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관 칼럼]

中·日보다 2계단 높은 韓 신용등급


셰익스피어의 소설 베니스의 상인을 보면 무자비한 '샤일록 금리'가 등장한다. 고리대금업자인 샤일록은 채무자가 빌린 돈을 갚지 못하면 그로부터 1 파운드의 살을 떼어버리겠다는 가혹한 조건을 부과한다. 이에 빗대 오늘날 법정 최고금리를 '샤일록 방지 금리'로 칭하기도 한다. 개인이나 국가가 돈이 필요한데 수중에 돈이 부족하다면 빚을 낼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누구나 가혹한 이자를 지불하는 것을 꺼릴 것이다. 지불해야 할 이자는 싸면 쌀수록 좋은데 싸게 빌리려면 무엇보다 좋은 평판이 있어야 한다. 신용등급이다.

나라의 살림살이 운영도 마찬가지다. 국가 역시 자금이 부족할 경우 여러 방법으로 재원을 충당할 수 있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데, 이때 차입의 중요한 기준이 되는 것이 국가신용등급이다. 투자자들은 차입국의 채무에 대한 지불능력을 이모저모 뜯어보게 된다. 그 기준이 무디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피치 같은 주요 국제신용평가사가 정하는 신용등급이다. 신용평가사는 국가신용등급을 정할 때 해당 국가의 거시경제 여건, 정책역량, 재정건전성, 지정학적 위험수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한다.

신용등급 하락은 국제금융시장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해당 국가에서 자금이 빠져나갈 확률이 높게 만든다. 더구나 해당 국가의 자금조달 비용이 증가하는 경우가 수반될 수 있다. S&P는 2011년 미국, 2012년엔 유럽의 신용등급을 각각 내렸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하자 국가신용등급이 투기등급으로 전락했다. 해외 투자자들이 자금을 거둬가 외화가 대거 유출됐다. 국가위기 사태에 따른 투자자들의 외면이라는 대가는 많은 어려움을 야기했다.

그로부터 2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 국가신용등급은 주요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 무디스와 S&P 기준(AA) 역대 최고(最高) 수준으로 상위에서 3번째 등급이다. 영국, 프랑스와 동일하고 중국, 일본보다는 2등급 높다. 주요 20개국(G20)에서 우리보다 등급이 높은 나라는 미국, 독일, 캐나다, 호주 4개국뿐이다. 무디스 기준으로 아시아 외환위기 이후 신용등급이 하락한 국가 중 위기 전보다 신용등급이 높은 국가는 우리가 유일하다. 그만큼 우리의 대외지불능력 차원에서 경제체력이 튼튼해졌다는 의미다. 올해도 3대 신용평가사는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을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OECD 주요국과 비교할 때 여전히 양호한 경제상황이라는 취지다.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이 높은 것은 양호한 재정건전성, 국제금융시장과 지속적인 소통 노력, 남북관계 개선에 따른 지정학적 리스크 감소 등을 두루 고려한 결과다. 4000억달러의 외환보유액과 78개월 연속된 경상수지 흑자 같은 건전한 대외지표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최근 미국 금리인상과 미·중 통상갈등으로 많은 신흥국이 자본유출과 같은 어려움에 처해 있다.
터키, 브라질 등은 국가신용등급이 하락했다. 한국은 성장잠재력 확대와 남북 및 북·미 관계 개선에 따른 지정학적 리스크 완화에 신용평가사들이 주목하고 있다. 대외신인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우리 정부의 다각적인 정책적 노력이 국가신용등급 평가에 긍정적으로 반영되길 기대한다.

고형권 기획재정부 제1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