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리포트]

美 밀입국 자녀 격리사태와 南北 이산가족

장도선 워싱턴 특파원
요즘 한국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미국 관련 뉴스라면 뭐니 뭐니 해도 북·미 대화 그리고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으로 촉발된 글로벌 무역전쟁이 아닐까 생각된다. 한반도의 운명을 바꾸고 세계 경제 흐름을 뒤흔들 정도의 폭발력을 지닌 중대 사안들이다. 관심을 갖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정작 미국에 사는 사람으로서 지금 피부에 가장 와닿는 이슈는 북·미 대화도, 무역전쟁 위기도 아니다. 지난 며칠간 미국의 여론과 언론을 연일 뜨겁게 달군 것은 불법입국자와 그들의 미성년 자녀 격리수용을 둘러싼 논란이었다.

불법이민자 아동 격리수용은 미국에 밀입국하다 체포된 사람들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그들의 자녀를 별도 수용하는 정책이다. 텍사스주의 멕시코 국경 인근 지역에 설치된 천막수용소에 2000여명의 아동이 부모와 떨어져 수용됐다는 사실이 보도되면서 미국은 벌집 쑤신 듯 뒤집어졌다. 법을 어기고 밀입국한 사람들을 재판에 넘기는 것은 반대할 수 없지만 어린이를 부모로부터 강제 격리하는 것은 인권을 중시하는 미국에서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다.

아동 격리수용에 대한 비난과 비판은 민주당 등 진보진영은 물론 공화당과 경제계를 포함한 각계각층으로부터 쏟아졌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프란치스코 교황도 미국의 무관용 이민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심지어 현재 백악관 안주인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와 로라 부시 전 영부인까지 아동 격리수용에 반대하고 나섰다. 고집 세기로는 세계적으로 당할 자 없을 것 같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20일(현지시간) 기존 입장을 철회하고 불법입국자와 미성년 자녀를 함께 수용하라는 행정명령에 전격 서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트럼프의 행정명령이 강경 이민정책으로부터 후퇴를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단지 미국에서 이번 아동 격리수용 사태의 파장이 얼마나 컸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일 뿐이다. 트럼프가 민주당이나 외국과의 협상에서 간혹 주고받기식 양보를 한 적은 있지만 여론에 밀려 정책을 변경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거의 전 세계가 반대했던 파리기후협약 탈퇴, 유럽 우방국들과의 갈등을 초래한 이란 핵협정 탈퇴, 이스라엘 주재 미국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 강행 등에서 목격된 것처럼 트럼프는 결코 여론에 굴복하지 않았다.

트럼프가 이번에 나름 '통 큰(?)' 양보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가족, 특히 어린이들이 관련된 이슈였기 때문이다. 격리수용 캠프에서 부모를 찾아 우는 아이들의 모습은 법률 집행이라는 명분을 무력화시켰다. 미국인들의 일반 정서상 가족 구성원의 강제격리 그리고 그로 인해 아동들이 고통을 겪어야 한다는 것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트럼프 시대 불법체류자 단속이 강화됐다고 하지만 미성년자들은 지금도 법률적 신분과 관계없이 무상 교육, 의료 등 혜택을 제공받는 게 현실이다.

타의에 의해 가족 구성원들이 헤어져야 하는 아픔을 전 세계적으로 한국인만큼 잘 이해하고 통감할 민족은 없을 것이다. 한반도 분단으로 생겨난 이산가족들이 바로 산증인이다. 경제적 궁핍과 정치적 압박을 피해 목숨을 걸고 한국으로 넘어온 탈북자들도 마찬가지다. 한국 문제에 관심 있는 미국인들과 이산가족 이슈를 놓고 대화를 나눈 경우가 몇 차례 있었다. 많은 한국인이 6·25전쟁 이후 거의 70년간 가족들과 만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모두 충격을 받는다.

두차례 남북 정상회담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도 이제 변화의 길에 들어설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남북 경제협력으로 대박을 터뜨리게 될 것이라는 장밋빛 분석들도 쏟아진다.
하루빨리 이 같은 기대와 꿈이 현실화되기를 바란다. 하지만 시간이 걸리고 절차도 복잡한 경제협력 등 이슈들보다 지금 당장 실현 가능하고 시급한 것은 이산가족들의 자유로운 만남이 아닐까 싶다. 미국의 불법체류자 자녀 격리수용 사태를 지켜보면서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jdsmh@fn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