용물은 모호하게 타협이 된다면? 적어도 남북 간 빠른 통일을 원하는 이들에겐 분명 복음은 아닐 것이다. 최근 진보좌파 진영의 원로급인 백낙청 교수는 "통일 과정의 일환인 '남북연합'이 이미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희망적 청사진이라 보기엔 너무 핀트가 안 맞는다. 미국이 북한 체제를 보장하면 외려 분단 장기화 가능성이 더 커지는 탓이다.

하지만 미·북 간 불완전한 합의를 통해서라도 한반도에서 전쟁의 위험성을 줄이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성급히 남한 중심 자유민주체제로 통일을 추진하다 큰 불상사를 부르기보다 평화 공존이 더 바람직하다는 것과 같은 논리다. 그런 맥락에서 장기간 교류협력 이후 '한반도 2국가' 체제가 정착될 것이라는, 역시 진보성향인 최장집 교수의 예측이 통일이 눈앞이라는 주장보다 백번 솔직하게 들린다.

그렇다면 반드시 '핵 없는 평화'가 정착돼야 한다. 정부는 미·북 정상회담 이후 한반도 종전선언에 큰 기대를 거는 모양이다. 하지만 무기를 내려놓지 않았는데 평화를 바라는 것은 무망한 일이다.
평화협정을 맺은 나라끼리 그 서명한 문서의 잉크가 채 마르기 전에 전쟁을 벌인 사례는 역사를 통틀어 부지기수다.

그래서 문재인정부는 미·북 담판에서 개평 챙기는 구경꾼이 아니라 주인의식을 가진 중재자여야 한다. 김 위원장에게는 남북 채널을 통해 옛 소련의 고르바초프에 버금가는 개혁·개방의 결단을 주문할 필요가 있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