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군대에서 보낸, 친구의 마지막 편지

최용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8.30 17:00

수정 2018.08.30 20:56

[기자수첩] 군대에서 보낸, 친구의 마지막 편지

네 마지막 편지에는 "나도 너처럼 잘 이겨내야 했는데"라고 적혀 있다. 친구는 내가 전역한 다음 날 군대에서 홀로 목숨을 끊었다. 눈이 푹푹 날리던 1월이었다.

밤이면 침낭 속에서 친구와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는 항상 괜찮았고, 나는 언제나 죽을 듯 힘들었다. 친구는 매번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춥고 외롭고 힘들었을 텐데 잘 견뎌줘서 고마워." 그때마다 전역한 뒤 네팔에 가자고 약속했다. 높은 산이 아무리 춥고, 외롭고, 힘들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네가 함께일 테니까.

전역하고 몇 번인가 편지를 보냈다. 답이 없었다. 쉽게 여겼다. 군대 밖은 재밌는 게 많았다. 고기를 구우면 땀이 절로 흐르는 여름. 친구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 네가 죽었단다. 친구 어머니는 몇 달을 버티다 겨우 연락했다고 말했다. 삼겹살이 타들어가는 불판 앞에서였다.

어느 날 우울증을 견디다 자살한 병사의 어머니들을 만났다. 어머니는 차마 자살이나 죽었다는 단어를 꺼내지 않았다. '그렇게 됐다, 하늘로 갔다'고 에둘렀다. 어머니는 유품으로 전달된 아들의 신발 끈조차 버리지 않고 고이 보관했다. 꿈결에 만나는 아들이 보고 싶어 매일 같은 시간에 잔다고 했다. 유가족들은 여름 내내 눈덩이 같은 눈물만 흘렸다.

우울증을 겪은 사람들의 유서에는 자신을 탓하는 말들이 많았다. 부모님께 죄송하고, 남에게 폐를 끼치는 것 같아 세상을 먼저 떠난다는 문장들. 죽은 병사들이 상담에서 자주 한 말은 이겨내겠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정신승리' 문제가 아니었다. 우울증은 의지 문제가 아닌 병이다. 결국 치료를 해야 한다.

군대에서는 아파도 선임 눈치가 보여 참았다. 군대 조직문화에서 훈련에서 다친 경우를 제외하면 병원을 가기 쉽지 않을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신질환 병사에 대해 즉각 치료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우울증은 자살과 밀접한 만큼 민간이나 가족과 연계하는 방안도 고려돼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는 우울증을 대하는 태도를 극복이 아닌 병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네가 강해질 필요가 없었다. 네가 있는 곳이 안전해야만 했다.
우울증에 걸린 병사들은 군대가 아니라면 어땠을까. 춥고, 외롭고, 힘들었을 그들. 친구가 꿈꾸던 눈 덮인 산은 그대로다.

junjun@fnnews.com 최용준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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