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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도안의 오판… 벼랑 끝으로 내몰린 터키 경제

송경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8.08 17:12

수정 2018.08.08 21:11

미국인 목사 석방 놓고 트럼프와의 협상  망치며 지난주부터 경제 제재 맞아
사위를 재무장관 앉힌 후 통화정책 개입까지 언급..10년물 국채금리 치솟고 리라 가치는 곤두박질
에르도안의 오판… 벼랑 끝으로 내몰린 터키 경제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오판과 통화정책 개입이 터키 경제를 점점 벼랑끝으로 몰고가고 있다. 터키 은행들 역시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에르도안의 오판으로 미국과의 갈등이 빚어지고 이로 인해 경제제재가 지난주 시작된데다, 대통령이 터키 중앙은행(CBRT)의 금리인상을 반대하면서 리라는 연일 추락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또 경제정책 컨트럴 타워인 재무장관에 자신의 사위를 앉혀 투자자들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

이같은 에르도안발 악재들이 잇따르면서 올들어 터키 통화인 리라가 사상최저치로 추락하고, 국채 수익률은 20%를 돌파하는 등 금융시장 곳곳에서 경고등이 켜졌다.

■10년물 국채금리 20% 돌파

7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미국이 지난주 터키에 대한 경제제재를 시작하면서 터키 금융시장이 또 다시 출렁이고 있다.
터키가 스파이, 테러 혐의 등으로 억류하고 있는 미국인 목사 앤드루 브룬슨 석방을 놓고 터키 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터키에 경제제재를 가하자 미국과의 관계단절을 우려한 투자자들이 썰물 빠지듯 빠지고 있다.

게다가 대통령이 통화정책에 개입할 수 있다고 밝힌 에르도안 발언으로 CBRT의 독립성이 의심되는 가운데 리라 하락 속에서도 지난달 24일 통화정책회의에서 예상을 깨고 금리가 동결되자 투자자들은 터키 경제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게 됐다고 FT는 전했다.

터키 10년만기 국채 수익률은 장중 20%를 넘어서며 사상최고치를 찍었고, 전날 사상최저치를 기록했던 리라 가치는 이날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전날 달러당 5.425리라로 사상최저치를 찍은 리라는 이날 소폭 오르기는 했지만 달러당 5.2450리라로 의미 있는 반등에는 실패했다. 올들어 리라는 28% 가치가 폭락했다. 골드만삭스는 분석노트에서 리라가 더 추락하면 건전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터키 은행들 역시 위험해질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시장의 국가신용도를 나타내는 신용디폴트스와프(CDS)도 급등했다. 시장조사업체 HIS 마킷에 따르면 5년 뒤 터키가 디폴트(채무불이행)를 선언할 경우 원리금을 보장해주는 상품인 5년만기 터키 CDS 스프레드는 이날 3.48%포인트(348BP)를 기록해 2009년 이후 최고치로 치솟았다. 지난해 말 166BP에서 급격히 뛰었다. 투자자들이 생각하는 터키의 디폴트 위험이 그만큼 높아졌음을 뜻한다.

■시장 동요에도 당국 묵묵부답

최근 위기는 브룬슨 석방과 관련한 에르도안의 오판과 자충수에 1차적인 원인이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CNN에 따르면 터키 고위급 인사로부터 이스라엘에 억류돼 있는 자국민이 풀려나면 브룬슨을 풀어줄 수 있다는 조건을 제시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벤야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 이를 부탁해 성사가 됐다. 그러나 터키는 그를 석방해 미국에 돌려보내는 대신 가택연금 상태로 구금하고 있다.

미 싱크탱크 애틀랜틱카운슬의 애런 스테인 애널리스트는 터키가 미국의 분위기를 잘못 읽고 이전 합의를 어겼다고 지적했다. 그는 "터키는 트럼프와 개인적인 친분을 쌓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리고 나서는 트럼프를 배신했다"면서 "터키가 스스로를 궁지로 몰아넣었다"고 비판했다.

사태가 다급해지자 터키는 협상단을 워싱턴에 급파했지만 상황이 호전되기 어렵다는 분석들이 나온다. 워싱턴근동연구소의 터키 전문가인 소너 카가프테이는 "워싱턴의 관점에서는 이미 협상의 시간은 지나갔다"면서 워싱턴이 브룬슨을 포함한 미국인들의 석방을 바란 시기는 이미 지났다고 지적했다.

에르도안이 자신의 사위를 재무장관에 앉혀 경제정책에 깊숙이 개입하고, CBRT의 금리인상을 거듭 비판해 통화정책 개입 의지를 밝히고 있는 것 역시 시장에 계속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코메르츠방크의 울리히 루흐트만 애널리스트는 지난달 24일 CBRT의 금리동결과 관련해 "(CBRT가) 과감히 금리를 올리지 않기로 결정했거나 아니면 더 이상의 금리인상이 용인되지 않았던 것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CBRT가 에르도안의 손아귀에서 움직이고 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 시장이 나락으로 치닫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에르도안의 사위인 베라트 알바이라크 재무장관이나 무라트 세틴카야 CBRT 총재 그 누구도 공개적인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 대한 실망감도 높아지고 있다.


컨설팅업체 테네오 인텔리전스의 울팡고 피콜리는 "(정책책임자) 모두가 사라진 상태"라면서 "분명한 가능성은 그들이 아무 계획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고, 만약 갖고 있다면 최종 의사결정권자인 에르도안의 결재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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