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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역사 속 재산세

안삼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7.05 17:06

수정 2018.07.05 17:06

[여의나루] 역사 속 재산세


정부는 최근 재산세 관련 세금의 하나인 종합부동산세 개편 초안을 발표했다. 약칭 '종부세'라고 부르는 세금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 2005년에 강남 집값 안정과 부동산 투기 억제를 목적으로 신설된 세금으로 2008년 헌법재판소 위헌 판결 등 많은 변화를 거쳐왔다.

당시 부자들의 세금이라는 뜻으로 '여필종부'(여자는 필히 종부세를 내는 부자를 만나야 한다)라는 사자성어가 시중에 회자되기도 했다.

지난해 종부세 납세인원은 33만6000명(개인 31만7000명, 법인 1만9000개, 세액 1조5000억원)이다.

재산세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세금이다. 인류는 수백만년간 수렵채취생활을 하였다.
1만2000년 전에 지금의 이라크, 시리아 등 비옥한 중동지역에서 '농경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기후변화 등으로 수렵채취생활이 어려워지면서 일부 창조적 인류는 농작물을 재배하는 농업사회를 발전시켰고, 일부는 양·소·말 등 가축을 키우는 유목사회로 진화했다고 인류학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농업 경작이 시작되면서 공동체사회 유지를 위해 황무지개간, 수로건설, 도로건설, 유목민의 습격에 대비하는 방위업무 등 공동체의 관리업무가 발생했다. 공동체 관리와 운영에 필요한 경비조달을 위해 농지수확량에 대한 재산세가 발생됐다. 경작에 전념하는 농민들이 잉여농산물의 일부를 왕, 신관, 관리 등에게 세금으로 납부하게 되었고, 사회구조도 지배계급과 일반 농민으로 구분됐다는 것이 역사의 진화 과정이다.

고대 이집트의 기록에 농작물 세금 징수를 담당하는 세무공무원과 농민 간에 오늘날처럼 공정한 세금산정금액에 대한 많은 조세마찰이 있었다. 이집트는 세금을 속인 농민의 코를 베어내는 가혹한 형벌을 주어, 코를 베인 사람들이 집단으로 사는 마을이 있었다고 전한다.

우리의 조선시대에도 토지에 대한 재산세가 국가 운영의 주된 세금이었다. 세부담의 형평성을 추구하기 위해 전답의 생산량을 기준으로 상답, 중답, 하답으로 구분하고 이것을 각각 상중하로 구분해 9단계의 차등세율을 적용했다. 외관상 매우 공정한 제도로 보이지만 농사는 객관적인 평가와 근거과세가 어려우므로 부정부패와 가혹한 세정의 원인이 되었다.

농업 생산량은 가뭄·홍수·병충해 등으로 매년 다르고, 지방 관원의 자의적인 주관으로 과세등급이 결정되고, 지역별로 생산량 차이가 나는 등 공정과세가 원천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오늘날 산업사회의 주된 세금인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는 장부를 통한 정확한 근거를 통해 과세하므로 공정성이 높아졌다. 재산세는 농지 생산량 계산의 공정성 문제처럼 현대에도 과세표준이 되는 재산가액의 객관적인 평가가 어려울 수밖에 없는 고전적인 세금제도이다.

우리나라의 재산세, 종합재산세는 매년 정부가 전국의 모든 주택(1670만호), 토지(3300만필지) 의 가격을 조사하여 공시가격을 기초로 부과한다. 업무의 방대함, 개발호재, 교육여건, 인구이동 등에 따라 주택과 토지가격의 수시 등락 등 현실적으로 정확한 가격조사가 불가능하다.

역사적 경험으로 보건대 재산세, 종부세 체계가 복잡할수록 형평성 측면에서 국민정서상 이상적으로 보이겠지만 역설적으로 경제적 부작용도 커질 수 있다. 주택시장의 과열과 투기는 억제해야 한다.
그러나 과격한 세금부과로 주택시장을 침체시키는 것은 피해야 한다.

일부 세금증가의 반대급부인 주택경기의 침체는 경제의 위축과 부동산중개소, 이삿짐센터 종사자 등 많은 영세서민들의 생계 위협을 초래한다.
필자는 공시가격의 점진적 현실화 추진, 과세 대상과 인원의 확대, 세법구조의 단순함을 통해 경제적 왜곡의 최소화를 주장한다.

윤영선 법무법인 광장 고문·전 관세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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