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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규제혁신의 열쇠는 기득권 설득

안삼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7.12 17:10

수정 2018.07.12 17:10

[여의나루]규제혁신의 열쇠는 기득권 설득


최근 경제 분야에서 큰 파문을 일으킨 사건 중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계획됐던 규제혁신 점검회의를 이낙연 국무총리의 건의를 받아 전격 취소해버린 일이다. 대통령의 "답답하다"라는 말이나 국무총리의 "민간의 눈높이에서 봤을 때 미흡하다"라는 말처럼 정부가 추진하고자 하는 내용이 기대 수준을 크게 밑도는 것이었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어쩌면 각 부처를 질책하고 독려하려는 의도적 결정이었는지도 모른다.

문재인정부가 내놓은 경제정책 기조의 핵심은 모두가 알다시피 소득주도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이다. 다른 두 목표와 달리 혁신성장이라는 목표는 어느 누구도 이견이 없으므로 어쩌면 쉽게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됐는지도 모른다. 이 정책을 추진하려는 강한 의지를 보이기 위해 이 정부는 중소벤처기업부를 신설했고,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도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이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핵심 정책수단은 '규제혁신'인 셈이다. 즉 새로운 산업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혹은 혁신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서는 이를 가로막는 많은 규제들을 제거하거나 개선하지 않으면 안되는데 정부가 들고 온 보고 내용이 그런 높은 기대수준에 크게 못 미쳤다고 판단됐던 것이다.

모두가 동의하는 정책인데 왜 이렇게 잘 안 되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나라 규제혁신의 (정부에 따라 규제개혁, 규제완화, 규제철폐 등의 다양한 용어를 썼지만) 추진방식에 한계가 온 것은 아닐까 싶다. 기실 우리나라는 그렇게 어렵던 1990년대 말의 외환위기 때 다른 개혁조치들과 함께 어느 나라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과감한 규제개혁을 추진해 IT를 중심으로 한 벤처산업의 문을 활짝 여는 데 성공했고, 이것이 위기를 극복하는 초석이 된 바 있다. 그런 성공의 경험을 교훈 삼아 이후 역대 정부는 경제 활성화가 필요할 때면 전가의 보도처럼 규제혁신을 들고 나왔고, 이 정부도 예외는 아닌 셈이다. 이렇게 좋은 전례도 있고 정부의 의지도 강한데 왜 규제혁신이 미흡한 것일까. 과연 정부 부처들이 일을 잘 못하고 있다는 이유뿐인 걸까. 과연 지금과 같은 방식의 규제혁신 추진이 유효한 것일까.

사실 혁신성장을 이끌어내야 할 규제혁신을 가로막는 장벽을 '규제'라고 쉽게 부르고 있지만 그 규제들을 바꾸지 못하게 하는 것은 결국 강한 반발을 보이는 기득권 집단들이라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반대하는 기득권들은 경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들일 수도 있지만 새로운 산업의 등장, 특히 4차 산업혁명의 물결로 인해 자신들의 입지가 무너질 수도 있다고 느끼는 이해집단인 경우도 많다. 그래서 역대 정부들이 추진하려 했고 기대도 모았던 원격의료를 비롯한 디지털헬스, 핀테크, 공유경제,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이 우리의 높은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대기업만이 아니라 혁신 스타트업들이 참여함에도 불구하고 돌파구를 뚫지 못하고 있음도 잘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해답은 결국 반발하는 기득권 집단들을 잘 설득하는 데에 규제혁신의 열쇠가 있는 셈이다. 이들 이해 당사자들을 설득하는 노력을 정부 부처에만 맡기는 것은 '연목구어'나 마찬가지다. 지난 정부들에서 했던 것처럼 규제혁신이 가져올 국가적 이익을 강조하고 잘 홍보해 국민의 지지를 얻으려 하는 것은 소용없다는 것도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결국 기득권 집단들을 설득하려면 '행정적 노력'보다는 '정치적 협상'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국민적으로 높은 지지를 얻고 있는 문재인정부가 직접 (대통령이든 집권여당이든) 기득권 집단들을 설득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이 정부가 과거 정부보다는 이들의 설득에 한 걸음 더 가까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김도훈 경희대학교 국제대학원 특임교수·전 산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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