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노무현. 바람이 분다-Ⅱ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 김경수 경남도지사 당선인이 6.13 지방선거 개표결과를 보며 환호하고 있다.
'대통령님과 함께 했던 사람 사는 세상의 꿈, 이제 경남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지난 14일 김경수 경남지사 당선인이 봉하마을에 위치한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찾아 적은 방명록 내용이다. 노 전 대통령이 남긴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미완의 과제를 그의 '마지막 비서관'이 이어받는 순간이었다.

지난 2007년 대선 패배 직후 친노 진영의 정치적 영향력은 크게 위축됐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는 "친노는 폐족"이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그러나 10년이 지난 오늘, '노무현의 사람들'이 한국 정치 권력을 석권하고 있다.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은 대통령이 됐다. 김경수, 박남춘, 허태정, 송철호, 허성무 등 노무현의 정치적 동지들은 지방권력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이런 친노 부상의 밑바탕엔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9년 4월 30일 오전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김해 봉하마을 사저를 나서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두 번째 이야기. 피의자의 권리, 운명의 날.
2009년 4월 30일. 봉하마을은 취재진으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날은 노 전 대통령이 역대 전직 대통령으로는 세 번째로 검찰 소환조사를 받는 날이었다. 공동취재단이 쳐놓은 포토라인 앞으로 수많은 카메라와 마이크가 진을 쳤다.

잠시뒤, 그 앞으로 승합차 한 대가 미끄러지듯 내려왔다. 검은 정장을 차려입은 노 전 대통령이 양복 자켓 단추를 여미며 차에서 내렸다. 그가 두세 걸음 앞으로 나와서자 김경수 비서관이 다가섰다. 김 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의 정면에 자리잡은 취재진을 손으로 가리켰다. 노 전 대통령은 김 비서관의 손 끝을 잠시 바라보다 인상을 쓰며 오른편에 차려진 포토라인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다시 두세 걸음 오른쪽 포토라인으로 다가섰다. 그가 고개를 숙이며 입을 뗐다.

"국민 여러분께 면목이 없습니다. 실망시켜드려 죄송합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말을 마친 노 전 대통령은 곧장 대형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에 오르기 전 지지자들과 취재진을 향해 가볍게 손을 들어 보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9년 4월 30일 오전 검찰 출두에 앞서 김해 봉하마을 사저 앞에서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있다. 사진=박범준 기자
검찰에 출두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 사진=박범준 기자
노 전 대통령 주변을 둘러싼 각종 의혹들은 2008년 7월 30일 시작된 국세청의 태광실업 특별(심층) 세무조사를 계기로 본격화했다. 특별 세무조사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이 맡았다.

본사가 경상남도 김해에 위치한 태광실업 특별 세무조사에 서울지방국세청이 투입된 것은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비판이 일었다. 이에 대해 국세청은 "통상적인 교차세무조사(관할 지방국세청을 바꿔 진행하는 세무조사)"라고 일축했다.

특별 세무조사를 통해 노 전 대통령 주변과 정치권으로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의 돈이 흘러들어간 정황이 포착됐다. 사건은 '박연차 게이트'로 확대됐다.

정상문, 이광재, 서갑원, 강금원 등 노 전 대통령의 측근들과 후원자가 검찰에 소환됐다. 노 전 대통령 친인척에 대한 조사에도 속도가 붙었다. 그의 친형 노건평씨가 검찰에 소환됐고 구속됐다. 조카사위 연철호씨가 긴급체포됐고 권양숙 여사가 참고인 신분으로 부산지검에 불려갔다. 아들 노건호씨와 딸 노정연씨 부부도 검찰조사를 받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소환에 앞서 서울 대검찰청 앞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왜 국민에게 면목 없다고 말씀하셨습니까?" 라는 질문에 "면목 없는 일이지요."라고 짧게 답했다. 이어진 질문엔 "다음에 합시다", "다음에 하지요"라고 답하며 대검찰청으로 들어갔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주변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커지자 홈페이지에 글을 올려 심경을 토로했다. 뇌물 수수 혐의에 대해 반박하면서도 검찰 수사결과에 대한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인정했다.

2009년 4월 7일 '사과드립니다'라는 글을 통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4월 22일 올린 글에선 정치적 대응이 아닌 '피의자의 권리'를 이야기 했고 지지자들을 향해 '자신을 버려달라'고 호소했다.

2009년 4월 30일 서울역에서 시민들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검찰소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사진=서동일 기자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를 지휘했던 대검 중수부는 박연차 회장의 진술 등을 근거로 2009년 5월 4일 임채진 검찰총장을 비롯한 검찰 수뇌부에게 노 전 대통령을 '포괄적 뇌물죄'로 기소해야 한다는 보고를 올렸다.

검찰은 박 회장이 2007년 6월 대통령 관저로 전달한 100만 달러와 연철호씨에게 송금한 500만 달러의 종착지를 노 전 대통령으로 봤다. 또 정상문 전 총무비서관이 빼돌린 대통령 특수활동비 12억5000만원도 노 전 대통령이 관여한 것으로 봤다. 노 전 대통령측에 회갑선물로 전달됐던 명품시계도 뇌물로 파악했다.

2009년 4월 30일 오후 3시 홍만표 전 대검수사기획관이 대검청사별관에 마련된 임시기자실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은 "100만 달러의 존재는 퇴임 이후에 알게 됐고 500만 달러도 퇴임 후 알았지만 정상적인 투자금"이라고 해명했다.

유시민 전 장관은 최근 한 방송에서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재산 목록을 만드는 과정에서 명품시계의 존재를 알게됐다"면서 "직접 노무현 대통령한테 들은 이야기"라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의 법률대리인을 맡았던 문재인 대통령도 자서전 '운명'을 통해 "검찰이 아무런 증거가 없다는 것을 거듭 확인했다. 박연차 회장과 노 전 대통령 사이의 통화기록 조차 없었다"고 증언했다. 문 대통령은 또 "검찰이 기소를 하면 법원에서의 승부는 자신을 했다. 이길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검찰 수뇌부는 5월 4일 수사보고 이후 2주 동안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신병처리를 결정하지 않았다.

그렇게 운명의 날, 2009년 5월 23일이 찾아왔다.

2009년 5월 29일 시청앞 광장에서 치뤄진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 노 전 대통령 국민장 기간 동안 전국 각지 분향소에 500만명의 추모객이 몰렸다. 사진=김범석 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이호철 전 청와대 민정수석과 문재인 대통령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8대 대선 출마를 앞두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소를 찾았다. 사진=연합뉴스

juyong@fnnews.com 송주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