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차장 칼럼]文대통령 유럽순방, ‘탄식’과 ‘탄성’ 사이

조은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0.23 17:24

수정 2018.10.23 18:14

[차장 칼럼]文대통령 유럽순방, ‘탄식’과 ‘탄성’ 사이

오후의 마지막 햇살이 방 안을 가득 메웠다. 지난 15일(현지시간) 오후 4시30분께 파리 엘리제궁. 한·불 두 정상이 각각의 단상 앞에 나란히 섰다. 조명과 분위기는 완벽했다. 이때까지는 말이다. 한국기자단을 대표해 한 명의 기자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에게 질문을 던졌다. 유엔의 대북제재 완화에 대한 프랑스의 입장에 대한 것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프랑스를 방문한 목적이었다. "프랑스의 경우 무엇보다 비핵화가 완전하고 불가역적 검증가능해야 한다는 데 애착을 가지고 있다. 비핵화는 원칙에 합당하게 이뤄져야 한다." 마크롱 대통령은 심지어 '북한 인권'까지 거론했다.
프랑스를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대통령궁인 엘리제 궁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뒤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프랑스를 국빈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대통령궁인 엘리제 궁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뒤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연합뉴스
나지막한 탄식이 흘러나왔다. 언제나 그렇듯 원칙은 옳을 수밖에 없다. 두 정상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비핵화 의지와 유엔 제재 완화 문제를 논의하는 데 회담의 9할을 할애했다고 한다. 당시 청와대는 "마크롱이 비공개회담에서 입장에 변화를 보였으나 당장에 공식입장에 변화를 주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프랑스의 입장에 보이지 않는 '균열'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건 핵확산금지조약(NPT) 공인 핵클럽 일원인 엘리제궁의 비핵화 기준은 백악관보다도 더 높고 까다로웠다는 것이다. 7박9일의 유럽 순방 중 첫 관문인 파리에서의 일이다.

청와대가 문 대통령 유럽 순방중 수행원들이 휴대전화로 찍은 'B컷'을 공개했다. 사진은 프란치스코 교황 알현을 위해 대기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교황청 의전관과 대화하고 있는 모습. 청와대 제공
청와대가 문 대통령 유럽 순방중 수행원들이 휴대전화로 찍은 'B컷'을 공개했다. 사진은 프란치스코 교황 알현을 위해 대기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교황청 의전관과 대화하고 있는 모습. 청와대 제공
두번째 방문지인 바티칸에서의 10월 18일 분위기도 전할까 한다. 문 대통령의 프란치스코 교황 예방 결과가 나오기 직전 로마 현지에 마련된 프레스룸의 분위기는 긴장 그 자체였다. 교황의 답변은 순방 성과 전체를 살리는 재료였다. 상당수 기자들이 서울의 마감 독촉을 앞두고 '교황 사실상 방북 수락' '교황 방북 긍정검토' 등의 헤드라인을 뽑아들고, 대기하고 있었다. 한국 가톨릭의 한 인사는 이런 유의 제목에 대해 "교황청 분위기나 그간의 관행을 감안해볼 때 많이 나갔다. 잘못 짚었다"고 했다. 그러나 대반전이었다. "(방북)초청장이 오면 무조건 응답을 줄 것이고 나는 갈 수 있습니다." 교황청 현장에 있던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이 문 대통령으로부터 확인한 교황의 메시지를 한 줄 한 줄 휴대폰 메시지로 중계할 때마다 긴장은 탄성으로 바뀌었다. 동북아에 국한됐던 한반도 문제가 유럽 사회로까지 확장되는 순간이었다. 유럽 역시 문 대통령의 '접근을 통한 변화'의 대상이었던 셈이다.

당시 현지 프레스센터의 소소한 분위기를 기록한 이유는 앞으로 일어날 변화의 단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교황의 사실상 방북 수락을 이끌어낸 수행원들이 대통령전용기(공군 1호기)로 들어서자 박수가 나왔다. 늘 그렇듯 청와대와 출입기자단의 '거리 설정'은 고민거리다.
비판을 감수할 순간이 있다면 바로 바로 그날이었을 것 같다.

ehcho@fnnews.com 조은효 정치부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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