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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세무와 소송은 영역이 다르다

안삼수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8.11.22 17:27

수정 2018.11.22 17:27

[여의나루] 세무와 소송은 영역이 다르다

11월 1일 세무사에게 조세소송 대리권을 주는 세무사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세무사에게 변호사처럼 조세소송 대리까지 허용하자는 것이다. 소송의 전문성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경악할만한 내용이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도 모르는 것인지 참으로 개탄스럽다.

소송은 증거 싸움이다. 승소하려면 치밀한 서증제출이 필요하고, 증인신청, 증거보전신청, 문서송부촉탁신청, 사실조회신청, 문서제출명령신청, 감정신청, 검증신청 등 다양한 증거신청이 요구된다.
노련한 증인신문도 중요하다. 증거 제출이 미숙하면 법리를 떠나 입증 부족으로 패소한다. 승소에 필요한 입증을 하려면 소송법 전문지식과 오랜 소송수행 경험이 요구된다. 그런데 세무사는 소송법에 관한 전문지식이 없고 소송수행 경험도 없다. 세무사의 절대 다수는 세무기장, 신고와 같은 단순업무를 수행할 뿐이다.

승소하려면 치열한 법리주장도 매우 중요하다. 대부분의 세무사는 국세청 훈령, 예규 등 세무관서의 해석 기준을 기계적으로 적용해 세금액수 계산을 주된 업무로 한다. 하지만 조세소송에서 국세청 훈령, 예규 위반을 다투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과세처분이 법률이나 헌법에서 정한 실체적, 절차적 요건을 준수했는지 여부가 쟁점이다. 이에 대해 세무사는 전문적 지식과 경험이 거의 없다. 세금액수 계산과 조세법리 주장은 차원이 다르다. 이러한 세무사에게 소송을 맡긴 국민이 억울하게 패소한다면 그 피해는 어찌할 것인가. 소송에 관한 전문성이 없는 세무사에게 국민의 재산에 관한 소송대리권을 함부로 줘도 되는 것인가. 국민이 마루타인가.

미국의 경우 우리 세무사와 유사한 EA(Enrolled Agent)가 있다. 하지만 EA는 국세청에 대한 대리행위만 할 뿐 조세법원과 같은 모든 법원에서 소송대리를 할 수 없다. 일본의 경우 세리사 제도가 있다. 일본 세리사는 우리 세무사와 달리 2년간의 실무 경험이 요구된다. 세리사는 법원에 보좌인으로 출석해 진술할 수 있지만 보좌업무에 국한될 뿐 소송대리를 할 수는 없다. 프랑스와 캐나다에도 세무사 제도가 없고 변호사가 세무업무를 수행하며, 특히 조세소송의 경우 변호사에게만 소송대리권이 인정된다. 이처럼 선진 외국의 경우 세무사의 소송대리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번 개정안은 왜 발의된 것인가. 세무사단체의 직역이기주의에 따른 부당한 입법 로비 때문이라고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국회 규칙에 의하면 개정 법률안은 10일 이상 입법예고해야 하고, 이에 대해 의견이 있는 자는 의견을 말할 수 있다. 위원회 전문위원은 제출된 의견 중 법률안의 체계, 적용범위 및 형평성 침해 등 중요사항을 위원회에 보고해야 한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은 발의 후 불과 5일, 주말을 제외하면 3일 후 기획재정위 전문위원이 검토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이해관계인인 대한변협, 법무부, 법원, 기획재정부의 의견을 듣지 않았다. 급한 법안이 아닌데도 긴급하게 일방적으로 추진된 것이다.

세무사는 자신이 근무했던 국세청이나 세무서를 상대로 세무대리를 하는 경우가 많아 전관예우와 정부기관과의 유착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러한 세무사에게 조세소송 대리까지 허용한다면 새로운 전관예우가 나타날 것이다. 조세정의가 훼손되고 조세수입이 부당하게 감소되어 국가 전체가 손실을 입을 것이다.
세무사단체의 도를 넘은 직역이기주의 이외에 어떠한 정당성도 없는 이번 개정안은 즉각 폐기돼야 한다.

김현 대한변호사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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