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정책 방향수정을 두려워 말아야

이태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8.09 17:25

수정 2018.10.07 13:26

[기자수첩]정책 방향수정을 두려워 말아야

꽉 박힌 나사를 왼쪽으로 아무리 돌려도 잘 풀리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괜히 더 힘줘 돌리다가는 나사 머리가 문드러진다. 다시는 못쓰게 된다. 방향을 바꿔 돌려보자. 오른쪽으로 돌려야 풀리는 '왼나사'였을 확률이 매우 높다.

뭔가 생각대로 잘 안될 때 방법을 바꿔보는 것은 중요하다. 조금 쑥스러워도 다시 하면 된다.
괜히 고집부리다간 일만 더 커진다.

최근 문재인정부 정책 기조가 많이 바뀌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경제 쪽은 방향 수정이 두드러진다. 심상치 않은 경제지표들이 자꾸 눈에 밟힐 테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정부는 "난 변하지 않았어"라고 발끈한다. 무엇이 두려운 걸까.

문재인 대통령은 규제혁신 현장방문에서 인터넷전문은행 은산분리 완화를 주문했다. 원래 기업들이 은행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막아놨는데, 인터넷은행만큼은 예외적으로 풀어주겠다는 것이다. '혁신 아이콘'으로 불리는 인터넷은행이 규제 때문에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다는 지적 때문이다.

대통령이 '은산분리 완화'에 팔을 걷어 붙이자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은산분리 완화는 더불어민주당이 야당 시절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했던 정책이다. 문 대통령도 반대 입장이었다.

진보성향 시민단체들이 뿔났다. 특히 문 대통령에게 큰 배신감을 느낀 듯하다. "은산분리 규제 완화는 대선공약 파기"라며 날 선 반응이다. 청와대는 공약 파기가 절대 아니라며 극구 부인하고 있다. 은산분리 대원칙을 훼손하지 않았다는 해명이다.

문재인정부 경제정책의 '친기업화' 근거는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7월 문 대통령은 인도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났다. 경제계는 이 만남을 재벌정책 변화 신호로 받아들였다. 또 세제개편안엔 보유세 증세가 빠졌다. 최근엔 사회간접자본(SOC)에 대한 과감한 투자를 주문했다.

상황이 이런데 청와대는 아직 '경제정책 보수화'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모양새다. SOC 투자 확대방안을 발표하면서도 체육관, 도서관 등 생활밀착형 시설을 늘리는 '착한 SOC'임을 강조했다.

정책 방향을 바꾸려니 기존 지지층의 눈치가 보일 거다. 어느 정도 이해는 한다.
그러나 경제는 선악을 따지는 문제가 아니다. 이념의 잣대를 들이밀어선 곤란하다.
왼쪽으로 안 되면 오른쪽으로 돌려 풀어볼 줄도 알아야 한다.

golee@fnnews.com 이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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