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칼럼]

지배구조 개편 압박에 속타는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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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창씨개명은 민족말살정책의 하이라이트였다. 일본이 조선인들의 극렬한 저항에도 창씨개명을 강압했던 이유는 뭘까. 우리 모두가 역사시간에 배웠다. 식민지 백성들의 말과 글을 빼앗고, 마지막엔 이름마저 빼앗는다. 이를 통해 완전한 황국신민으로 개조하겠다는 목적이었다. 당시 조선인의 80%가 창씨개명을 했다고 한다. 일본의 압박이 얼마나 지독했는지 짐작할 만하다.

최근 삼성 지배구조를 둘러싼 현 정부의 압박을 지켜보면서 가히 창씨개명의 핍박이 겹친다. 그 중심에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 5월 10일 10대 그룹과의 간담회에서 삼성을 향해 돌직구를 날렸다.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삼성의 지배구조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그러면서 이재용 부회장의 빠른 결단을 촉구했다. 지주사로 빨리 전환하라는 것이다. 그 방법을 묻자 2016년 경제개혁연대 소장 시절 작성한 삼성 리포트에 모든 게 담겨 있다며 즉답을 피했다. 그가 제시한 해법은 삼성생명을 금융중간지주사로 세우자는 게 골자다. 하지만 금융중간지주사는 박근혜정부 시절에도 '삼성 특혜법'이라고 반대에 부딪혔던 제도다. 더욱이 지금 상황에선 어불성설이다.

그날 김 위원장은 "삼성의 지배구조 개편을 정부가 밀어붙이거나 선택을 강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석 달도 안돼 김 위원장은 이 말을 뒤집었다. 김 위원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시 한번 삼성을 정조준했다. 이번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필살기'로 내세웠다. 개정안이 입법되면 향후 지주사 전환 시 자회사.손자회사 지분율을 현행보다 10% 높은 30%(상장사 기준)까지 확보해야 한다. 만약 이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삼성물산이 지주사로 전환하려면 삼성전자 지분을 지금보다 30조원어치 더 사들여야 한다. 현행 기준인 20%를 맞추려고 해도 50조원 가까운 자금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김 위원장은 개정안 시행까지 3년의 유예기간을 언급하며 이 부회장의 용단을 재차 주문했다. 그러나 지주사 전환에 따른 막대한 재원조달 방법은 제시하지 않았다. 삼성은 답답할 노릇이다. 정부 뜻에 따른다 해도 도무지 답이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현재 계류 중인 상법 개정안, 보험업법 등은 사실상 삼성의 지주사 전환을 금지하는 법들이다.

한편으론 핵심 경제관료들이 지주사에 집착하는 이유도 불분명하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지주사 체제는 자본의 집중화를 위한 일본의 군국주의 수단이었다. 이걸 기업의 존폐까지 거론하며 도입에 집착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오죽하면 현 정부가 삼성을 국가기업화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회자될 정도다.

cgapc@fnnews.com 최갑천 산업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