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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가족의 복원

안삼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7.09 17:16

수정 2018.07.09 17:16

[fn논단] 가족의 복원

로마가 세계를 1000년이나 지배한 것은 그저 운이 좋아서가 아니다. 통치조직과 생산기술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못지않게 사회 지배층이 유능하고 도덕적이며 사회 기풍이 건전했기 때문이다. 물론 후대로 갈수록 존경받던 지배층이 사치와 향락에 젖고, 참신한 기풍이 무너지면서 쇠퇴하고 말았지만 그 전까지 로마는 유럽과 아프리카, 아시아까지 영토를 넓히고 2000년 전에 이미 '공화정'과 '법치주의'를 정치체계와 행정에 구현한 대단한 나라였다. 이른바 로마의 4주덕(四主德)이라고 하여 '절제' '경건' '정의' '용기' 같은 덕목으로 무장한 사회 지배층이 없었더라면 군사력이나 경제 우위만으로 그 긴 세월 패권국으로 군림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 우린 어떤가. 대한민국은 그간 많이 컸다.
그러나 속내를 들여다보면 겉모습만 어른이고 속은 아이인 꽤 기형적인 모습이다. 경제지표는 선진국인데 삶의 질은 최하위권을 못 면하는 나라가 우리 아닌가. 날로 심화되는 저출산도 그 징후 중 하나일 뿐이다. 과거에는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대는 이어주고 가야 한다'고들 했다. 결혼과 출산을 인간됨의 기본으로 여겼다. 시쳇말로 장가도 안 가고 애도 없으면 정상적인 성인 취급도 안 했었다. 그러나 요즘은 개인주의화의 도도한 물결 속에 가족단위의 모둠살이는 그저 하나의 선택지일 뿐이다.

이런 선택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요즘 청년들은 말한다. '내가 아이를 낳으면 그 힘든 입시지옥, 취업난, 비정규직과 저임금을 똑같이 겪게 될 텐데 그걸 왜 시키나? 사랑하는 내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지극한 사랑은 그 아이가 태어나지 않게 해주는 것'이라고. 이렇듯 사막공기처럼 황폐한 사회, 생명을 잉태하지 못하는 사회가 돼버렸다. 어디서부터 그 치유의 실마리를 찾아야 하나.

필자는 무너진 가족의 복원에서 그 답을 찾고자 한다. 뒤돌아보자. 산업화·민주화 세대가 대한민국을 이만큼 경제대국으로 이끌어오는 동안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큰 것을 희생했는데 다름 아닌 '가족시간'의 소중함과 '가족'이라는 이름의 단란함 그리고 연대였다. 장시간 노동과 과로 스트레스에 내몰리며 산업역군, 회사인간으로 살아가느라 아빠로서는 부재했던 가장과 개인노동자로서의 전망을 잃어버린 채 자녀를 통한 대리실현에 기대를 걸어야 했던 비자발적(?) 전업주부로 구성된 한국 가족 안에서 우리 자녀들이 뭐 얼마나 자유롭고 충만한 감성을 느끼며 자랄 수 있었겠는가. 그 덕분에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가정에서조차 사랑과 정성 속에서만 전달되는 안정된 품성과 올바른 습관, 불굴의 용기와 같은 것들은 제대로 훈육하지 못했던 것 같다. 연일 언론 보도를 장식하는 저 경제지배층 가족들의 볼썽사나운 갑질과 몰상식은 그저 그 한 단면일 터이다.
근현대 한국가족은 근면하고 성취 지향적이지만 따듯하고 반듯한 품성의 사회 지도층을 육성하는 일에는 그래서 실패했다. 오죽하면 정부가 2016년 '인성교육진흥법'을 제정하면서까지 후속세대의 인성교육을 강화하겠다고 나섰겠는가.

가족의 복원은 무엇보다 공동의 체험과 추억을 만들 안정된 가족시간 속에 그 해답이 있을 것이다.
정부의 주 52시간 근무제 도입, 탄력근무제 확대, 아빠와 엄마의 육아 참여를 확대하는 각종 일·가정 양립정책들이 이런 맥락에서 다시 읽히기를 기원해본다.

이재인 사단법인 서울인구포럼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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