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당연했던 것, 당연치 않게 봐야 할 때

"이렇게 발전할 수밖에 없었던 절박함을 우리는 압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우리는 그 속의 어두운 함의를 놓쳐서는 안됩니다. 우리 땅, 우리의 자원, 우리의 모든 삶이 관련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사회구조 자체도 이 문제와 결부돼 있습니다. 원하든 원치 않든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가 통제 불가능한 영향력을 갖게 될 수도 있기에, 정부의 여러 협의회들은 그 영향력을 경계하고 있어야 합니다. 잘못 주어진 권력이 재앙처럼 발호할 가능성은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겁니다."

지난 1961년 1월 17일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퇴임연설문 중 한 대목이다. 미국 대통령보다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 사령관으로 더 유명한 아이젠하워는 퇴임하며, 군산복합체가 가진 위험성을 강조했다. 미국인들은 이때 처음 공개적으로 군산복합체라는 개념을 알게 됐고, 군인 출신 대통령의 폭로라는 점에서 큰 충격을 받기도 했다.

전쟁이 일상이 된 미국에 당연해진 군산복합체지만, 전후 미국이 그만큼 더 극복해야 할 대상이기도 했다.

아이젠하워의 퇴임사는 2018년 대한민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근 계엄사 문건 때문에 논란이 일고 있는 국군기무사령부가 대표적이다. 아이젠하워의 퇴임사에 있는 '군산복합체라는 단어를 국군기무사령부'로 바꾸면, 바로 우리의 이야기가 돼버린다. 분단 이후 반공은 일상화됐고 군부정권을 거치면서 방첩부대의 권력은 당연시됐다. 민주화 이후에도 제대로 개혁되지 않은 기무사는, 결국 괴물이 돼 우리 앞에 나타났다.

기무사만 그럴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사회·경제 분야에도 많이 남아 있다. 대기업에만 의존하는 경제구조, 지나치게 긴 근로시간과 낮은 임금, 사회 전반에 만연한 권위주의 등을 당연시했다. 성장이 절박했던 20세기 대한민국은 '그 속의 어두운 함의'를 감춰두고 모른 체했다.

문재인정부 들어 '적폐청산'이 계속 이뤄지고 있다. 혹자들은 적폐청산을 이전 정부에 대한 단죄라고 말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이 쌓아온 적폐가 앞선 9년에만 만들어진 건 아니다.
그 이전부터 쌓여온 구조적 문제들을 하나씩 고쳐나가는 게 진정한 의미의 적폐청산이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것들을 당연하지 않게 바라봐야 할 때가 됐다. 20세기에 대한민국과 함께 성장한, '잘못 주어진 권력들이 재앙처럼 발호할 가능성은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fair@fnnews.com 한영준 산업2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