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북한

뮌헨의 회담, 하노이의 대화, 그리고 '평양의 선언'

한영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09.29 08:00

수정 2018.09.29 08:00

[역사 그리고 오늘] '2018년 평양 선언' 어떻게 바라봐야 하나
1938년 영-프, 히틀러와 '뮌헨협정' 맺지만 2차 세계대전 발발
1997년 미국과 베트남 전쟁 책임자 모여 '하노이 대화'
"적을 이해하고, 지도자끼리 대화는 계속해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9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평양공동선언문에 서명한 후 합의서를 들어보이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19일 평양 백화원 영빈관에서 평양공동선언문에 서명한 후 합의서를 들어보이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여기 우리 시대의 평화가 있습니다!"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는 "독일은 더 이상 영토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히틀러 친필 서명이 담긴 '평화협정서'를 흔들며 이같이 외쳤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80년 전인 1938년 9월 29일, 영국과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정상은 독일 뮌헨에서 회담을 진행하고 평화협정을 맺는다. 이른바 '뮌헨 협정'이다.

■1938년 히틀러와의 평화 협정
1938년 3월 오스트리아를 병합한 나치 독일의 히틀러는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을 준비한다. 명분은 게르만 민족주의. 약 300만명의 독일인이 살고 있는 체코슬라바키아의 수데테란트 지역 회복이 구실이었다.

독일이 또 다시 폭주하려는 할 때, 체임벌린 영국 총리와 에두아르 달라디에 프랑스 총리는 평화와 전쟁 중 '평화'를 택했다.


체임벌린 총리가 런던에 돌아왔을 때, 영국 국민들은 공항까지 마중 나와 그를 뜨겁게 맞아 줬다. 영국 언론은 “총리 재임 중 기사 작위를 받는 영국 역사상 두 번째 인물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고, 노벨평화상을 받아야 한다는 언론도 있었다.

당시 영국을 비롯해 유럽 전역에서 뮌헨협정을 반대하는 정치인은 윈스턴 처칠이 유일하다시피 했다. 그는 “영국과 프랑스는 불명예와 전쟁 사이에서 선택해야 했다. 그들은 불명예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들은 전쟁을 겪을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1938년 9월 29일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앞줄 왼쪽)는 아돌프 히틀러 독일 총통(앞줄 오른쪽)과 뮌헨 협정에 합의하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
1938년 9월 29일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앞줄 왼쪽)는 아돌프 히틀러 독일 총통(앞줄 오른쪽)과 뮌헨 협정에 합의하고 악수를 나누고 있다.

■세계대전 그리고 '뮌헨의 교훈'
'우리 시대의 평화'가 담긴 서약서는, 만들어진지 6개월 만에 휴지조각이 됐다. 1939년 3월, 나치 독일의 히틀러는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을 협박해 체코를 보호령으로 편입시키고 슬로바키아를 괴뢰국으로 만들었다.

영국 체임벌린 총리는 뮌헨협정 1년 만에 독일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2차 세계대전을 시작했다. 프랑스는 독일과의 전쟁에서 6주 만에 패하며 수도 파리를 점령당했고 뮌헨 회담에 있었던 달라디에 총리는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갔다.

뮌헨협정은 이후 '뮌헨의 교훈(lesson of Munich)'을 남겼다. 적의 도발을 반드시 분쇄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여주지 않을 경우 도발이 오히려 격화된다는 것이다. 국제정치학자 스티브 첸은 “유화정책은 방어자의 싸우고자 하는 의지를 떨어뜨리며 공격자의 야욕을 더욱 키우게 된다”고 정리했다.

미국 트루먼 대통령이 한국전 참전을 결정했을 때도 '뮌헨의 교훈'이 인용됐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미국 내 강경파들은 케네디 대통령에게 "뮌헨 회담을 잊지 말라"며 전쟁을 독려하기도 했다. 그만큼 '뮌헨의 교훈'은 오늘날의 국제질서에서도 유효하다.

■'2018년 평양 선언'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80년이 지난 2018년 9월의 한반도에도 '우리 시대의 평화'가 담긴 선언문이 작성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장은 2018년 9월 18일 평양에서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양국 정상은 비핵화 의지를 공식적으로 밝혔고, 사실상의 종전을 선언했다.

평양에서의 선언에도, '뮌헨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는 여전하다.

