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칼럼]

사람 사라진 '사람중심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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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스름 녘 집으로 가려면 어김없이 시장을 지나쳐야 하는데. 시장의 소리는 어둠이 내려앉기 직전 더욱 거칠고 세진다. 생물을 취급하다 보니 떨이에 나선 목소리들은 절박에 가깝다. 그는 시장 중턱 채소도 팔고, 과일도 파는 제법 넓은 가게의 맨 가장자리에서 채소를 팔았다. 떨이 솜씨는 강매에 가까웠지만, 사는 사람으로선 착한 가격 때문에 늘 흡족했다. "깻잎 천원, 얼갈이 두 단에 사천원!" 한파와 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강한 생활력을 뽐내던 그 목소리가, 지난여름 어느 날부터 들리지 않았다. "그 목소리 걸걸하고, 예쁜 아줌마 어디 갔느냐"고 물었지만 주인과 남아있는 50대 중·후반 종업원들은 속시원히 답하지 않고 얼버무렸다. 경기가 안 좋다더니 가게 주인이 임금 주기가 어려워져 그만두게 했나보다 곱씹을 뿐이었다. 그러더니 며칠 전엔 가게에 남은 두어명의 종업원과 시장 터줏대감인 가게 주인마저 싹 사라졌다. 상인들은 주인이 가게를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고 했다.

지난달 초엔 대기업 화장품 프랜차이즈 대리점 하나가 동네에서 사라졌다. 사장은 추석과 설 명절 당일, 빨간날에도 꿋꿋하게 가게를 열 정도로 억척스러웠다. 포인트를 주는 대형마트나 그보다 값이 싼 온라인쇼핑 때문에 자주 가지는 못했어도, 혼자 가게를 지켜온 40대 초반의 사장은 가게를 찾을 때마다 언제나 웃는 낯으로 대해줬다. 그렇게 평온한 듯 보였던 가게는 지난 6월 '점포 정리' 안내문을 붙이곤 두달 만에 결국 문을 닫았다. 그리고 보니 다른 풍경도 있다. 최근 큰길가에 버거킹 매장이 하나 생겼는데, 일요일 저녁에도 햄버거를 찾는 손님들로 매장이 북적인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주문받는 사람은 없고, 10대·20대 아르바이트생들 자리에 무인결제주문기(키오스크) 두 대가 서 있을 뿐이다.

수도권 변두리 동네에서조차 사라진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그나마 그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은 통계청 통계인데 역시나 숫자는 현실을 대변하기엔 역부족이다.
통계청은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고용참사로 기록된 지난 7월 고용통계에서 고용원 없는 1인 자영업자가 약 10만2000명 줄고, 종업원을 둘 정도로 규모 있는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가 7만2000명 늘었다고 발표했다. 고민 많은 청와대나 기획재정부는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한 공세에 대항해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는 줄었지만,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가 늘었다는 데 애써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경제 패러다임 전환에 따른 명현반응이든, 앞선 정부에서 끌어온 구조조정이 시한폭탄처럼 터진 것이든. '사람중심 경제'에서 사람이 사라지고 있는, 숫자 이면의 풍경들을 제대로 찾아보고 헤아렸으면 한다.

ehcho@fnnews.com 조은효 정치부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