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일감몰아주기 규제에 알짜회사도 매각"

최갑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0.09 17:05

수정 2018.10.09 17:05

기업들, 공정거래법 발맞춰 지분정리 등 대응 나섰지만 합법 회사까지 매각 내몰려
전문가들 "시장개입 부작용" 지주사 체계와 상충 지적도
"일감몰아주기 규제에 알짜회사도 매각"


주요 기업들이 공정거래법 개정에 따른 일감몰아주기 규제 강화에 대비해 계열사 매각, 총수일가 지분 정리 등 선제적 대응에 나선 가운데 정부의 밀어부치기식 재벌개혁에 대한 재계의 불만도 고조되고 있다.

재계에서는 과도한 일감몰아주기 규제가 현행 정부가 유도하는 지주사 제도와 상충하는 데다 정책 기조에 떠밀려 합법적 사업까지 정리해야 하는 사례까지 발생하고 있어 정부의 과도한 시장개입의 부작용이라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정부 눈 밖에 날라' 합법 회사도 정리

9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일감몰아주기 규제 강화 등을 포함한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 추진 계획을 발표한 이후 주요 대기업들의 선제적 규제 해소 조치들이 잇따르고 있다. 강화되는 일감몰아주기 규제는 총수일가 지분이 상장사와 비상장사 구분없이 20% 이상인 기업이거나 이같은 조건을 충족한 기업이 50% 이상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들까지 규제 대상이 되는게 골자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다음 달 정기국회에 제출돼 처리될 경우 이르면 2020년 시행된다. 다만, 보수 야당을 중심으로 과도한 기업 규제라는 지적이 있어 개정안 처리까지 난항이 예상되고 있다.


그럼에도 주요 기업들은 규제와 무관하거나 정상적인 사업회사들마저 '울며겨자먹기'식으로 지분을 정리하는 상황들이 벌어지고 있다.

LG의 경우 지난달 19일 지주사인 ㈜LG의 100% 자회사인 서브원의 소모성 자재구매(MRO) 부분을 분할해 지분 매각을 추진했다. 서브원의 MRO 사업은 전체 매출의 60%를 차지할 만큼 주력 사업이다. 서브원은 MRO 사업이 건설, 레저 등 다른 사업과의 시너지가 낮다는 걸 분할 매각의 배경으로 밝혔다. 하지만, LG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총수일가가 지배하는 지주사의 100% 자회사인 점, 분할 매각 추진시기가 공정거래법 개정안 입법예고 기간인 점 등 향후 일감몰아주기 규제 강화를 피하기 위해 LG가 부득이 알짜사업 정리에 나선 것"이라고 지적했다.

LG는 구광모 회장을 비롯해 총수 일가가 보유한 물류회사 판토스 지분도 매각을 추진중이다. 총수일가 지분이 19.9%라 강화되는 일감몰아주기 규제를 피할 수 있지만 매각을 결정했다. 재계 관계자는 "LG 총수일가의 판토스 지분은 강화되는 '20% 룰'에 저촉되지 않지만 '꼼수' 논란을 우려해 사전 정리하는 걸로 안다"고 전했다.

최태원 SK 회장의 사촌동생인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과 이웅열 코오롱 회장, 조현준 효성 회장 등도 현재 SK D&D, 코오롱베니트, 효성티앤씨 등 계열사 지분 정리를 추진중이다. 이들 총수들의 계열사 지분 정리는 지주사 전환과정에서 지배력 강화 차원의 성격이 강하지만 일감몰아주기 규제 강화를 염두에 두고 당초 계획보다 시기를 앞당긴 것으로 알려졌다.

지주사 체제가 아닌 삼성도 식자재기업인 삼성웰스토리가 일감몰아주기 이슈에 휘말리고 있다. 삼성웰스토리는 이재용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삼성물산의 100% 자회사라 공정거래법 개정안 시행시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 "정부, 시장질서 흔들어"

전문가들은 정부의 일감몰아주기 규제 강화가 재벌개혁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자유시장질서를 흔들고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대 교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한축은 지주사 지분율 요건 강화도 있다"며 "결국 지주사 체제 강화를 요구하면서 한쪽으로는 일감 규제를 강화한다는 건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과도한 일감몰아주기 규제는 기업들이 본연의 사업에 집중하기보다 헛돈을 쓰게 하고 투자 여력을 위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며 "기업 입장에서야 공정위의 칼날이 부담스러우니 선제적 대응을 할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재벌은 나쁘다는 인식을 바꾸고 순기능을 인정하는 균형있는 정책 추진이 중요하다"며 "대우조선해양, KT 등 오너없는 대기업들도 경영악화의 상황들이 벌어지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현행 규제로도 일감몰아주기를 해소하는 가시적 성과를 거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최승재 최신법률사무소 대표 겸 세종대 교수는 "공정거래법이 아니더라도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도 일감몰아주기 과세 규제가 있다"며 "더욱이 일감몰아주기 규제는 여러 차례 강화된 바 있으니 그것부터 제대로 시행해보고 명확한 문제점을 찾아 해결책을 도출하는 게 우선"이라고 밝혔다.

cgapc@fnnews.com 최갑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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