야권의 한 정치인은 직접 뮌헨협정을 인용하며 “온갖 비난에 시달리면서도 끝까지 히틀러의 야욕을 경고하고 영국과 유럽의 평화를 지키고자 노력했던 처칠이 없었다면, 지금 유럽의 지도에서 영국과 프랑스는 없었을 지도 모른다”며 “우리는 체임벌린이나 달라디에보다 처칠의 혜안으로 남북관계를 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에 출석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사진=연합뉴스
미국 상원 외교위원회에 출석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사진=연합뉴스

헤더 노이트 미국 국무부 대변인도 "비핵화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다. 비핵화가 먼저 실행돼야 한다"고 단언했다.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 소속인 데이비드 퍼듀 의원도 “핵위기를 초래한 것은 북한이므로, 북한이 먼저 행동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미국의 정치인들은 여전히 '뮌헨의 교훈'을 따르고 있는 듯하다.

■1997년 미국과 베트남의 '하노이 대화'
70년 동안 전쟁의 위험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뮌헨의 교훈'을 따라야 할까.

최근 1997년 미국과 베트남의 대화가 '적과의 대화'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출판됐다. 미군이 베트남전쟁에서 철수한 지 24년 후, 전쟁 당시 미국의 국방장관을 역임한 로버트 맥나마라를 비롯한 13인의 참가단은 베트남 하노이를 찾는다. 이들은 응우옌꼬탁 전 베트남 외무장관을 중심으로 한 베트남 대표단 13인과, 3박4일 동안 베트남전쟁을 두고 토론을 벌인다.

하노이의 대화에서 양측은 '놓쳐 버린 기회(Missed opportunities)'를 되짚는다. '전쟁을 피하거나 조기에 종결시킬 기회를 혹시 놓친 것은 아닌가'하는 문제의식에서 대화를 시작했다. 만약 1956년 통일선거를 미국과 남베트남이 거부하지 않았다면? 1960년대 후반에 진행됐던 '비밀 평화 협상' 무산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왼쪽)과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 /사진=위키피디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왼쪽)과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 /사진=위키피디아

'비밀 평화 협상'의 무산 원인에 대해서 베트남의 전직 외교 관료들은 입을 모아 '북폭'을 꼽는다. 책에서는 “한도 끝도 없이 폭탄을 퍼부어 대면서 평화안을 믿으라는 것은 도무지 무리가 아니겠습니까?”라고 일갈한다. 이에 대해 맥나마라는 그렇지 않다고, '북폭 중지'를 거듭 제안했다고 반론한다. 오히려 북베트남 정부가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아 북폭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한다.

어떻게 보면 '북폭 중지'가 북베트남으로서는 선결조건이고, 미국에게는 협상 카드였던 셈이다.

■“지금이라면 당신을 믿을 수 있습니다”
하노이 대화 마지막 날, 미국 측 체스터 쿠퍼는 베트남 대표단에게 이렇게 묻는다. “지금 여러분은 우리의 평화 제안을 진지한 것이었다고 인정하실 수 있습니까? 우리가 진심으로 협상을 통한 해결을 지향하고 있었다고 발언하면, 당신들은 그것을 믿어 주실 건가요?”
이에 베트남 측은 “체스터 쿠퍼씨, 지금이라면 당신을 믿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 당시는 도무지 무리였습니다”라고 답한다.

하노이 대화가 끝나고 1년 후, 취재진이 맥나마라 전 장관을 찾아 하노이 대화의 교훈에 대해 물었다. 맥나마라는 “베트남 전쟁은 미국과 베트남 쌍방의 지도자가 보다 현명하게 행동했더라면 피할 수 있었던 전쟁이었다"라며 "우리가 교훈을 바르게 배운다면, 미래에 이와 같은 전쟁을 막을 수 있을 겁니다”라고 답한다.

그는 이어 "(대화를 통해 배운 교훈) 하나는 우선 적을 이해하라는 것"이라며 "두 번째는 비록 상대가 적일지라도 최고 지도자끼리의 대화를 계속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게을리 했습니다”라고 말한다.

20세기 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은 '뮌헨의 교훈'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겐 '하노이의 교훈'도 있다.

1997년 6월 23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로버트 맥나마라 전 미국 국무장관과 보응우옌잡 전 베트남 국방부 부장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div id='ad_body3' class='mbad_bottom' ></div> /사진=연합뉴스
1997년 6월 23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로버트 맥나마라 전 미국 국무장관과 보응우옌잡 전 베트남 국방부 부장이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fair@fnnews.com 한영준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