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주영 칼럼]

배부른 청와대, 일자리 정부 맞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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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부총리에 정책 전권을 주고 일자리 창출에 전력투구 하되 결과에 책임지게 하는 게 최선

결국 고용재난이 현실로 나타났다. 지난달 취업자 증가폭은 5000명으로 줄었다. 우리 경제가 1% 성장하면 일자리가 10만개 정도 생긴다. 올해 예상 성장률이 2.9%이므로 대략 29만개의 일자리가 생겨야 정상이다. 나머지 28만5000개의 일자리는 어디로 갔을까.

김동연 부총리가 삼성전자 평택 공장을 방문하던 날 청와대는 심기가 불편했던 것 같다. 삼성전자는 당초 김 부총리 현장 방문을 계기로 180조원 규모의 초대형 투자계획을 발표할 예정이었다. 여기에 청와대가 제동을 걸었다. 김 부총리는 예정대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나기는 했지만 투자계획 발표는 며칠 뒤로 미뤄졌다. 청와대의 어떤 참모가 "정부가 재벌에 투자와 고용을 구걸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게 적절하지 않다"고 해서다. 대기업 현장을 방문해 투자를 요청하는 김 부총리의 모습이 구걸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구걸은 창피하고 자존심 상하는 요구를 할 때 쓰는 말이다. 경제를 책임진 경제팀장이 기업 총수들을 만나 기를 살려주면서 투자를 요청하는 것이 창피하고 자존심 상하는 일일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거대기업 CEO들을 수시로 만나 협력을 요청한다. 그는 상습 구걸꾼, 즉 거지일까.

경제가 살아나고 투자와 고용이 늘어나 청년실업자들 고통을 덜어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두가 같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재벌에 투자를 요청하면서까지 지켜야 할 만큼 중요한 가치는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반재벌은 경제와 고용보다 우선하는 가치다. 재벌이 투자를 늘리면 일자리는 늘어나겠지만 그 결과로 재벌의 몸집이 불어나는 것은 달가워하지 않는다. 일자리가 안 늘어도 좋으니 재벌의 덩치가 커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 같다. 청년실업자의 고통을 줄이는 것보다 재벌의 몸집을 줄이는 것이 더 중요한 듯하다.

그래서 재벌 투자는 그다지 반갑지 않다. 굳이 하겠다면 모르되 해달라고 요청할 것까지는 없다. 그러니 대기업을 돌며 투자 늘리기 현장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김 부총리가 좋게 보일 리 없다. 문재인정부는 취임 초 스스로를 일자리 정부라 칭했다. 그러나 청와대의 일자리 체감온도로 보면 일자리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는 정부라는 생각이 든다.

정치인은 집권하기 전과 집권 이후의 판단과 행동 기준이 달라야 한다. 집권하기 전에는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면 된다. 그러나 권력을 잡은 이후에는 다르다. 국정운영에 책임을 져야 한다. 집권이란 국민의 생존과 행복을 책임진다는 뜻이다. 재벌기업에 대한 가치판단과 호불호의 감정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국정을 책임진 정치인이라면 개인적인 가치 추구보다는 취업 못한 청년들의 고통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경기 악화에 정책 오류까지 겹쳤다. 밖으로는 미.중 무역전쟁까지 터져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다. 청와대와 정부가 힘을 합쳐도 난국을 잘 헤쳐나갈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그런 마당에 청와대 장하성 정책실장과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불화설이 끊이지 않는다. 처음부터 쌍두마차 체제를 꾸린 것이 화근이었다. 혼선을 빚었던 정책노선이 늦게나마 혁신성장으로 가닥을 잡은 것은 다행이다.
경제팀의 지휘체계도 이에 걸맞게 일원화 해야 한다. 김 부총리에게 전권을 주어 혁신성장에 전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일자리 정부가 맞다면 일자리를 늘리는 데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

y1983010@fnnews.com 염주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