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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체in 유럽⑩-끝] 작은정부가 선도하는 블록체인 혁명

허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7.05 09:42

수정 2018.07.05 09:42

【탈린(에스토니아)=허준 기자】블록체인 엑스포 유럽이 열린 네덜란드를 거쳐 독일 베를린과 에스토니아 탈린까지, 공공분야에서 블록체인 도입을 선제적으로 이끌고 있는 유럽 국가들을 돌아보며 현지 소식을 전달했던 '블록체in 유럽' 시리즈의 마지막은 '작은 정부' 얘기로 시작해보려 합니다.

유럽 각 국가를 다니면서 정부 관계자들과 스타트업(창업초기기업)들을 만날때 항상 빼놓지 않았던 질문은 '정부의 역할은 무엇이냐?'는 질문이었습니다. 그럴때마다 돌아오는 대답은 '기업을 돕는 것'이라는 얘기였습니다. 거창하게 블록체인 발전전략을 세우거나, 선도기술을 발굴하기 위해 거액을 투자한다거나, 정부 주도의 시범 사업을 진행한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습니다.

그저 정부는 기업들이 아이디어를 가져오면 그 아이디어를 실행할 수 있도록 자금을 지원하거나, 그에 맞는 제도나 법 개선에 나서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 한결같은 대답이었습니다. 심지어 암호화폐공개(ICO)와 같은 새로운 투자방식에 대해서도 섣불리 금지하거나 규제하지 않고, 국민들에게 투자의 위험성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네덜란드의 블록체인 민관협력단체인 더치블록체인연합체 프란츠 반 에테 사무국장(왼쪽)과 독일블록체인연합의 플로리안 글라츠 회장이 네덜란드와 독일의 블록체인 관련 정책 동향을 소개하고 있다.
네덜란드의 블록체인 민관협력단체인 더치블록체인연합체 프란츠 반 에테 사무국장(왼쪽)과 독일블록체인연합의 플로리안 글라츠 회장이 네덜란드와 독일의 블록체인 관련 정책 동향을 소개하고 있다.
시범 사업에 대한 얘기도 인상적입니다. 정부가 어떤어떤 사업이 필요하니 기업들은 지원하라는 이른바 '탑 다운(Top Down)'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기업들이 스스로 자신들에게 필요한 시범사업을 제안하고, 정부가 그 제안을 받아들여 제도를 개선하는 '바텀 업(Bottom Up)' 방식으로 다양한 시범 사업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네덜란드에서는 30여개의 파일럿 프로젝트가 모두 민간에서 제안된 아이디어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독일에서 진행되는 신원확인 시스템 프로젝트도 마찬가지입니다. 에스토니아 역시 민간 기업인 '가드타임'의 기술을 정부가 받아들여 전자정부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사실 우리는 그동안 정부 주도의 신산업 발굴 방식에 익숙합니다. 정부가 주도하는 OO산업 발전전략, OO분야 5대 강국 프로젝트, OO산업 중장기 프로젝트 등 다양한 정부 주도 프로젝트가 진행됩니다. 이 가운데 실질적으로 민간 기업들에게 도움이 되는 프로젝트가 얼마나 많을지는 의문입니다.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기업들 조차도 '사업비 따내기'를 하고 있다는 자조섞인 반응이 나온다는 것을 정부도 모르지 않을텐데요.

그동안 우리는 중앙집중형 방식의 '큰 정부' 체제에서 많은 일을 해왔습니다. 이를 통해 '한강의 기적'을 이뤘고, 세계 최대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를 갖춘 나라로 발전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국제적인 흐름은 '작은 정부'인 것 같습니다. 특히 모든 산업에 ICT가 융합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정부가 모든 것을 관리하거나 통제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4차 산업혁명을 '관용어'로 만든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의 클라우드 슈밥 회장은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작고 민첩한 물고기가 살아남는 세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빠른 물고기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구체화하고, 도전할 수 있는 토양이 필요합니다.

이는 비단 블록체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에어비앤비나 우버와 같은 공유경제 모델이 왜 우리나라에서는 사장될 수밖에 없는지, 왜 우리나라에서는 넷플릭스와 같은 거대 콘텐츠 사업자가 나오지 않는지, 우리나라 블록체인 기업들이 왜 싱가포르나 홍콩, 스위스에 법인을 세우는지에 대해 이제는 정부가 대답을 내놔야 할 시점이 아닐까요?
벌써 몇년째 '네거티브 규제'로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규제 샌드박스'를 만들어 신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는 얘기를 기사로 독자분들께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현실은 어떻습니까?
이미 전세계적으로 민첩한 물고기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미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이제라도 이런 물고기들이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날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미 유럽은 블록체인 분야에서 만큼은 우리보다 한참 멀리 뛰어가고 있습니다. 유럽에서 지난달 27일 열릴 예정이었던 규제개혁점검회의가 미뤄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쩌면 문 대통령이 바라는 규제개혁은 유럽의 '작은 정부'의 모습은 아닐까요?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2018 KPF 디플로마-블록체인 과정에 참여 후 작성됐습니다.>
jjoony@fnnews.com 허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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