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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in 에스토니아⑨] 블록체인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허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7.04 09:33

수정 2018.07.04 09:33

【탈린(에스토니아)=허준 기자】 "blockchain is not a silver bullet."(블록체인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전자정부 시스템을 활용중인 에스토니아에서 들었던 말 중에 가장 인상적인 말입니다. 행정 곳곳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한 에스토니아에서 들은 말이라 더 기억에 많이 남는지 모르겠습니다.

3일(현지시간) 만난 에스토니아의 전자정부 시스템 솔루션 가운데 신원확인을 위한 KSI 시스템을 개발한 기업인 가드타임의 리스토 한센 전자정부 솔루션 총괄은 "블록체인 기술은 무변조성을 바탕으로 한 신뢰를 보장해주지만, 모든 곳에 블록체인을 적용하는 것이 묘약은 아니다"며 "블록체인 기술은 다른 기술과 함께 조화돼야 더 큰 힘을 발휘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최근 블록체인 기술이 주목받으면서 다양한 산업에 블록체인 기술을 적용하겠다는 기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마치 블록체인만 적용하면 기존 산업을 뒤흔들 새로운 무언가가 나타날 것만 같은 기대감이 가득한 것도 사실입니다.
이로 인해 '묻지마 투자'가 늘었고, 이를 악용한 사기사건도 쏟아지고 있습니다.

가드타임 리스토 한센 전자정부 총괄이 에스토니아 전자정부에 적용한 블록체인 기술을 설명하고 있다.
가드타임 리스토 한센 전자정부 총괄이 에스토니아 전자정부에 적용한 블록체인 기술을 설명하고 있다.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블록체인 기술이 만병통치약이 아니라는 리스토 한센 총괄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히려 중앙에서 통제하는 시스템이 더 강력한 경우도 있는데 굳이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겠다는 사례가 너무 많습니다. 정말 꼭 블록체인 기술이 필요한걸까요? 아니면 암호화폐 발행을 통해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억지로 블록체인 기술을 가져다 쓴걸까요? 반드시 되묻고 가야할 질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특히 리스토 한센 총괄은 기존 시스템과 블록체인의 조화를 강조했습니다. 모든 것을 분산하는 것에만 주력할 것이 아니라 중앙 집중형 시스템과 분산 저장 시스템을 적절히 조화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블록체인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을 경우, 이를 해결해야 하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완전 분산 시스템에서는 빠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죠. 실제로 문제가 발생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블록체인 플랫폼들은 의사결정에 애를 먹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더리움의 '다오(DAO)' 해킹 사건입니다. 분산화와 집중화의 조화가 필요하다는 리스토 한센 총괄 말에 머리가 끄덕여졌던 이유입니다.

한편 가드타임은 에스토니아 정부를 포함한 영국과 싱가포르 등 전세계 10여개 국가 정부나 기업에 KSI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KSI 시스템은 이용자들의 정보를 암호화한 해쉬값을 블록체인에 기록하고, 이 기록이 등록됐다는 인증을 이용자에게 보내주는 방식입니다.

블록체인에는 이용자들의 어떤 데이터도 기록되지 않습니다. 해쉬값으로만 저장되며, 이용자들은 한달에 한번 파이낸셜타임즈 등에 광고형태로 공개되는 암호를 풀 수 있는 해쉬코드로 내 기록이 변조됐는지, 아닌지를 확인해볼 수 있습니다. 지난 2008년부터 매달 한번씩 파이낸셜타임즈에 광고를 집행하고 암호를 풀 수 있는 해쉬코드를 전세계 이용자들에게 전하고 있다고 하네요.

가드타임의 기술을 적용한 에스토니아의 전자정부 시스템의 가장 큰 특징은 투명성입니다. 아무리 기술이 훌륭해도 이를 적용하는 곳에서 잘 운용하지 않으면 쓸모가 없을수도 있습니다. 에스토니아 정부는 국민들의 모든 정보를 공개하는 대신, 이 정보에 누가 접근했는지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정책을 수립했습니다.

누군가 나의 건강정보를 조회했다면, 그 조회한 기록이 반드시 남습니다. 내 주치의나 내가 진료받지 않은 병원의 의사가 내 건강정보를 조회한 사실이 확인되면 정부에 바로 항의하고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에스토니아의 전 총리가 자신의 건강기록을 조회한 의사를 문제삼아 의사의 면허가 박탈당한 사례도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공개된 정보를 남용할 경우 강력한 처벌을 내린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져 있기 때문에 전자정부 시스템이 잘 운용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2018 KPF 디플로마-블록체인 과정에 참여 후 작성됐습니다.>

jjoony@fnnews.com 허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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