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중로]

학생들에게 좀더 세심한 배려를

40~50년 전 대도시의 초등학교 1개 학급은 통상 60~70명의 학생들로 북적였다. 한 학년이 적게는 10개, 많게는 15개반으로 편성되고, 이조차 운영이 어려워 오전반·오후반으로 나눠 수업이 진행되기도 했다. 교문 앞에서 복장과 이름표 등을 검사하는 주번, 교사, 학생들을 바래다주는 부모들, 조잘조잘 이야기 꽃을 피우면서 삼삼오오 등교하는 학생들로 학교 앞은 매일 시끌벅적했다.

가뜩이나 학생 수에 비해 부족한 학교에다 산업화의 진전에 따라 인구가 도심으로 집중되는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해 나타난 풍경이다.

특히 교육은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주입식 교육이 지상과제였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학생 인권은 '수우미양가'로 매겨지는 성적에 비해 우선순위가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부모는 교사의 체벌로 자식의 종아리가 멍들었을 경우 오히려 자식의 잘못을 꾸짖었고 자고 있는 자식의 종아리에 약을 발라주면서 가슴 아파했던 시절이다.

당시 새학년이 되면 교사의 '가정방문'을 통해 가정경제 및 생활수준을 파악하기도 했다. 영화 '친구'에서 담임교사가 "아버지 뭐하시노?"라고 물은 뒤 학생을 체벌하는 장면은 지금의 중장년층에게는 전혀 낯설지 않은 광경이다.

교탁 앞에 선 교사는 "다들 눈 감아라"고 지시해놓고 "집에 차 있는 사람 손 들어" "아버지가 고졸인 사람 손 들어"라면서 학생의 집안 경제수준 및 부모 학력 등에 대한 질문 등을 던진 뒤 탁자를 탕탕탕 내리치는가 하면 "눈 뜨는 사람이 있네. 눈 꼭 감아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교사는 이어 "어머니 없는 사람 손 들어" "아버지 없는 사람 손 들어"라며 학생 개개인의 가정사를 파악했다. 교사의 지시에 손을 든 학생의 기분은 어땠을까. 과연 비밀은 지켜졌을까.

요즘 학교에서 이 같은 조사가 벌어졌다고 상상해보자. 두말할 필요 없이 큰 파장이 일 것이다.

학생 인권은 눈에 띌 정도로 향상됐다. 그러나 여전히 세심한 배려는 부족하다고 생각된다. 학교에서 '부모'라는 용어가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게 한 예다.

최근 학교에서는 학교 및 성폭력, 유괴 등 각종 범죄에 대처하는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 강사는 교사뿐만 아니라 경찰관, 학부모, 시민단체 관계자 등 다양하다. 강사 중 일부는 "처음 보는 아저씨가 놀이터에 놀러가자, 엄마한테 데려다 주겠다고 하면 어떡해야죠? 얼른 부모님에게 전화하거나 연락이 안되면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해 그 자리를 피하세요"라는 식으로 교육한다. 그러나 조손가정이나 한부모가족, 소년소녀가장 등은 '부모'가 없다.
부모가 없는데 누구에게 일차적으로 도움을 요청하겠는가. 이런 교육을 받는 학생의 기분은 어떨까. 혹여 상실감을 느끼지는 않을까.

따라서 어린 학생들의 눈높이에서 보자는 것이다. 이들에게 '가족'은 있다. 부모가 없는 게 부끄러운 일도 아니다. 적어도 학교에서나마 부모라는 용어 대신 가족이라는 말로 학생들의 소외감을 덜어주는 노력부터 해보면 어떨까.

박인옥 사회부장
pio@fnnews.com 박인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