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나루]

합종연횡 갈림길에 선 한중일



동아시아 3국, 즉 한·중·일이 처한 지금의 상황이 얄궂다. 한때 이들 국가는 자신들의 막강한 산업경쟁력을 바탕으로 엄청난 외환보유액을 쌓았고 그 덕분에 국제무대에서의 발언권도 높여 왔다. 하지만 서로 간의 경제협력을 위한 논의에서는 좀처럼 의견이 맞지 않았고, 오래 전부터 논의돼왔던 '동아시아 (혹은 동북아시아) 경제협력 (혹은 통합)' 구상은 의지만 표명될 뿐 구체적인 진전을 이루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그러던 한·중·일 3국이 도널드 트럼프라는 매우 강한 상대를 만나 힘들어지면서 가장 이견이 컸던 중·일 양국이 지난달 말 갑자기 손을 맞잡으면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말만 앞세우던 동아시아 경제통합의 길이 제대로 열릴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높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동아시아 대표 3국이 처한 처지는 마치 중국 전국시대 말기에 막강한 진나라를 두려워해 이른바 합종연횡을 주장하던 두 유세가에 휘둘리던 나머지 6국의 사정과 비슷하게 비쳐진다. 진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6국이 연합해야 한다는 소진의 합종책은, 6국이 진나라와 개별적으로 동맹을 맺는 것이 더 실질적이라는 장의의 연횡책에 밀리게 되고 결국 6국은 하나씩 진나라에게 병탄당하고 말았던 상황에 비견된다는 말이다.

한·중·일 3국은 미국이라는 막대한 시장을 절대 놓칠 수 없는 입장이다. 3국이 자랑스러워하는 산업경쟁력도 미국이 시장을 닫겠다는 위협하에서는 별무신통이 돼버린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과의 경제관계가 최악으로 가는 것은 그 어느 나라도 원하지 않는 것이다. 지금은 미국과 중국이 감정싸움으로 비쳐질 정도로 이른바 '무역전쟁'을 불사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중국 정부가 시장이 필요한 자국 산업들이 겪을 고통을 언제까지나 자존심 때문에 내버려 둘 수는 없을 것이다. 중국보다는 미국과의 관계가 덜 나쁘다고 느끼는 일본과 우리나라도 중국의 처지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래서 한·중·일 3국, 혹은 아세안 10개국까지 포함하는 동아시아 경제통합이 매력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게 된다. 이른바 소진의 합종책인 셈이다. 그러나 이 합종책이 성공하려면 참으로 어려운 고비들을 넘어야 할 것이기에 이번에도 이 대안은 성공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지금까지 많이 지적돼온 경제체제의 차이, 경제발전 수준의 격차와 같은 정치경제적 요소들은 이미 제법 극복되고 있는 셈인데 이를 넘어서서 이 지역에서 추구하는 '경제통합'이 실질적으로 이뤄지기 위해서도 다음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이 필수적으로 보인다.

우선, 서로가 자신들의 물건을 팔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남의 물건도 사주는 '시장'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이라는 큰 시장을 대신하려면 더욱 그러한 셈이다. 그래서 일본 정부와 일본 소비자들의 자세에서 큰 변화가 일어나야 하고, 중국과 한국도 바뀌어야 한다. 과연 이런 변화를 단기간에 이룰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다음으로 각자가 구축한 '닫혀 있는 산업생태계'를 서로 열어야 한다.
일본 자이바츠의 후예 기업들, 한국의 재벌 기업들, 그리고 중국을 지배하는 국유기업들은 자신들만의 세상을 구축해 왔다. 자신들 내에서 모든 것을 생산하는 방식, 혹은 자신들과 협력하는 협력업체들과만 일하는 방식의 전통적인 닫힌 산업생태계가 이들 3국이 현재의 산업경쟁력을 이룰 수 있게 한 원천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닫힌 산업생태계를 서로 계속 고집한다면 한·중·일 3국은 진정한 산업협력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과연 일본과 한국의 중소기업들이 중국 국유기업을 협력 파트너로 삼고 공동의 이익을 추구해 가는 열린 산업생태계를 만드는 일이 가능할까?

김도훈 경희대 국제대학원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