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日강제동원 유골발굴, 北과 힘모으자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은 전쟁 당시 강제 동원된 희생자들의 유골을 반환받고 싶다고 일본 고이즈미 총리에게 공식 요청했다. 몇 달 후 일본 정부는 각 지방자치단체에 조선인 유골을 보관하는 곳은 신고해달라고 통보했다. 대일항쟁기 일본이 강제동원한 조선인은 약 800만명으로 추산되는데, 일본의 유골보관 납골시설 중 신고되지 않은 곳이 아직 더 많다.

이처럼 자료가 부족한 정부가 외교적인 문제로 협의하기 위해선 책임있는 민간이 조사한 자료를 첨부해 협상테이블에 보충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유사 단체의 유골봉안 사례를 보면 강제동원 희생자라고 보기엔 불분명한 유골을 일본 등에서 들여오는 경우가 있다.

유골을 수습해 국내에 봉안하는 일은 국민과 국제사회에 홍보하고 일본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하지만 확인되지 않은 유골을 분별없이 모셔 오는 것은 오히려 혼선만 초래할 수도 있다.

정부는 민간이 수습한 유골들을 검수·통제·지휘해서 책임있는 자세로 유골을 확인해야 한다. 이를 위해 2015년 말 폐지된 대일항쟁기 일본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발굴 관련 정부 위원회를 부활해 상시기관으로 전환해야 한다.

현재 위원회가 폐지돼 책임있게 검수할 곳이 없는 상태다. 이로 인해 유사 단체들이 무분별하게 유골을 봉환해 일본 및 전문가의 비웃음거리가 될 소지가 있다.

땅속에 있는 유해는 발굴하더라도 봉안하기까지 상당한 절차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 일본에 있는 수많은 유골 현장 실태를 한·일 정부 기관에 통보해 보존케 하는 것이 우선이다. 희생자 조사와 국내 봉안에는 막대한 경비와 시간이 필요해 유골 보관이 우선이다. 보관된 유골은 시간이 지나도 누군가는 국내에 모셔올 수 있다. 국내 유족의 DNA 데이터베이스도 구축해야 한다.

또 화장 후 보관되는 유골이라도 확실한 개념과 '강제동원 희생자'의 본질을 모르고 무작위로 봉안해선 안 된다.

강제동원 희생자는 일본의 국가총동원법이 발표된 1938년부터 1945년 해방일까지 강제 또는 본인의 의사에 반해 탄광·항만·군수·공사장 등 동원 현장에서 사망한 경우에 해당된다. 예를 들어 강제 동원됐지만 해방된 1945년 8월 15일 이후 동원 현장이 아닌 사회에서 사망한 경우는 '강제동원 피해자'로 구분해야 한다.

또 유골 명부에 조선이라고 명기돼 있어도 관할 관공서에 가서 원적지 대조, 한국정부 의뢰, 유족확인 등 십수 단계를 거쳐야 한다. 납골시설의 과거 자료를 토대로 관공서 매화장인허증 확인, 본적지 및 강제동원 현장주소, 사망이유, 일본 및 한국 정부 검수확인 등이 필요한 것이다.

과거사 진상규명에 대한 민족문제 해결에는 시효가 없으며, 희생자 유골 본국송환은 대한민국 정부가 국민을 보호하는 의무이자 책무다.

우리는 2015년 폐지된 위원회를 중심으로 지난 14년간 진상과 실태, 구술자료, 유해발굴, 국내봉환 등 조사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다. 최근 북한도 강제동원 희생자 유골 발굴에 관심을 보여 공동작업체계를 구성하면 일본을 압박할 힘이 될 것이다. 학자 및 전문위원들로 구성된 남북 합동조사단을 구성하는 것은 남북 간 화합도 이룰 수도 있다.

얼마전 아태평화교류협회는 북한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의 초청장을 받았다.
일제 강제동원의 진상과 실태에 대한 전문가 초청, 남북 실무회담의 제안이 주된 내용이었다.

북한 정부와 학계 등이 강제동원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아태협은 이런 내용을 포함해 통일부에 정식 방북신청을 접수했다.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