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주취범죄 왜 감형?”..취객 주먹에 경찰, 소방 ‘덜덜’

김규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7.11 11:14

수정 2019.08.22 13:06

11일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경찰에 대한 공무집행방해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공무집행방해로 검거된 ‘주폭’ 피의자들은 손, 발, 치아 등을 사용해 경찰관을 폭행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자료=한국형사정책연구원
11일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경찰에 대한 공무집행방해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공무집행방해로 검거된 ‘주폭’ 피의자들은 손, 발, 치아 등을 사용해 경찰관을 폭행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자료=한국형사정책연구원

#.1 지난 3월 23일 자정 무렵 서울 월드컵로 망원2치안센터에서 김모씨(56)가 난동을 부렸다. 김씨는 술집에서 종업원을 때려 현행범으로 체포됐으나 반성은커녕 수갑을 풀어주려던 경찰관의 복부를 발로 걷어차고 욕설을 퍼부었다.

#.2 지난 6일에는 서울 을지로 청계천 안 수풀에서 술에 취해 자던 이모씨(65)가 자신을 부축한 구급대원의 어깻죽지를 주먹으로 폭행했다. 이후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의 뺨까지 올려붙였다.
술에서 깬 이씨의 진술은 “기억나지 않는다”였다.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경찰, 소방 공무원들이 취객의 주먹질에 자신들의 안전을 위협받는 경우가 늘고 있다. 막무가내로 폭행을 가하고 욕설을 하는 등 난동이 빈번하지만 대응책이 마땅치 않아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이다. 이 같은 정상적인 공무집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폭력, 행패, 성희롱 등을 방지하기 위해 주취감형을 없애고 주폭(주취 폭력)에 대한 엄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경찰에 '침뱉고', 구급대원 '희롱'
11일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경찰에 대한 공무집행방해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공무집행방해로 검거된 ‘주폭’ 피의자 비율이 1994년 21%에서 2014년 78%로 20년 새 4배 가까이 폭증했다. 지난 2010년부터 2015년까지 발생한 경찰의 공무집행 도중 부상을 입은 3240건 중 1064건(33%)은 주폭 난동에 의한 것이었다. 지난해 공무집행방해로 경찰에 입건된 1만2883명 중 주폭은 9048명으로 무려 70%에 달했다.

일선 경찰서 직원들은 만취한 주폭의 난동에 어려움을 호소한다. 서울의 한 경찰서에 근무하는 박모 경장(34)은 “취객들이 파출소에서 침을 뱉거나 욕설을 하기도 하고, 심지어 똥오줌을 싸놓기도 한다”며 “경찰관을 때리는 등 위법에는 대응할 수 있지만 욕하거나 소리 지르는 행위는 애매해 참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파출소에서 근무 중인 김모 순경(28)은 “유흥가 출동 시 일부러 녹음기를 켜고 나갈 때도 있다”며 “취객들은 이성을 잃은 상태라 힘을 써 제압하면 공권력을 남용했다는 민원을 받을 수 있어 조심해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주폭의 난동이 두려운 것은 소방대원들도 마찬가지다. 지난 5월 1일에는 소방서 소속 강연희 소방위(51·여)가 취객을 구조하던 중 머리를 수차례 구타당한 뒤 어지럼증과 두통을 호소하다 결국 숨졌다. 한 구급대원은 “여성 대원들은 취객들에게 터치를 당하거나 성희롱적 발언을 듣기도 한다”고 전했다.

"주취 감형 말고 주취 증형 해야"
급증하는 주폭에 경찰과 소방당국은 주취자 관련 규정을 강화하고 ‘무관용 원칙’을 적용하겠다고 공언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거리가 먼 상황이다. 주폭에 대한 처벌 강도가 세지 않기 때문이다.

현행 공무집행방해죄는 최대 5년의 징역 또는 1000만원의 벌금형, 소방기본법 위반죄는 최대 5년의 징역 혹은 5000만원의 벌금형에 각각 처해질 수 있다. 문제는 술에 취했을 경우 ‘심신미약’이 인정돼 감형의 사유가 된다는 것이다. 초범은 대부분 1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그치는 등 처벌의 효과가 전혀 발휘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한 소방대원은 “취객들은 ‘기억이 안 난다’며 범행 자체를 부인하고, 검찰에 기소돼 재판을 받더라도 벌금형에 그친다”며 “엄벌한다고는 하는데 처벌 강도가 높아졌는지까지 체감은 못 하겠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장에서 위법 행위가 있으면 적극 체포하고 있지만 처벌이 약해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주취감형이 아니라 오히려 가중처벌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올라 온 ‘주취감형 폐지를 건의합니다’는 의견에는 총 21만6000여 명이 서명했다. 주취감형 폐지를 주장하는 국민 청원은 현재 100여 건을 웃돈다.


윤해성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박사는 “현행법에서 규정된 처벌의 강도가 낮은 수준이 아니지만 법원에서 대부분 벌금형 이하의 판결을 하는 등 처벌 수위를 낮게 판단한다”며 “주취 상태로 공무집행방해를 할 경우에 무조건 기소를 하고, 처벌도 대폭 상향하는 등의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integrity@fnnews.com 김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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