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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싱가포르 모델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6.21 17:28

수정 2018.06.21 21:29

북한이 싱가포르의 발전 모델을 따를 것이란 전망이 꼬리를 물고 있다. 6·12 북·미 정상회담이 도화선이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회담 전야에 현지 명소를 관람한 뒤 "싱가포르의 훌륭한 지식과 경험을 배우려 한다"고 소회를 밝히면서다.

당시 그는 초대형 식물원과 멀라이언 파크 등 싱가포르의 관광 랜드마크를 순례했다. 그러자 싱가포르를 벤치마킹해 원산경제특구 개발을 구상중이란 관측이 제기됐다. 북한이 미국에 원산 카지노에 투자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미국 측이 확인은 하지 않았지만 북측이 핵·경제 병진노선을 수정하려는 시점이라 그럴싸하게 비쳤다. 북한 입장에선 관광산업이 체제가 흔들릴 위험성은 최소화하면서 외화를 벌 수 있는 부문이어서다.

지난 19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북한의 경제개방 모델로 싱가포르를 다시 지목했다. 그 나름의 근거도 제시했다. 북한의 젊은 관료 등이 싱가포르를 오가며 단기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이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정 엘리트들이 싱가포르 민간단체인 '조선 익스체인지'의 주선으로 자본주의 경영기법을 '열공' 중이란 얘기였다.

얼핏 보면 싱가포르는 부자 간 권력세습, 사실상 일당체제 등 북한과 비슷한 정치구조를 갖고 있다. 그러나 겉모습일 뿐 싱가포르의 경제시스템은 북한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투명하다. 이는 세계적 물류·금융 허브로 발돋움한 원동력이었다. 싱가포르 모델은 중국의 덩샤오핑식, 혹은 베트남의 '도이모이' 식보다 훨씬 폭넓은 개혁·개방 노선인 셈이다.

그래서 북한의 싱가포르식 개방을 회의적으로 보는 전문가도 많다.
김정은이 주민들에게 3대 세습체제가 드리운 어두운 속살과 외부세계를 비교할 기회를 줄 정도로 과감하게 나설 의지가 있는지는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북한이 싱가포르나 모나코 같은 작은 도시국가가 아니란 사실이다.
주민들과 격리된 관광특구에 카지노 몇 개를 설치해 2500만 주민을 먹여 살릴 순 없지 않은가. 북한 지도부가 차제에 제조업을 기반으로 한 무역을 통해 세계 경제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지 않고서는 북한 경제의 근본적 회생은 불가능함을 인식했으면 싶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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