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인찬 칼럼]

스웨덴 모델이 대안이다

소득주도성장은 손절매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아끼던 북유럽식 복지로 갈아타길


주식을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손절매는 쉽지 않다. 더 큰 손해를 줄이려면 당장 주식을 팔아야 한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안 된다. 본전이 아깝다. 내일이면 주가가 오를 것 같다. 그래서 손에 꼭 쥐고 팔지 않는다. 결과는? 십중팔구 쪽박이다.

문재인정부가 손절매 딜레마에 빠졌다. 처음엔 소득주도성장에 큰 기대를 걸었다. 분배도 되고 성장도 된다니 도깨비방망이가 따로 없다. 처방전에 따라 최저임금은 쑥 올리고, 근로시간은 푹 줄였다. 그런데 어째 좀 이상하다. 일자리는 줄고, 소득분배는 더 나빠졌다. 야당과 보수언론은 "그럴 줄 알았다"며 고소해한다. 정부 안에도 김동연 경제부총리처럼 고개를 갸웃대는 이들이 있다.

소득주도성장을 내치자니 정권 체면이 말이 아니다. 무엇보다 시간이 지나면 상황이 나아질 것 같다.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정부를 믿고 조금만 더 기달려 달라"며 되레 속도감 있는 추진을 강조했다. 관료 출신인 김진표 의원은 "소득주도성장은 속성상 효과가 나올 때까지 3년 걸리니까 일관되게 밀고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 심정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5년 단임 정부가 3년 걸리는 정책, 그것도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정책을 끌고 갈 수 있을까. 어렵다. 2020년 4월에 총선, 2022년 3월에 대선이다. 소득주도성장의 앞길은 온통 지뢰밭이다.

이명박·박근혜정부 핑계를 대는 건 유치하다. 정권을 잡고 15개월이 흘렀다. 그동안은 상대평가로 고득점을 올렸다.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율엔 거품이 끼었다. 하지만 지금부턴 절대평가다. 샴페인 파티는 끝났다. 이젠 실력대로 점수가 나온다.

소득주도성장을 버리면 대안은 뭔가.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스웨덴 이야기를 했다. 김 위원장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스웨덴은 시장 자유도가 높다. 영리병원과 학원 다 허용된다. 그러니 시장이란 바퀴가 돈다"고 말했다. 이어 "시장이 만든 불평등은 나중에 세금을 걷어서 재분배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야당 대표가 한 말이라 싫다고? 그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어떤가.

'노무현 사료관'(archives.knowhow.or.kr)에 가면 2005년에 나온 '스웨덴 복지국가모델과 시사점'이란 자료가 있다. 권오규 대사 시절에 주OECD 한국대표부가 펴낸 보고서다. 이를 감명 깊게 읽은 노 대통령은 공무원들이 보고서를 돌려가며 읽길 바랐다. 권 대사는 2006년에 부총리로 발탁돼 참여정부와 임기를 같이한다.

보고서는 세 가지를 점검한다. 스웨덴 국민들은 어떻게 고부담·고복지 모델을 받아들였나. 스웨덴 경제는 고복지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굴러가나. 고령화 속에서도 스웨덴 모델은 지속 가능한가. 무엇보다 스웨덴 모델은 직접 보고 느끼고 만질 수 있어서 좋다. 이론 속에 존재하는 모델이 아니라 실제 살아 움직이는 모델이다. 보고 느끼고 만질 수 없는 소득주도성장 모델과 판이하게 다르다. 스웨덴 모델엔 부작용이 생기더라도 좀 더 기다리면 좋아질 수 있다는 비전이 있다.

사무엘 베케트가 쓴 희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부조리로 가득하다. 고도(Godot)는 언제 올지 모르는 상상 속 인물이다. 소득주도성장은 언제 올지 모르는 고도다. 정부 정책을 이런 실험에 맡길 순 없다.
버스를 탔는데 아뿔싸, 반대 방향이다. 이럴 땐 빨리 내려서 갈아타는 게 상책이다. 머뭇거리다 손절매 타이밍마저 놓칠까봐 그게 제일 겁난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