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정훈식 칼럼]부동산용 금융 관치는 이제 그만

정훈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9.27 16:34

수정 2018.09.27 16:34

[정훈식 칼럼]부동산용 금융 관치는 이제 그만


뛰는 집값을 잡기 위해 금융이 구원투수로 나섰다. 정확히 말하면 금융당국이 은행을 앞세워 집값 잡기에 나섰다. 9·13 부동산 종합대책에서 투기과열지구 등 규제지역에서 다주택, 고가주택 구입 때 대출을 원칙적으로 막았다. 오는 10월부터는 이보다 더 센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과 임대업이자상환비율(RTI) 규제가 도입된다.

부동산시장에서 금융규제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다. 요즘처럼 수급문제로 실수요·투자·투기가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시장이 이상과열되는 상황에서 단기에 효과를 내려면 돈줄을 조이는 게 최고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금융당국은 이 달콤한 유혹에 빠져 시장이 과열되면 여지없이 대출규제 처방전을 내민다.

부동산시장에 정부가 대놓고 간섭하기 시작한 것은 참여정부 때다. 노무현 대통령은 출범 초기 '하늘이 두쪽 나도 집값은 잡겠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이 말이 무색하게 집값이 잡히지 않자 2005년 부동산 종합처방인 8·31대책을 통해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이라는 것을 만들어 직접적이고 강도 높게 돈줄을 조였다.

문재인정부 들어서는 한 발 더 나갔다.지난해 8·2대책을 통해 LTV와 DTI보다 더 센 DSR이라는 카드를 내밀었다. 이어 1월엔 다주택자 대출을 옥죄기 위한 신 DTI 처방을 내놨다. 내달에는 부동산임대업자의 대출을 옥죄는 주택임대업이자상환비율이라는 것을 도입한다.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신금융규제에 금융소비자와 시장은 멀미가 날 지경이다. 은행들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다. 더 큰 문제는 관치의 폐해다. 정부 당국에서 일선 금융권의 영역인 대출조건과 영업마저 일일이 간섭하다 보니 부작용이 속출한다. 당국은 9·13대책에서 부동산 투기를 막기 위한 돈줄을 죈다며 주택담보대출 강화 카드를 내놨다. 시행 당일인 지난주 초 일선은행의 대출창구는 혼란에 빠졌다. 시중은행들이 생활안정자금 목적의 주택담보대출과 무주택가구의 고가주택 주택담보대출마저 중단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틀 동안 담보대출이 아예 막혔다. 어설픈 정책의 피해는 금융소비자들에게 돌아갔다.

시장에 무리하게 개입하다 보니 시장왜곡도 부른다. 은행대출을 규제하다 보니 대출이 막힌 실수요자들마저 대출조건이 불리한 제2금융권이나 개인간(P2P) 대출 등으로 밀려나며 금리 등에서 역차별을 받는다. 저축은행은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린다. 반대로 은행들은 대출규제로 실적은 곤두박질 치는데 깐깐해진 대출관리 때문에 업무량은 크게 늘어 이중 삼중의 어려움을 겪는다. 대출관리의 책임도 지게 됐다.

더군다나 집값 잡기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신상품 개발 등 금융산업 전문성과 경쟁력은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부동산대책으로의 금융규제 문제를 인정했다. 최 위원장은 지난 18일 한 시중은행을 찾아 "그동안 당국은 LTV와 DTI 규제를 은행 여신건전성을 위한 지표로 활용해왔고 부동산대책으로 쓰려 한 것은 아니었다"고 전제했다.

무분별한 대출이 금융건전성을 해칠 수 있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선제적 조치는 필요하다. 그런데 금융당국이 시장까지 직접 간섭하려다 보니 부작용이 생긴다.
대출여부 결정은 은행에 맡겨두고 당국은 은행을 상대로 건전성만 잘 따지면 된다. 그러기 위해선 '정부가 아니면 안된다'는 관치만능에서 벗어나야 한다.
금융산업을 '금고지기'로 머물지 않게 하려면 말이다.

poongnue@fnnews.com 정훈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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