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군대서 죽은 아들 유서도 못 보는 어미 심정 아나요?"

김규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7.30 13:12

수정 2018.07.31 07:49

[두 일병의 죽음, 실수라는 軍] (3)
조 일병, 어머니에게 유서 남겼지만 정작 유족들은 제대로 못봐
군은 수사자료라는 이유로, 복사·사진 촬영 모두 '거절'
300~400장 분량 수사자료 보는데 1시간 열람 제한하기도
10년 전 의무기록 받지 못한 유족도..국회선 관련 법안 발의

조 일병 유족들은 해당 사진에 나온 자료가 군이 유서 복사본이라며 처음 건넸던 자료와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유서지만 잘 보이지 않아 글을 읽기 힘들 정도다. 자료제공=조 일병 유족
조 일병 유족들은 해당 사진에 나온 자료가 군이 유서 복사본이라며 처음 건넸던 자료와 일치한다고 주장한다. 유서지만 잘 보이지 않아 글을 읽기 힘들 정도다. 자료제공=조 일병 유족
“죽은 아들이 유서를 남겼는데, 군은 수사 중이라 공개할 수 없다고 합디다. 유족에게 유서 한 장 복사해주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요?”
조모 일병은 우울증으로 목숨을 끊기 전 자신의 수첩에 유서 형식의 글을 남겼다.
여기에는 어머니에 대한 당부의 말이 담겨 있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들 유서 원본을 한참만에야 받아볼 수 있었다. 수사 자료라는 이유로 군에서 수사를 종료할 때까지 열람 등을 거부할 수 있어서다. 이 때문에 투명한 수사와 유족들의 알권리를 위해 수사 중에라도 자료의 열람이나 복사 등을 허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본지 2018년 7월 24일, 27일자 24면 참조>
글씨 분간 어려워.."軍 사진, 복사 거부"
30일 유족과 군인권센터, 군 수사기관 등에 따르면 지난 3월 8일 서울 마포대교에서 투신한 조 일병은 A4용지 3장 분량의 자필 유서를 남겼다. 어머니, 형에 대한 고마움과 당부의 말, 죽음을 선택한 이유 등이 담겨 있다. 군은 수사 자료라는 이유로 유서를 제출 받았고, 유족들은 사진촬영 등을 요구했지만 거부당했다. 수차례 요구 끝에 받은 유서의 복사본은 글씨체조차 분간하기 힘든 상태였다. 조 일병의 어머니는 “새까만 종이라서 아들의 유서인지조차 알기 어려웠다”며 “군은 복사본을 재복사해서 상태가 좋지 않다는 말을 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와관련, 당시 수사관은 "최초 출동 경찰에서 유서를 유족에게 열람시켜 줬고, 수방사 헌병단 인계후 다시 열람시켜 줬다"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감정의뢰 전에도 유서의 사본을 복사해줬으며, 감정 후엔 원본을 모친에게 줬다"고 반박했다.

지난해 7월 19일 군에서 가혹행위를 겪다가 투신해 숨진 고모 육군 일병 유족들도 군에 유품인 유서와 수첩 등을 요구했다가 수사 자료라는 이유로 거부당했다. 유서를 사진으로 찍으려 했지만 군은 이를 제지했고 복사도 해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족들이 아들 유서를 확인한건 군으로부터가 아닌, 언론 보도를 통해서였다고 한다.

현행 군사법원법상 유서는 수사 증거 자료로 분류된다. 수사 중 공개 여부를 군 자체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유족에게 조차 공개하지 않아 군 수사의 불투명성이나 알권리를 주장하는 유족들과 갈등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육군 관계자는 “수사 자료를 유족에게 공개할지 여부는 수사팀에서 자체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며 “(수사기록의 경우) 유족들이 정보공개청구를 하면 검토과정을 거쳐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족들은 군 수사기록을 열람하는 과정에서도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조 일병 어머니는 “수사 관계자가 본인 약속이 있다면서 300~400장에 달하는 수사기록을 1시간 안에 보라고 했다”며 “매일 방문해 자료를 3~4장씩 보겠다고 하니 ‘이러시는 목적 무엇이냐, 이런다고 죽은 아이가 살아오느냐’는 면박을 당했다”고 했다. 조 일병 유족은 수사팀 관계자 2명을 모욕 혐의로 군 검찰에 고소했다.

조 일병이 자필 유서에게 유족에게 남긴 글로, 자필 유서 내용을 컴퓨터 글씨체로 옮긴 것. 어머니, 형에 대한 고마움과 당부의 말 등이 담겨있다. 자료제공=조 일병 유족들
조 일병이 자필 유서에게 유족에게 남긴 글로, 자필 유서 내용을 컴퓨터 글씨체로 옮긴 것. 어머니, 형에 대한 고마움과 당부의 말 등이 담겨있다. 자료제공=조 일병 유족들
10년째 의무기록 못 받아.."투명한 정보공개 필요"
정보공개청구를 한다고 수사기록이나 자료들이 모두 공개되는 것도 아니다.

지난 2004년 4월 해병대에서 복무 중 허리 부상으로 조기 전역한 뒤 허리통증으로 인한 우울증으로 2016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배모씨의 가족은 배씨의 군 의무대 기록을 10여년 동안 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배씨의 어머니는 "군이 아들의 의무대 치료 기록을 주지 않아 최근 관련 기록을 군에 요청하니 이미 폐기해 없다는 답변을 했다"고 가슴을 쳤다.

군 인권센터 방혜림 간사는 “군이 수사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수사 방향성을 알려주는 차원에서 유족에게 유서 등의 자료를 공개하는 건 필요한 절차”라고 지적했다.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 같은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지난 5월 ‘군인의 지위 및 복무에 관한 기본법’ 전면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사망 군인의 유족 등이 언제든 관련 기록을 열람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 의원실 관계자는 “지금은 군에서 불리한 자료를 안 줄 수도 있고, 자료를 제대로 못 받는 유족의 불만도 크다”며 “법안을 통해 군 수사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유족들의 기본권리도 향상한다는 취지”라고 했다.

integrity@fnnews.com 김규태 최용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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