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SFBW에서 본 한국 블록체인의 미래



지난 30년간 전 세계 기술혁신을 미국 실리콘밸리가 이끌어 왔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도전정신으로 무장한 창업가와 그들을 지원하는 거대 자본, 그리고 유연한 규제 환경이 지금의 실리콘밸리를 만들었다. 반도체, 바이오, 소프트웨어 등 분야를 가리지 않는 강력한 원천 기술 개발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그들의 경쟁력이다. 지난 12일 막을 내린 '샌프란시스코 블록체인 위크(SFBW)'에서는 또 한 번 다음 시대를 준비하는 실리콘밸리의 저력을 엿볼 수 있었다.

포럼 기간 가장 주목받은 이슈 중 하나는 예일대학교의 블록체인 펀드 투자였다. 약 300억 달러의 기금을 운용하는 예일대학교는 미국 투자업계에서 막강한 영향력과 함께 장기적 관점에 기반한 보수적인 투자로 유명하다. 1985년부터 매년 기록적인 수익률을 기록한 예일대의 이러한 상징적 행보는 침체되어 있던 암호화폐 시장의 강한 동력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예일대와 같은 권위 있는 기관의 참여는 다른 기관 투자자들 참여를 유도해 산업 전반에 활력을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늘어나는 투자는 자연스럽게 활발한 기업활동으로 이어지며 블록체인 산업이 빠르게 제도권으로 편입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이다.

이번 포럼에서 또 하나 주목했던 점은 실리콘밸리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의 차별성이었다. 일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서비스 프로젝트가 주를 이루는 한국과 달리, 실리콘밸리의 프로젝트들은 인프라 구축에 필수적인 원천 기술 개발에 집중하고 있었다.

서비스 앱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현재 블록체인은 실생활에 사용되기에 앞서 확장성, 보안 등의 많은 기술적 걸림돌을 해결할 인프라 구축이 절실한 상황이다. 서비스 상용화는 그 다음이다. 구글과 아마존은 그들만의 기술로 인프라를 구축하고 플랫폼을 만들어 세계 시장을 장악했다. 삼성도 압도적인 수준의 반도체 원천 기술 덕분에 시장을 선도하고 전 세계 수많은 디바이스의 심장 역할을 하고 있다. 조만간 블록체인 산업에서도 원천 기술에 기반한 플랫폼 위에서 연쇄적인 변화들을 이끌어 갈 리더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스탠포드나 버클리 등 명문대를 거쳐 실리콘밸리 유수의 기업에서 실력을 쌓은 인재들이 블록체인 기술에 역량을 쏟아붓고 있는 현장을 보니 한국이 또 한번 뒤처지는 것은 아닌가 조바심이 생겨났다.

한국의 부진한 원천 기술 개발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 따르면 2017년 국내 창업은 1998년과 비교해 100배 이상 증가했지만 하이테크 중심 기술기반 창업 비중은 여전히 매우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지난 정권부터 지속적으로 창업 지원을 추진해 젊은 스타트업 창업자가 많이 늘어났으나, 이 또한 대부분이 서비스업에 집중되어 있다. IT 창업이 국내 시장을 벗어나기 힘든 앱 서비스에 집중된 것도 문제이다. 컨설팅 기업 맥킨지의 2015년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스타트업은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주장하고 있으나 현실에서는 유사 서비스가 난립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통 산업의 부진이 계속되는 가운데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한 한국은 다시 한번 세계 시장을 주도할 기회를 마주하고 있다. 이미 해외 블록체인 업계가 한국을 가장 매력적인 시장으로 꼽고 있다. 새로운 기술에 빠르게 적응하는 국민적 특성과 지난해 암호 화폐 성장을 시장을 이끌었던 진취적 성향이 한국의 저력이다. 우리는 제 발로 찾아온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정부는 수십조의 예산을 편성하고도 큰 성과를 내지 못했던 지난 스타트업 육성 정책을 교훈 삼아, 원천 기술 확보에 초점을 맞춘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또한, 열린 정책을 기반으로 새로운 산업에 친화적인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블록체인 업계 및 사용자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일 년 내내 별다른 가이드라인을 내놓지 않고 있다. 도리어 ICO (암호화폐 공개) 금지와 암호화폐 거래소를 벤처 업종에서 제외한 '벤처기업 특별조치법 시행령'과 같은 규제를 발표해 산업의 발목만 잡고 있다.
은행과 투자기관들도 정부 눈치만 보고 있는 실정이다. 하루 빨리 규제를 재정비해 국내 기업의 원활한 사업을 돕고, 해외 기업의 자유로운 투자 활동을 보장해 부가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게 해야한다. 세계를 이끌 블록체인의 메카 한국의 리더십을 기대해본다.

케빈 리 해시드 투자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