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논단]

제도 혁신해 지방경제 살리자

지령 5000호 이벤트
최근 미국 시애틀을 보름 동안 둘러보았다. 태평양 연안 소도시인데 미국 내 여섯 번째로 살기 좋다. 매일 60명 정도 새로 이주해와 지난해 가장 빠른 성장도시로 꼽혔다. 기술산업의 집중이 가장 큰 동인이다. 도심에 포천 500대 기업 중 31개 회사의 본부가 있다. 주요 배경 요인으로 투명한 행정, 정돈된 도시 인프라 그리고 훌륭한 교육시설 등이 꼽힌다. 미국 부동산회사 JLL에 따르면 향후 5년간 도심 인구와 비슷한 74만개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한다.

우리나라 지방경제 활성화는 해묵은 과제다. 지역 간 생활여건 격차를 해소하고 낙후지역을 발전시키려는 대책은 매우 다양했다. 지방정부에 중앙정부 권한 이양과 재정 권한 보강도 시도되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100조원 이상 투입된 지역균형발전 정책의 성과 창출은 미약했다(김현호·김도형, 2017). 중앙정부가 주도해 지방 특색을 살리지 못했다는 비판도 많다. 지역 수입이 현지에 머물지 않고 곧바로 수도권에 환류되는 양상도 여전하다. 이제는 지방분권을 강화하고 지역 간 균형발전을 꾀하는 프레임을 헌법에까지 반영하려고 한다.

최근 지방 소멸 위험이 부각됐다. 한국은행(2017)은 지방소멸위험지수로 일본 히로야 도쿄대 교수가 정의한 방법론을 활용해 '20~39세 여성인구'를 '65세 이상 고령인구'로 나눈 지표로 지방 소멸 위험도를 산출했다. 1.0 이하면 주의단계 그리고 0.5 미만일 경우 위험단계로 구분한다. 경기를 제외한 모든 지역이 지방 소멸 주의단계에 진입했고, 경북과 전라도의 기초지자체 70% 이상이 위험단계로 진입했다. 인구 감소 대응이나 수도권과 지방의 상생발전을 위한 아이디어가 절실해졌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성장촉진 요인은 무엇일까? 영란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 홀데인(2018)은 아이디어와 제도역량이라고 했다. 장기간 축적된 아이디어가 4차 산업혁명을 야기했지만, 이제는 혁명 자체가 다양한 아이디어를 재창조해 경제를 변모시킬 것으로 보았다. 경제전환 과정에서 파생되는 경제사회적 비용은 제도역량의 몫이다. 그래서 제도를 기술 못지않게 혁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방 소멸 대응은 젊은 세대가 머물 공간 만들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시애틀처럼 산업생태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면서, 고용 기회 확대와 인구 증가라는 상승작용을 빚어낼 동인을 찾아야 한다. 시애틀 한인타운이 확장되는 것은 비교적 저렴한 생활물가와 인종차별이 없다는 게 이유라고 한다. 경제사회적 문제는 드러난 모습은 달라도 배후 요인은 같을 수 있다. 핵심 연결고리를 찾아 제한된 정책재원을 집중해 치유하고, 나머지는 시장에 맡겨야 한다.

지방은 수도권에서 찾을 수 없는 장점이 많다. 자연환경과 생활비 등의 조건은 좋다. 미래세대 맞춤형 혁신교육시스템을 만들고 보건의료 수준을 향상시킨다면 수도권 못지않은 정주 여건이 가능하다. 동시에 산업생태계 조성도 필요하다.
기존 산업단지를 지역 특색에 맞게 재첨단화하고, 지방기업에 대한 금융 여건도 향상돼야 한다. 지방정부의 제도역량 혁신이 절실해졌다. 국회의 규제혁신과 서비스 관련법 제·개정 등은 큰 촉매제가 될 것이다.

정순원 전 금융통화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